추억을 나누어 드립니다.(8) 천년의 향기

홈 > 소모임 > 자유인
자유인

추억을 나누어 드립니다.(8) 천년의 향기

부하라 0 1182

지난 봄에 서울에 갔다가  저의 집 부근에 있는 문화유적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먼저  경기도 광주 초월리에 있는 허난설헌 묘에 들려 예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님의 묘를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이조 세종때의 재상이었던 맹사성어른의 묘에 갔습니다.


허 난설헌은 홍길동 전을 쓴 허균의 누이로 한국 여성 사에 빛나는 시인 입니다.


15세에 시집을 가서 남편과 시부모의 박대에 슬픈 생을 살다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합니다.


우리 나라의 시집살이를 생각하면 그러한 고고한 이념과 높은 기개를 가진 여인이 살기에는 너무도 숨막히고 매서운 시대가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허난설허님의 생가는 강능에 있지만 출가해 온곳이 수원쪽이였는지 친정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유택이 있었습니다.


고려 충신 정몽주님의 묘가 남한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광주에서 수원 쪽으로 가다가 있었습니다.


동방성리학의 시조이며 고려말 충신인 포은 선생은 이방원에 의해 개성 선죽교에서 살해됐습니다.


개성 풍덕군에 묘가 있었지만 그후 경북 영천 고향으로 이장 하게 됐습니다.


면럐행열이 수지읍 경계에 이르자 세찬 바람이 불어와 만장이 꺽여 무수산 지금의 능 자리에 떨어졌다합니다.


상주들이 의논하기를 포은선생이 선택한곳에 유택을 만들기로 했다합니다. 


 이곳은 남한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명당자리라합니다. 명당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산세가 부르럽고 안윽하고 시원하고 평화로운 곳이여서  마음이 푹은해지는것 같았습니다. 


수원에는 조선시대의 명문가의 묘택이 많이 있다 합니다. 사거수원이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것인가 봅니다.


세종때의 맹사성은 청백리의 표본이 었다고 합니다. 가마를 타지 않고 검은 소를 타고 다녔다 하네요. 요즘의 소형차 정도가 아니었나? 싶어요.

묘비도 아주 자그마한 것으로 긴 벼개만한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 비석 보다도 훨신 작은 것입니다. 청백리 그 다운 것이 었습니다.



무덤 앞에 마른 꽃다발이 놓여 있었습니다. 앞서 다녀간 사람도 나처럼 참사람이 그리웠던 것은 아닌지 .....



술 한잔을 올리고 깊이 고개숙여 절을 올렸습니다. 천년이 흘러도 향기를 잃지 않는것은 청빈을 사랑하는 고고한 인품 이 아닌가싶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능묘들을 보았습니다.



묘마다 사연이 있고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슴에 남아 있는것은 오직 하나 맹사성 어른의 작은 묘입니다.


그것은 천년의향기였습니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