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를 지켜온 신성한 검, 쁘레아 칸.
따프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행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곳, 쁘레아 칸 입니다.
쁘레아 칸은 자이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에게 헌정한 불교 사원이면서도 한때 왕궁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177년 참족(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이야바르만 7세는 전란중에 파괴된 수도
앙코르 톰을 재건하는 동안 이곳을 임시 왕궁으로 삼고 기거 했습니다.
쁘레아 칸에는 크메르 역사에 전해 오는 '신성한 검' 전설이 있습니다.
9세기 자이야바르만 2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자에게 신성한 보검 '쁘레아 칸'을
물려주었다는 전설로 사원의 건립자인 자이야바르만 7세가 신성한 검을 회수해 이 사원에
모시고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현판은 현재 유물 보존 사무실에 보관돼 있습니다.
쁘레아 칸의 주 출입문은 동문입니다.
동문은 왕이 출입하는 문이며 일반인은 서문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교통편의상 서문을 주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문으로 들어가서 동문, 혹은 서문으로 다시 나오거나, 닉뽀안으로 이동하기 용이하게
북문으로 나오셔도 됩니다.
쁘레아 칸 서문에 내리면 처음 마주치는 진입로 양옆의 석등 입니다.
쁘레아칸이 사원이외의 왕궁으로 사용되어진 증거이기도 합니다.
원래 불상이 새겨져 있었으나 지금은 긁어낸 흔적만 있습니다.
서문에 들어서면 사원으로 나아가기위한 기나긴 참배로가 나옵니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지않는 사원이라 너무나 고즈늑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고푸라를 지나 사원에 들어서면 정자, 큰방, 성소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사원 중심부로 갈수록 문의 크기가 작아지고 높이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앙성소로 들어가거나, 왕을 접견할때 복종과 존경의 의미로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앙성소로 가다보면 완전한 형태의 링가와 요니를 보실수 있습니다.
링가에 나비가 앉아 있을만큼 사원은 조용하고 고즈늑합니다.
중앙성소에서 사리탑의 끝과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연결하여 촛불과 촛대로 사진을 찍어
보는 것도 포인트입니다.
무희의 방에 새겨진 아름다운 압사라.
중앙성소를 지나 동문으로 가다보면 통로 구석에 앉아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크메르 청년을 만납니다.
가볍지 않는 그 모습이 천년사원 쁘레아 칸과 너무나 어울립니다.
둥근 기둥이 촘촘히 들어선 2층 건물은 크메르 건축양식과 다른 외국의 건축양식이 도입된 듯 합니다.
건물의 용도는 확실치 않으나 도서관, 혹은 신성한 검 '쁘레아 칸'을 보관한 장소로 추정됩니다.
동문 사원고푸라에서 본 거목입니다.
쁘레아 칸의 거목은 따프롬의 거목에 비견할만 합니다.
나무 아래 앉아 있다보면 천년세월의 틈새로 빨려드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