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깎던 노인

홈 > 여행기/사진 > 여행사진
여행사진

방망이 깎던 노인

망고찰밥 0 10

방망이 깎던 노인


벌써 20여 일 전 일이다.

내가 단쿤톳에 방을 얻은지 얼마 안되었을 때다.

야시장에서 밥을 사먹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야시장 골목을 통과해야 했다.

골목 가운데 방망이를 깎아서 파는 노인이 있었다.

bc7e83fd7fd75359252f29a9e00d4c0a7f8aaa37.jpg

녹색 방망이다.

다른 사람이 방망이를 사가는걸 보고 나도 궁금증이 들었다.

구워먹는 고추는 자주 봤는데 가지 방망이도 구워서 먹는건가?

구워먹는 고추는 연녹색이다. 이 가지도 비슷한 색이다.

한개만 사고 싶은데 두개씩 판다고 한다.

말도 안통하니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불에 굽는다.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굽기 시작했다.

4ea1445ea740f062a0e2cd4ccf745800f89ccb14.jpgf836bcd2c70a01060174664c08ef3e85bbfc40c8.jpg
노인은 굽다가 먼곳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59ae8e47003abef0fc9b66faf1761b1f57f4b9f2.jpg
겉이 까맣게 탄 가지 방망이를 꺼내서 타버린 껍질을 깎기 시작한다.

d818d4698a3415f6a4292074873efb42976f81ae.jpg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말하기도 뭣해서 가만있었다.

a358b85a3a0867689555c805cafe045ccc517a33.jpg

속으로만 말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저러다가는 방망이는 다 깎여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방망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되어 있던 방망이다.

c69f7e5f1e4b3b92e76b4865274a4f5dd0797d03.jpg

너무 늦어 도로에 다니던 차량들도 없어지고 한산해졌다.

369f7837e2e2ce1b4cab909083010d39d2f85fb1.jpg

방에 돌아와서 가지 방망이를 그릇에 담았더니 흐물흐물 전혀 예쁘진 않다.

6b9e3bfd7f81b9ed0faa758f0bf660f1b54e21dd.jpg

포크로 잘 들어올려지지 않는다.

3662055595ce2ea7ac57c6b81f6cc4e0a708002c.jpg

꼭지 부분은 구워지지 않아 단단하다. 덕분에 꼭지를 손으로 잡고 들어올릴 수 있다.

51656f8e1edf5e3406db3a7952506c148d325509.jpg

오~ 손잡이를 정말 잘 만들었다며 감탄이다.

꼭지까지 구워버렸으면 손으로 잡을 데도 없고 다루기 불편했을 것이다.

손으로 들어올려 후후 불어 먹어보니 나름 흥미로운 느낌이다.

탄 부분을 깨끗이 벗겨서 탄내가 나지 않고 가지 속살만 부드럽게 남았다.

한국의 옛날 가지보다 단맛은 적고 약간 단단한 느낌이다.

아마도 태국인들은 뭔가 양념장 같은데 찍어먹을것 같은데 지금 나한테는 없다.

그냥 가지만 먹어도 나쁘지 않다. 소금을 약간 뿌려보았더니 좀 낫다.

dc5d6766360925b9ca8045ea83644fb1a72997ec.jpg

20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파는 보라색 가지는 참 맛있었다. 그냥 단순히 찌기만 해도 달고 맛있었다. 가지 특유의 풍미가 가득했다. 밭에서 바로 따면 생으로 먹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수입종 까만색 반짝반짝 동글동글한 가지를 팔던데 정말 맛이 없다.

그래서 길쭉 뾰족한 재래종 보라색 가지를 일부러 찾아서 사곤 했다.

몇년 더 지나니까 이제는 모양만 재래종처럼 생긴 보라색 가지를 판다. 까만 가지와 색만 다를뿐 맛은 다 안좋다. 

가지 특유의 풍미도 없고 그냥 질긴 스펀지 같다. 아무리 맛없는 재료도 튀기면 맛있다고 하는데 이제 가지는 튀겨야 겨우 먹을만한 수준이다.

젊은 사람들은 가지가 원래 그런 맛인줄 알수도 있지만, 옛날 가지 맛을 기억하고 있는 부친은 항상 가지가 맛이 없다고 불평한다.  요즘 그런 종자밖에 안나오니 어쩔수 없다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 나도 요즘 가지는 맛없어 잘 안먹게 되었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 다시 한번 구운 가지 방망이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야시장에 가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있던 자리에 노인은 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있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노인은 한번씩 어딜 쳐다봤던 것일까.

그 노인이 바라보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꼬치굽는 가게의 지붕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노인도 꼬치구이 연기를 보고 있었던 것인가....

꼬치구이와 함께 먹었으면 잘 어울렸을 텐데. 


오늘, 야시장에 갔더니 피자, 와플, 대만 흑설탕 버블티 이런게 보였다.

최근 야시장에서는 가지 방망이 숯불구이를 볼수 없었다.

문득 20여 일 전, 숯불구이 방망이 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