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after!!! and.. pain... [캄보디아]
수어스 다이.
조제비입니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픈 기억을 지울렵니다...
다들 아실겁니다.
시엡립에서 프놈펜까지 가는 대부분의 교통편을 스피드 보트를 선택하신다는 것을요...
저 역시. 이런 대세의 흐름을 거부할수 없었던 지라 스피드 보트를 타고 프놈펜으로 향했지요.
픽업트럭을 타고 달리는 30분은 비록 먼지를 뒤집어 쓰기는 했지만 똔레샾호수하구의 서민들의 (누구는 빈민가.. 라고 합니다만..) 살아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써비스이자 뒤에 일어날 일의 전주곡이었지요.
스피드 보트를 보는 순간 날렵한 비록 낡은 모습이긴 했지만 날렵해 보였습니다.
인원이 너무 많아서 좌석에 앉지 못하고 배 위에 올라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가야했지만 선선한 아침의 기분좋은 출발은 참으로 기분이 그만이었지요.
똔레샾호수에서 떠 오르는 일출을 몸으로 받으며 캄보디아의 수천년의 정기를 모두 빨아 들일 듯 했습니다.
여유로운 속도에 기분좋은 단잠이라도 빠질것 같았지요.
하구에 있는 수상가옥들의 모습 또한 묘미입니다.
주로 베트남계 캄보디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라 또다른 매력을 주지요.
역시... 이 배를 타기 잘했어.....
그러나...
1시간 후에 이런 고통이 올줄이야....
햇볕은 제법 따가워지고 그늘을 피할길은 전혀없고... 설상가상 다리를 펼수조차 없는 조밀한 인구밀집지역에서 6시간이라는 것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또한. 아침을 먹지도 못하고 출발을 한지라 그 배고픔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군요.
월남패망이후 엄청난 보트피플들의 삶이 이렇했을 것입니다.
타들어가는 목마름에도 그 단돈 몇푼이 아까워서 참아야 했는 절박함은 이제 말할수 있지만 잊지는 않았습니다.
고통...
차자리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하지만... 절 살린것은 다름아닌....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저 4살난 꼬마였습니다.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여행을 하는데 4살난 저 계집애는 투걸거림없이 모든 고통을 인내로 버텨내고 있더군요.
몸은 벌겋게 익어서 금방이라도 불이 날것 같았지만 싫은 내색 한마디 없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저 어린것도 살려고 하는데 내가 지금 무얼하는 걸까....
쪽팔림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살아야 했지요.
이를 악물고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고통을 무용담처럼 말할수 있지만 입가의 미소는 아직도 떨리고 있습니다.
해병대의 훈련중에 이런 말을 자주 듣지요.
"고통을....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수 없다면.... 즐기십시오.
새삶을 살고 있는 조제비였습니다....
조제비입니다.
잠시나마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픈 기억을 지울렵니다...
다들 아실겁니다.
시엡립에서 프놈펜까지 가는 대부분의 교통편을 스피드 보트를 선택하신다는 것을요...
저 역시. 이런 대세의 흐름을 거부할수 없었던 지라 스피드 보트를 타고 프놈펜으로 향했지요.
픽업트럭을 타고 달리는 30분은 비록 먼지를 뒤집어 쓰기는 했지만 똔레샾호수하구의 서민들의 (누구는 빈민가.. 라고 합니다만..) 살아있는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써비스이자 뒤에 일어날 일의 전주곡이었지요.
스피드 보트를 보는 순간 날렵한 비록 낡은 모습이긴 했지만 날렵해 보였습니다.
인원이 너무 많아서 좌석에 앉지 못하고 배 위에 올라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가야했지만 선선한 아침의 기분좋은 출발은 참으로 기분이 그만이었지요.
똔레샾호수에서 떠 오르는 일출을 몸으로 받으며 캄보디아의 수천년의 정기를 모두 빨아 들일 듯 했습니다.
여유로운 속도에 기분좋은 단잠이라도 빠질것 같았지요.
하구에 있는 수상가옥들의 모습 또한 묘미입니다.
주로 베트남계 캄보디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라 또다른 매력을 주지요.
역시... 이 배를 타기 잘했어.....
그러나...
1시간 후에 이런 고통이 올줄이야....
햇볕은 제법 따가워지고 그늘을 피할길은 전혀없고... 설상가상 다리를 펼수조차 없는 조밀한 인구밀집지역에서 6시간이라는 것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또한. 아침을 먹지도 못하고 출발을 한지라 그 배고픔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군요.
월남패망이후 엄청난 보트피플들의 삶이 이렇했을 것입니다.
타들어가는 목마름에도 그 단돈 몇푼이 아까워서 참아야 했는 절박함은 이제 말할수 있지만 잊지는 않았습니다.
고통...
차자리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하지만... 절 살린것은 다름아닌....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저 4살난 꼬마였습니다.
프랑스인으로 보이는 한 가족이 여행을 하는데 4살난 저 계집애는 투걸거림없이 모든 고통을 인내로 버텨내고 있더군요.
몸은 벌겋게 익어서 금방이라도 불이 날것 같았지만 싫은 내색 한마디 없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저 어린것도 살려고 하는데 내가 지금 무얼하는 걸까....
쪽팔림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살아야 했지요.
이를 악물고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고통을 무용담처럼 말할수 있지만 입가의 미소는 아직도 떨리고 있습니다.
해병대의 훈련중에 이런 말을 자주 듣지요.
"고통을....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피할수 없다면.... 즐기십시오.
새삶을 살고 있는 조제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