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아이들까지 죽일작정입니까??? [베트남]
신짜오.
조제비입니다.
월남전을 기억하십니까???
처음 베트남을 여행할 당시 제가 베트남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월남... 월맹... 공산당....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베트남에 대해서 배운것이라고는 월남전 당시 우리 국군들이 용감하게 싸웠다는 무용담이었지요.
월남에 군인이 파병된 이유라든지 전쟁의 명분등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첫 베트남 여행때 우연하게 현지의 평범한 가족을 알게되었습니다.
부모님. 딸 넷. 아들하나의 전형적인 서민들의 모습이었지요.
8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일곱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삽니다.
큰딸의 약혼식때 호기심으로 사진을 찍게 된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그집에서 먹고.. 놀고...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지요.
하루는....
TV를 보는데 월남전 당시의 다큐멘타리 필름이 방송되는 겁니다.
호치민이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월맹기를 올리는 흑백화면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압도하더군요.
미군헬기를 타고 자국민을 실어 나르는 장면도 빠트리지 않았구요.
우리나라에서도 신물나게 보았는 장면이라 별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는데....
순간.....
아버지의 한마디가 저를 얼어 붙게 만들었습니다.
'한국군이...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딸이 영어로 통역을 해 주었지만 아버지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과 'Bang bang!!!'.....
그 'bang.. bang...' 총소리는 꼭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당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어떠한 변명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고 가고 싶어 간 전쟁이 아니었다.....'
'국제 정세가 결코 우리를 외면한것이 아니다....'
이 말을 해야 하는데....
근데..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sorry.... i'm sory...."
저의 세치혀가 뱉은 말입니다.
딸이 통역을 해서야 아버지는 웃으면서...
"뭘.... 다 지난 일인데...."
그날 하루는 이 일로해서 하루종일 시무룩 했습니다.
저의 모습을 본 가족들이 괜찮다고.. 몇번이나 괜찮다고 했지만 죄지은 도둑마냥 풀이 죽었습니다.
어머님은 괜한 이야기를 했다시면서 아버지를 나무라십니다.
딸들과 아들은 어깨를 다독이면서 괜찮답니다....
그렇수록.... 저는 더 우울해져 갑니다...
얼마전에 월남전 당시 한국군을 지휘했던 채명신 장군과 TV토론이 있었습니다.
많은 질책성질문들이 쏟아졌지요.
정말로 많은 질문이 채명신장군을 괴롭혔지만 채명신 장군은 이 말만 되풀이 했을 뿐입니다.
'갈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제가 태어나고 2년후에 월남이 패망을 하고 미국이 손을 털고 떳습니다.
어쩌면....
저하고는 무관한 전쟁이었고 베트남에 돌맹이 하나 던지지 않은 저였지만...
한국인이란 이유로 베트남에서의 'i' m sorry..'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우울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전쟁이었지만....
내가 원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같은 파병국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도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베트남 고산족 마을에서 찍은 어린애들의 낙서입니다.
개발새발 낙서의 주인인 철없는 어린애들까지 이제 죽이시렵니까???
우리 애들에게 전범의 굴레를 씌우시려 하십니까???
저 처럼... 우리 애들도 i' m sorry....' 로 용서를 구하시게 만들작정입니까???
오늘은 정말 한국인임이 부끄러운 조제비였습니다.....
조제비입니다.
월남전을 기억하십니까???
처음 베트남을 여행할 당시 제가 베트남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월남... 월맹... 공산당....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베트남에 대해서 배운것이라고는 월남전 당시 우리 국군들이 용감하게 싸웠다는 무용담이었지요.
월남에 군인이 파병된 이유라든지 전쟁의 명분등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첫 베트남 여행때 우연하게 현지의 평범한 가족을 알게되었습니다.
부모님. 딸 넷. 아들하나의 전형적인 서민들의 모습이었지요.
8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에 일곱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삽니다.
큰딸의 약혼식때 호기심으로 사진을 찍게 된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그집에서 먹고.. 놀고... 정말 최고의 여행이었지요.
하루는....
TV를 보는데 월남전 당시의 다큐멘타리 필름이 방송되는 겁니다.
호치민이 대통령궁을 점령하고 월맹기를 올리는 흑백화면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화면을 압도하더군요.
미군헬기를 타고 자국민을 실어 나르는 장면도 빠트리지 않았구요.
우리나라에서도 신물나게 보았는 장면이라 별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는데....
순간.....
아버지의 한마디가 저를 얼어 붙게 만들었습니다.
'한국군이...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딸이 영어로 통역을 해 주었지만 아버지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과 'Bang bang!!!'.....
그 'bang.. bang...' 총소리는 꼭 나의 머리를 겨누고 당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어떠한 변명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고 가고 싶어 간 전쟁이 아니었다.....'
'국제 정세가 결코 우리를 외면한것이 아니다....'
이 말을 해야 하는데....
근데..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sorry.... i'm sory...."
저의 세치혀가 뱉은 말입니다.
딸이 통역을 해서야 아버지는 웃으면서...
"뭘.... 다 지난 일인데...."
그날 하루는 이 일로해서 하루종일 시무룩 했습니다.
저의 모습을 본 가족들이 괜찮다고.. 몇번이나 괜찮다고 했지만 죄지은 도둑마냥 풀이 죽었습니다.
어머님은 괜한 이야기를 했다시면서 아버지를 나무라십니다.
딸들과 아들은 어깨를 다독이면서 괜찮답니다....
그렇수록.... 저는 더 우울해져 갑니다...
얼마전에 월남전 당시 한국군을 지휘했던 채명신 장군과 TV토론이 있었습니다.
많은 질책성질문들이 쏟아졌지요.
정말로 많은 질문이 채명신장군을 괴롭혔지만 채명신 장군은 이 말만 되풀이 했을 뿐입니다.
'갈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제가 태어나고 2년후에 월남이 패망을 하고 미국이 손을 털고 떳습니다.
어쩌면....
저하고는 무관한 전쟁이었고 베트남에 돌맹이 하나 던지지 않은 저였지만...
한국인이란 이유로 베트남에서의 'i' m sorry..'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우울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전쟁이었지만....
내가 원한 전쟁이 아니었지만....
같은 파병국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도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베트남 고산족 마을에서 찍은 어린애들의 낙서입니다.
개발새발 낙서의 주인인 철없는 어린애들까지 이제 죽이시렵니까???
우리 애들에게 전범의 굴레를 씌우시려 하십니까???
저 처럼... 우리 애들도 i' m sorry....' 로 용서를 구하시게 만들작정입니까???
오늘은 정말 한국인임이 부끄러운 조제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