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 - College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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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 College 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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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지 제너럴은 1658년 파리외방전교단(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 MEP)에 의해 Ayuthia, Thailand에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1670년에는 시암, 코친 차이나, 인디아, 차이나, 일본등 아시아에서 온 83명의 신학생들로 인해 컬리지 제너럴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 온 신학생들 중 한명인 Anthony Pinto가 교황 Innocent XI 앞에서 신학에 기초한 주제를 너무나 잘 발표해 교황으로부터 즉각적인 서품의 허가를 받기도 했다.
1688-91 태국에서 선교사와 신학생들의 박해가 시작되어 매를 맞거나 투옥되었고, 몇몇은 병으로 죽기도 했다.
박해는 컬리지에 소생의 길을 열어주었다. 1713년 이후 신학생들은 새건물로 이주하여 강력한 커뮤니티를 이루게 되었다. 즉 컬리지 제너럴은 처음 Ayuthia를 시작으로 - Chanthaburi - Malacca - Pondicherry - Penang(1808-present)에 이르렀다.
17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페낭은 지역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었다. 1808년 Fr. Lolivier가 5명의 신학생과 함께 마카오에서 페낭에 왔다.
다음해인 1809년 컬리지 제너럴은 20명의 중국인 신학생과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아시아 전지역에서 학생들이 모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에서 온 교수의 부족과 빈곤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때에 앵베르(Imbert)와 샤스탕(Chastan) 신부가 이곳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한국에서 순교하였다. 끈기있는 열정이 오늘의 컬리지 제너럴을 만든 것이다.
베트남, 버마, 태국등의 박해를 피해 많은 신학생들이 이곳 컬리지 제너럴로 오게 되었다.
1914-1983 플라우 티쿠스에 있던 컬리지 제너럴은 세계 제1차 대전 중인 (1914-1918)임시로 폐교하고 프랑스 선교사들은 프랑스로 돌아갔으며 2차 대전 중인 (1939-1945)에는 다양한 선교사역을 행하였다. 1945년 일본 해군이 침공 했을 때 2명의 신부와 9명의 말레이시안 신학생들은 플라우 티쿠스의 신학교로 돌아가 다시 활동했다.
1970년 Fr. Archiles chung이 최초로 아시아 교구신부가 되었다. 컬리지 제너럴은 350년간 1,000명의 신부를 배출하였고, 그들은 대부분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서 후에 주교가 되거나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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