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레아 비히어의 일출
왕이되면 가는 왕들의 수도처. 쁘레아 비히어를 이번 여행에 30번째 다녀 왔다
제일 처음 갔을때가 2012년 1월이었다. 그 후 수많은 여행자들과 그곳을 방문했다.
왕들의 수도처에서 맞이한 일출.....
평생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2016년 1월부터 입장료를 징수해서 일출 보러 가는게 영 불편했다..
쁘레아 비히어(Preah vihear) - 왕들의 수도처
캄보디아는 북서쪽에 있는 약 400km의 당렉 산맥을 경계로 태국과 국경을 나눈다. 이 당렉 산맥 꼭대기에 쁘레아 비히어 사원이 있다. 당렉 산맥의 정상은 대부분 300m 안팎인데 이곳만 유난히 높아 525m이다. 남쪽은 경사가 심해 절벽에 가깝고 북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남쪽 절벽 위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어떤 때는 내가 구름 속에 있고 어떤 때는 구름이 아래에 있다. 날이 맑으면 100km 떨어진 프놈 꿀렌 산이 지평선처럼 보인다.
이곳은 국경 분쟁 지역이다. 1431년 캄푸차 데사 왕조가 영향력을 잃어버린 다음에 태국이 이곳을 점령하였다. 그러다가 1904년에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두었던 프랑스가 태국과 국경 협상을 하여 당렉 산맥을 기준으로 영토를 나누었다. 이러면 쁘레아 비히어 사원은 태국 영토에 속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1907년에 프랑스가 만든 지도에 이곳을 캄보디아 영토로 표기하였다. 태국이 이것을 1934년에 발견했지만 그냥 두었다가 1950년에 국경 수비대를 배치하며 이 지역을 장악하였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캄보디아가 태국에 여러 차례 철수를 요구했지만 반응이 없자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였다. 1962년에 캄보디아가 승소하여 태국 군대가 철수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수차례 포격전이 일어나고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2011년 포격전 이후로는 잠잠하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은 지역이다. 한때는 사원 입구에서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을 통과하였지만 2008년에 폐쇄되어 지금은 100km 정도 떨어진 안롱벵을 거쳐 태국으로 간다.
야소 바르만 1세(889~910)가 신을 만나려고 수많은 산상 사원을 지었는데 쁘레아 비히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왕들의 수도처인 쁘레아 비히어는 신성한 사원이란 뜻으로 캄푸차 데사 왕조에서 아주 중요하였다. 위치적으로도 중요하였고, 정치적인 이유보다 종교적인 이유로 앙코르 제국의 왕이 되면 맨 처음 순례했던 곳이다. 야소 바르만 1세 때인 893년에 짓기 시작하여 수리야 바르만 2세(1113~1150?) 때까지 증축과 보수를 거듭했으니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지었던 사원이다.
쁘레아 비히어 사원은 씨엠립에서 차로 출발하여 프놈 꿀렌 산을 거처 안롱벵을 지나는 길로 약 4시간을 가면 나온다. 혹은 벙 멜리아 사원과 꺼 께를 거쳐 가는 길도 있다.
쁘레아 비히어 사원의 정문은 남쪽으로 있다. 북에서 남으로 올라간 지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이다. 산을 이용하여 지었고 여러 왕에 걸쳐 오랜 기간 짓다 보니 사원의 형태가 독특하다. 언제 보아도 감탄사가 나온다. 구름도 함부로 넘지 못하는 신성한 당렉 산맥의 정상에 있는 왕의 사원. 왕이 되면 반드시 가야 하는 사원. 갈 때마다 가슴이 뛰게 하는 사원이다. 이곳에 다녀오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사원 입구에서 중앙 성소까지는 약 800m 거리이다. 천천히 걸어서 참배로 세 개와 고푸라 다섯 개를 지나면 중앙 성소가 나온다. 중앙 성소를 지나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다.
캄보디아 정부는 씨엠립 지역에 집중된 관광 산업을 이곳 쁘레아 비히어와 바다인 시학누빌로 확대할 계획이 있다. 그 탓인지 도로가 좋아지고 숙박 시설이 늘어나는 등 관광 인프라가 좋아지고 있다. 쁘레아 비히어 사원 아래에 있는 마을인 앙끄롱에는 2014년 9월 기준으로 게스트 하우스가 여섯 개 있다. 평균 가격은 객실 하나에 15달러 정도이다. 쁘레아 비히어 사원을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려면 안롱벵을 거친다. 벙 멜리아 사원과 꺼 께, 쁘레아 비히어 사원, 반테이 츠마 사원의 외곽 유적을 1박 2일 일정으로 방문하면 더 좋다.
캄보디아 여행 가이드북 『앙코르-신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