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 보호무역주의
경쟁적 보호주의
자유무역의 주된 매력은 그것이 수입가능 산업에 방대한 양의 경쟁을 가져온다는 생각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빈번한 합병과 인수가 어떤 기업들을 크게 만들고 포로가 된 국내시장을
먹고 살게 해준다. 기업들은 무기력해지고 그들의 종업원들은 소비자의 요구에 무감각해진다. 제품의 질이 떨어지고 가격은 오른다.,덕분에 기업은 엄청난 이윤을 올린다. 이 이윤은 경영자들의 주머니를 불린다. 사회가 신음하고 있을 때 ,경영자들은 호-불황기를 불문하고 자신들에게 많은 보너스를 지급한다.
자유무역은 대기업들에 대한 도전을 제공한다고 말해진다.; 외국과의 경쟁으로 무기력하고 과도하게 커져버린 회사들이 깨어나서 혁신적이고 활력적이고 고객에 부응하게 된다. 이런 도전이 없으면 국내기업들은 계속 비효율적이고, 다른 회사들과 소비자들을 잡아먹으면서 배를 불린다.
이런 류의 분석에는 상당한 진실이 있다.1970년대 초기이후로 외국과의 경쟁으로 미국기업들-자동차, 철강, 컴퓨터, 공구-등이 벌떡 일어서서 고도로 효율적이고 경쟁적이 되었다. 돈이 암말을 움직인다는 옛말이 있다; 경쟁이 회사를 움직인다는 것도 사실이다.
혁신과 신제품은 회사들 간의 활발한 경쟁(RIVALRY)의 산물이다. 경쟁이 회사들로 하여금 제품을 업그레이드 하고 그들의 PATRONS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게끔 몰아 부친다.비슷하게 종업원들 간의 경쟁은 그들로 하여금 주도적이게 하고 직업에 최선을 다하게끔 한다. 그들은 자그마한 과정과 세밀한 곳에도 주의하게 되고, 이는 다시 축적적인 이득을 만들고 종종 주요 비약만큼 중요하다. 사실상 극적인 비약은 인내와 끈기에서 나온다.
경쟁이 없으면 기업들과 노동자들은 오만해지고 만족적이 된다. 인내와 근기는 그들 마음에서 한창 멀다. 필연적인 부산물로 질 낮은 제품과 서비스와 당혹스런 고객들이 나타난다.
국내경쟁 vs 외국경쟁
경쟁은 끊임없는 변화를 포함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영원한, 독점적인(exclusive) 경쟁 같은 것은 없다. 지식은 한계가 없고, 회사들 간의 활발한 경쟁은 항상 개선하고 혁신하게 만든다.
그러나 경쟁은 그 기원상 대외적 만이 아니라 국내적일 수도 있다. 이 두 개는 경제에 극적으로 상이한 효과를 가져온다. 하나는 순수하게 이롭고, 반면 다른 하나는 약탈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다. 둘 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 응전해야 만 되는 도전이 있다.이 도전의 기원이 그 강제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일정한 한계 내에서는 외국과의 경쟁은 긍정적이다. 잠자고 있는 커져버린 공룡을 행동하게 하고 높은 생산성과 성장의 기관차가 되게끔 자극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가면 파탄시키고 파괴적이 된다. 외국과의 경쟁이 미국과 호주에 어던 결과를 가져 왔는지를 보라. 임금이 일반적으로 생산성과 같이 올랐던 이들 국가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산성이 오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꼼짝없이 그들의 소득이 부식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경제는 수년간 정체되어 있고, 사회 구조는 불평등과 빈곤에 의해서 갈가리 짖겨져 있다. 이것은 이중의 위험이다; 당신의 노력과 시간당 생산량이 떨어진다면, 당신 봉급의 삭감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더 효율적인데 봉급이 줄어든다면, 속에서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이것이 과도한 해외경쟁이 하는 것이다. 자유무역은 의심할 바 없이 생산성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각국의 생활수준을 올리지는 않는다. 어떤 국가들은 혜택을 보고 , 다른 국가는 고생한다, 크고 자원이 풍부한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가 최근에는 애를 먹는 쪽에 있다. 해외경쟁이 약탈적이 될 수도 있는 이유는 쉽게 이해된다. 상이한 부문들의 임금이 같거나 대동소이하면 외국과의 경쟁은 혼란을 일으키긴 하지만(disruptive), 파괴적은 아니다. 어떤 노동자들은 수입품과 경쟁하는 산업에서 직업을 잃고 그들의 삶은 일시적으로 파탄난다. 이것은 불편하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금방 번성하는 수출산업에서 직업을 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봉급이 똑 같다면 , 뭐 나빠진 것도 없다. 오래지 않아 무역에 의해 유도된 전문화로 국가 생산성이 올라가고 , 누구나 다 ,최소한 시간이 지나면, 임금이 오를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유무역이 모든 국가에 이롭다.
현실에서는, 그러나, 부문마다 현격하게 차이가 있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소매업, 레스토랑, 그리고 대부분의 서비스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이 번다. 해외경쟁이 고임금 부문의 고용을 삭감 시킨다면, 이 경쟁이 자유무역의 극단까지 가면 전반적인 임금의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은 지금은 주로 서비스를 수출하고 제조품을 수입한다. 수입이 증가함에 다라 제조업 고용수준이 낮아 졌다. 처음에는 단지 고용 비중이 줄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절대수준가지 떨어질 정도로 악화되었다. 점점 많은 수의 노동력이 제조업보다 훨씬 덜 지불하는 ,팽창해 가는 서비스업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햇다. 자유무역 옹호자들이 희망한 대로 수출부문은 가파르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서비스 임금이 낮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실질임금의 하락이 있었다.
외국경쟁은 이와 같이 그것이 저임금 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고임금 부문을 축소시킨다면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그 러나 그것은 다른 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국외 무역은 고임금 산업을 자극하면 그 나라에는 이득이 된다. 국제교역에서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나라는 제조업 고용이 가파르게 증가한 나라들이다. 일본, 한국, 대만, 독일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이득을 거두어 들였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고임금 부문이 저임금 산업의 희생위에 팽창했기 때문이다.
생산성은 이 모든 것에 어디에 들어 맞는가? 세계경제에서는 임금에 관한한 생산성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미국의 제조업 생산성은 가파르게 올라갔지만 ,실질임금은 모든 생산직에서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도 떨어졌다.NYT가 1992.10.2일자에 보고했듯이, 10년 전에 연간 $42000을 벌었던 GM의 노동자들이 지금은 단지 $30000을 번다. 이것은 진짜로 충격적이다, 이 노동자들은 전의 그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않은가! 일반적으로, 외국과의 경쟁으로 산업상대가격이 더 빨리 떨어지기 때문에 제조업 임금이 떨어지고 있고, 전반적인 국가 임금은 고임금 부문의 고용비중의 수축으로 하락하고 있다.
전반적 경제활동대비 고임금 산업이 팽창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생산성 향상이 막대해야 한다그 것은 높은 봉급이라는 비용의 불리함을 극복해야 된다.그 리고 생산성이 다른 경쟁자들을 앞질러야 한다.그 것이 물론 일본 ,독일 , 남한의 고임금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살 떨리는 외국과의 경쟁에서 임금이 오르려면 고임금부문 생산성이 외국의 해당 부문보다 더 빨리 올라야 된다. 외국 상대자만큼의 노동 강도로써 일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될 수도 있다. 해외의 상대자들만큼의 시간동안 일해야 될 것이다, 아니면 지불받는 돈이 줄어들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이 무역 광들이 미국노동자들한테 주는 충고다.“세계 경제에서는”, 그들은 말한다,“더 잘 교육 받아야 되고 ,더 열심히 일해야 되고, 임금 삭감도 감내해야 된다.” “더 저축해야 되고, 더 투자해야 되고, 세계 시장에서 더 생산적이고 경쟁적이어야 된다.”라는 게 그들이 늘상 하는 말이다. 범죄가 들끓고, 이혼이 빈발하고, 빚에 쪼달리고,세 금에 적대적인 사회에서 이 모든 주장들이 비실제적이고 따라서 쓸모없다는 것을 괘념하지 말자. 이 전략이 국내 임금이 쥐꼬리만 해야 된다고 하는 데, 뭐 때문에 수출에 집착해야 하나? 미국의 수츨은 1980년대에 두배 이상으로 뛰었다, 그러나 실질 임금은 주저앉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게 실현가능한 더 낫고 더 실제적인 대안 ,즉 국외 경쟁 대신 국내경쟁이 있다는 것을 보이겠다. 반복하면: 미국이 생산성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자유 무역에 문제가 있다.
치열한 국외 경쟁은 개가 개를 잡아먹는 세계를 만든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당신이 있는 곳에 계속 머물려면 있는 힘껏 뛰어야 한다. 다른 한편, 국내경쟁에서는 자유무역의 거의 모든 이점은 그대로이고 자유무역의 위해는 전혀 없다. 국내경쟁은 기껏해야 파탄적이다. 절대 파괴적이 아니다. 패자에게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가져오지만 ,그들을 파멸시키지는 않는다: 패자 각자에게는 더 큰 승자가 있다. 그러나 약탈적인 국외 경쟁에서는 모든 국내의 수입품과 경쟁하는 회사와 노동자는 패자가 된다.
경쟁은 그 형식이 무엇이든 간에 회사로 하여금 끊임없이 개선하고 새 기술을 찾도록 강요한다. 사실상 해외와 경쟁하기 전에 먼저 국내에서 전초전을 치루어야 된다. 국내기업들이 서로 개선하고 혁신하고 비용절감 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올림픽 경기에서 이기려면 먼저 국내의 라이벌을 물리쳐야 되듯이 국내 경쟁자들을 앞서야 될 것이다. 활기찬 국내 경쟁이 없으면 올림픽 우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면에서 국내 경쟁은 국외경쟁보다 우수하다. 국내에서는 전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한다. 누구도 특별대우를 받지 않는다. 외국회사는 저비용 노동을 쓰면 열등한 기술로도 최고의국내 회사를 꺾을 수 있다.그러나 국내에서는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똑같은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같은 그룹의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확보한다. 혁신해야 되고 여러 수단이 있어야 될 것이다. 성공은 노력의 강도에 비례하지 자연 자원이나 저임금에 의존하지 않는다.
낙후된 기술의 개도국에게는 국내경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외국의 기술, 투자 경쟁에 문을 여는 게 좋다. 인도, 파키스탄 , 아르핸티나 같은 나라는 선진국과 교역을 확대하므로써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임금과 기술 지식을 가진 나라들-미국, 일본, 유럽 등에게는 국내경쟁이 국외경쟁보다 우수하다. 효율성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머나먼 이국의 경쟁자에게 패해도 사람들은 개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웃보다 잘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한다. 엽집의 존스를 따라잡으려고 하지 먼 나라의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하바드의 경제학자 Michael Porter가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 이유다:“국내회사들 간의 경쟁은 외국 회사들과의 경쟁과는 다르고, 종종 그 국가에 훨씬 더 이로운 형식을 취한다.”
더군다나 국내경쟁에서는 국외경쟁처럼 파괴적인 요소가 없다. 국외경쟁을 하면 국내 회사들이 전부 다 망할 수도 있다. 미국의 소비자 전자제품 회사들이 그랬다. 그러나 국내경쟁에서는 그 산업의 몇몇 회사는 죽지만 그 산업 전체로서는 혜택을 본다. 국내에서 아무리 경쟁해도 사회는 멀쩡하다.
한회사가 신기술을 발견하고 따라서 경쟁자들보다 비용우위를 가진다고 해보자. 그러면 경쟁회사들 중 몇은 파산할 것이다. 그들의 노동자도 방출될 것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잘 나가는 회사에 다시 취직될 것이다. 다른 종유의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 할 필요도 없다. 회사들간의 경쟁이 생활을 파탄시키긴 하지만 황폐화 시키지는 않는다. 생활 스타일을 바꿀 필요도 없고 절망 속에서 살 필요도 없다.1960년대에는 크라이슬러에서 해고되면 쉽게 GM에서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지금은 아니다. 오늘날에는 ,외국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해고 노동자는 다른 자동차 회사에서 직장 구할 것 같지 않다. 레스토랑이나 소매업에서 전의 봉급의 몇 분의 일의 봉급으로 일해야 될 것이다.
지금까지 외국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미국 산업들-컴퓨터. 항공. 자동차, 화학, 철강, 원격통신, 석유정제, 금속, 제약산업들-은 1973년 즉 자유무역이 시작된 해 이전에 세워진 것들이다. 그 당시는 미국회사들이 국내 경쟁은 치열했고 외국과의 경쟁은 별로였던 때였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새로운 산업들-로봇, 비디오 장치, 팩스 기계-주에서는 미국은 약소 참여자이다. 그것들은 전부 미국 발명품이지만 개발과 생산에서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교훈은 명백하다; 외국과의 경쟁은 기존의 회사들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고 신기술을 정착을 질식시킨다.
국내경쟁은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러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 한때는 오늘날의 미국의 대기업들이 세계기술의 주도자였다 .국내경쟁의 자극으로 그들은 혁신적이고 활기차고 역동적이였다. 신 특허나 발명의 도입이 그들의 성장을 저해하지 않았다, 전산업을 말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는 아득한 옛날의 유령처럼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 졌다.2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유일한 경제 초강국이였다 .슬프게도 자유무역이 미국을 녹슨 기계와 공장의 방대한 묘지 터로 바꾸어 버렸다.
극단적이라면, 국내경쟁도 전산업을 초토화 시킬 수 있다.농업이 그런 예다. 그러나 국가전체로는 이익이다. 농업문제는 정부 보조를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농부들 간의 경쟁이 농업에 해가 될 수도 있지만 사회는 더 잘살게 된다. 대조적으로 약탈적인 외국과의 경쟁은 전산업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다수에게 해가 될 수도 잇다.
경쟁적 보호주의
국내 경쟁이 외국의 도전보다 훨씬 우수하다면 경재정책은 국내 경쟁을 장려하고 국외경쟁을 억눌러야 당연하다. 정부가 개입해서 국내경쟁을 강화하고 강요해야 된다. 전지구적 경쟁으로부터 국내회사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경쟁적 보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인력과 자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에게는 경쟁적 보호주의가 자유 무역보다 훨씬 더 우수하다. 무역 그 자체는 내재적인 가치가 없다. 스스로의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경쟁을 강화하기 때문에 그 것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역은 외국산 제품의 국내 대체재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또한 파괴적일 수도 있다. 경쟁적 보호주의는 경쟁의 장점은 유지하면서 자유무역의 결점들은 없다.
경쟁적 보호주의는 특수 이익과 정치가들이 밀던 무역 제한이라는 전통적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외국과의 경쟁을 국내경쟁으로 대체하는 것은 순수히 경제학에 근거한 아이디어다. 미국의 경우에는, 기존의 기술과 자원을 정착시킴으로써 전체 노동력의 80%를 차지하는 비감독직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에서 고안되었다.
경쟁적 보호주의는 정부가 국제교역을 제한하도록 요청할 뿐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독과점을 폐지하도록 요청한다. 아이디어는 국내 회사들 간의 경쟁은 한층 증가시키는 한편 약탈적인 외국의 수출회사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보호를 단편적(piecemeal0 기초위에서 허용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호주는 자동차, 철강, 섬유산업에 보호조치를 취했지만 ,다른 산업에서는 무역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저임금의 서비스 산업으로 노동자를 떨어내고 있는 전 고임금 제조업 부문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무역은 최적 수준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외국의 투자와 기술
무역에 적용되는 제한이 외국의 투자와 기술에까지 확장되서는 안된다. 기술의 국제적 이전은 인류에게 큰 축복이다, 세계에 창궐하는 기아와 가난의 문제를 고칠 수가 있을 것이다. 재화에 있어서의 외국과의 경쟁하고는 달리, 외국기술은 환경에 해를 끼칠 때를 제외하면 ,약탈적 효과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한 반오염법을 통해서 방지할 수가 있다.
전쟁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의 직접투자가 엄청 증가했다.1950년대와 1960년대에 미국자본이 유럽, 아시아, 호주로 흘러갔다. 미국의 다국적 회사들은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원료를 추출할려고 공장들을 세웠다.
1940년대 내내 미국은 커다란 무역흑자를 기록했고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외환이 남아돌자 ,미국기업들은 외국기업들을 사들이거나 다른 나라들에 공장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그 나라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선진 기술들을 이전했다. 혜택은 고품질 제품만이 아니라 고생산성이란 형태로 나타났다. 물론 다국적 기업들도 또한 많은 이윤을 냈다,그 러나 혜택의 흐름은 , 외국투자 비판자들이 주장하듯이, 일방통행로는 아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기에는 미국은 점점 더 무역적자로 돌아섰다. 이번에는 외국 생산자들이 많은 외환 또는 달러를 모았고 ,그걸로 미국기업들을 사 들이고,미국에 새 공장을 건설했다.1990년대에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외국투자 비중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