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끄레 머천다이징'의 이만중(李晩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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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끄레 머천다이징'의 이만중(李晩中) 회장

경기랑 0 1507

의욕없는 중국 현지 직원 한국 데려와 '감동' 대접 中 매장 매출 3배로 뛰어
지진 현장의 시신 앞에서 묵념하는 日 구조대 사진 中 감동시켜 단번에 '호감'

패션기업 '보끄레 머천다이징'의 이만중(李晩中) 회장이 1999년 처음 중국시장을 노크할 때의 일이다.

그는 '온앤온(On&On)' '더블유닷(W.)' 등의 브랜드로 현지 패션업체와 합작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측 파트너는 협력하는 척했으나, 보끄레 상품의 판매에는 열의가 없고, 한국 디자인을 베껴 자기 브랜드를 키우는데만 열심이었다. 결국 합작사업을 접고 북경(北京) 상해(上海) 심천(深�q) 등에 직영 매장을 열었다.

그는 어느 날 북경 매장에서 중국 종업원이 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한 고객이 매장의 상품이 마음에 들어 구입하려 했지만 입어보니 작았다. 창고 안에 그보다 큰 사이즈가 있었지만, 중국 여직원은 "메이요우(沒有·없다)"하며 고객을 그냥 돌려보냈다.

2008년 9월 초 LG전자 초청으로 북경올림픽 경기장을 방문한 LG희망소학교 교사들.
중국 직원의 업무 태도에 실망한 이 회장은 그 직원을 나무라는 대신 '서비스를 왜 저렇게밖에 못할까'를 생각했다.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국인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비판을 받는데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열심히 하나 안 하나 똑같은 대우를 받기 때문에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런 환경에 있어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좋은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북경과 상해, 심천 등의 매장 직원 6명을 한국으로 1주일간 초청했다.

처음 3일은 서울의 5성급 호텔에 묵게 했고, 다음 이틀은 3성급 호텔에 재웠다. 서비스의 차이를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마지막 날은 한국 직원들 집에 홈스테이를 시켰다. 한국인의 푸근한 정을 통해 '가족'으로 느끼도록 배려한 것이다. 회사 방문 때는 공장 입구에 '보끄레 중국 가족(家族) 열렬 환영'이란 플래카드를 걸었고, 엘리베이터 안에는 6명의 이름을 일일이 붙였다. 본사에서 이들을 맞은 이 회장은 한명 한명의 손을 꼭 잡으며 포옹한 뒤 "수고 많았다"고 진심으로 위로했다. 도중에 한 중국 직원이 눈시울을 붉히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간 뒤 중국 매장의 매출은 3배로 뛰었다. 중국 직원들은 이 회장을 "한국 아빠"라고 부른다. 어느 날 중국에 진출한 다른 한국 패션업체가 보끄레의 부(副) 총경리에게 "월급을 2배 주겠다"며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의 이 회장이 그 여직원에게 국제전화를 걸자 그는 "한국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절대로 안 가요"라며 오히려 이 회장을 안심시켰다. 전화를 끊고 이 회장은 고마움에 한참을 울었다.

지구 상의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중국에서도 '감동(感動)'만큼 강한 전략은 없다. '감동'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기업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가짜와 조작이 판치는 중국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품이든, 서비스든, 기업 경영이든, 드라마든, 개인의 삶이든, 그 속에 마음을 울리는 진정한 무엇이 있을 때, 중국인들은 더욱 감동하고 열광한다.

중국에서 '감동'의 반대말은 '무감동'이 아니라 '분노'이다. 작년 5월 사천성(四川省) 지진 직후 일본과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상반된 반응이 이를 보여준다. 당시 일본은 지진 현장에서 나온 단 한장의 사진으로 국가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다. 그 사진은 지진 현장에 투입된 일본 구조대가 사망한 중국인의 시신 앞에서 묵념을 하는 장면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에 많은 중국인이 감동했고, 그 결과 일본은 '좋아하는 국가' 순위에서 한국을 앞질렀다. 반면 당시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중국 지진 피해를 조롱하는 댓글을 달았고, 그것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한국을 보는 중국인들의 감정이 매우 나빠졌다.

지난달 16일 사천성 도강언(都江堰) 옥당(玉堂)중학에서 열린 '옥당 LG 박애(博愛)중학 준공식'은 '감동경영'의 한 사례를 보여준다. 옥당중학은 작년 5월 12일 사천성을 덮친 대지진으로 학교 건물이 붕괴돼 많은 희생자를 낸 비극의 현장이다. LG는 이 소식을 듣고 1000만위안(한화 약 17억원)의 성금을 내 학교를 다시 세우도록 도왔다. 준공식에는 1300여명의 학생과 우남균 LG전자 중국본부 사장, 신정승 주중대사, 장이만(江亦曼) 중국적십자사 부총재, 푸용린(傅勇林) 성도(成都)시 부시장 등 한·중 양측 인사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최신식 신축 교사(校舍)와 냉장고, 세탁기가 갖춰진 기숙사에 감탄했다.

하지만 이 행사에 참석한 중국 적십자사 장 부총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학교 한편의 'LG 애심(愛心)도서실'을 들렀다. 그리고 거기에 비치된 1000여권의 책이 LG 중국 본사 및 전국 판매점 직원들이 한 권 두 권씩 보내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축사에서 "도서실에 기증된 책 한 권 한 권마다 지진으로 상처입은 학생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려는 LG 직원들의 사랑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았다"면서 "이를 통해 한국 국민의 중국 국민을 향한 깊은 정과 두터운 우의(深情厚誼)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행사를 보도한 중국의 '공익시보(公益時報)'는 "LG전자가 중국에 진출한 이래 '중국에 사랑을(愛在中國)'이란 방침을 정해 '이인위본(以人爲本·사람을 근본으로 삼음)'의 정신으로 '조화(和諧)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돈'보다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올림픽 경기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뛰어난 기술과 품질은 기본이다. 거기에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동의 스토리'가 더해져야 경쟁력은 폭발한다. 중국인을 감동시키려면 그들의 생각과 생활,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중국인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 글로벌 기업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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