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50대들에게``````~~~~
경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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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6 14:12
세상의 50대들에게 바친다 - 불가능한 꿈은 없다 쓸데있는 이야기
딕 배스·프랭크 웰스·릭 리지웨이 지음 / 김두겸·황정일 옮김 / 중앙M&B / 1998
딕 배스(Dick Bass·1930∼)는 텍사스에서 석유회사를 경영하는 한편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 옆에 미국 최대 규모의 스키 리조트 스노버드를 건설하고 있는 굴지의 사업가다. 별명이 ‘떠벌이 배스’일 만큼 유쾌한 다변가인 그는 스노버드의 직원들을 모아놓고 얼마 전 마터호른에 오른 무용담을 늘어놓다가 뜻밖에도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다. 스노버드에서 스키 시즌에만 순찰대장으로 일하고 있는 한 부하 여직원이 매킨리의 유일한 홍일점 가이드라는 사실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티 호이(Marty Hoey·1952∼1982)였다. 딕은 깜짝 놀라 마티에게 자신의 가이드가 되어달라고 조른다. 그러나 사장인 그가 되돌려 받은 것은 차가운 냉소뿐이었다. 마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렇게 대꾸한다.
“허풍만으로는 오르지 못할 텐데요.”
비록 50대에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고교시절 미국 최고의 수영선수로 이름을 드날렸던 딕으로서는 여간 자존심이 상한 게 아니다. 당돌한 부하 여직원의 도발이 그의 도전욕에 불을 질렀다. 고작해야 168센티미터의 신장에다가 가냘픈 몸피를 지녔을 뿐인 이 여자아이(?)도 오르는데 나라고 왜 못 오를쏘냐 하는 오기가 치솟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딕은 모르고 있었다. 마티 호이가 미국을 대표할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최강의 여성 클라이머라는 사실을(등반가로서의 마티 호이의 모습은 존 로스켈리의 <난다 데비>나 로버트 크래이그의 <파미르, 폭풍과 슬픔>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당장 세스나를 타고 해발 2134미터의 카힐트나 빙하까지 날아간다. 빙하 트레킹에 돌입한 딕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데에는 단 3미터를 전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배낭 무게만 30킬로그램에다가 별도로 15킬로그램의 짐을 썰매에 싣고 그것을 끌고 가자니 벌써 다리 무게는 천근같고 배 근육이 당겨오기 시작했다.
20미터를 전진하고 나니 호흡은 흐트러지고 심장에서는 기차화통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등반대장으로서 마티는 가차없었다. 그녀에게 딕은 다만 서투르고 어설픈 등반대원이었을 뿐 더 이상 자신의 고용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평소 “돈 자랑이나 하는 말 많은 도시인들을 믿지 않는” 마티조차도 경악할만한 사태(!)가 발생했다. 딕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13일간의 사투 끝에 기어코 매킨리(McKinley·6194m)의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믿을 수 없어요. 사장님은 정말 초인이에요.”
그녀는 마음을 열고 산사람 최고의 경의가 담긴 찬사를 던졌다.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 된 딕은 그러나 유의미한 토를 단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야. 난 정말 멋진 것을 발견했어.”
딕이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했다는 만족감,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냈다는 충만감, 정상에 올라 아래에 펼쳐진 웅장한 경관을 본 환희에 덧붙여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비즈니스 생활에서 등반은 귀중한 해독제”라는 사실을 발견해냈다. 저돌적인 사업가 딕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그저 황당무계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원대한 꿈을 꾼다. 이참에 북미 최고봉에 올랐으니 내친 김에 각 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다 오르면 어떨까? 딕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얼마 남아있지도 않은 인생에서 남은 시간을 다 쏟아 부을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임에 틀림없었다.
딕은 매킨리에서의 하산이 끝나기도 전에 마티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솔직히 전문산악인의 입장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헛웃음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이미 50세를 넘어선 순수한 아마추어가 7대륙 최고봉을 모조리 오르겠다고? 냉정하게 판단해볼 때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다. 마티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뜻밖에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정말 근사한 아이디어에요. 저도 함께 가고 싶어요.”
세븐 서미츠라는 ‘불가능한 꿈’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티 호이가 이 불가능한 꿈의 수호천사로 자임하고 나선 순간이기도 하다. 그때가 1981년 여름이었다.
같은 꿈을 꾸고 있던 두 중년사업가들이 만나다
이제 와 돌이켜보아도 딕 배스가 프랭크 웰스(Frank Wells·1953∼1994)와 만나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다.
몇 달 전 딕은 댈러스의 한 파티에서 조만간 자신이 매킨리 등반을 감행하겠다고 떠벌인 적이 있다. 그때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던 캘리포니아의 모험가 잭 휠러가 전화를 걸어왔다. 잭은 딕이 실제로 등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엉뚱한 부탁을 한다. 당신과 비슷한 연배의 사업가가 매킨리 등반에 나서려 하는데 조언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그 정도야 기꺼이 응하지. 그런데 그 친구는 뭣 때문에 매킨리에 오르려 한답니까?”
“꿈이 있답니다.”
“그 친구 꿈이란 게 도대체 뭐래요?”
딕은 잭의 대답을 듣자 너무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각 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오르는 거랍니다.”
이 또 다른 몽상가가 프랭크 웰스다. 옥스퍼드를 수석 졸업하고 스탠포드 로스쿨을 거쳐 잘 나가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다가 당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메이저영화사 워너브라더스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던 인물이다. 딕은 지체없이 할리우드로 날아간다. 워너의 사장이라면 하루에 16시간을 일해도 모자랄 만큼 일에 치어 살 수 밖에 없다. 딕에게 허락된 면담시간은 고작해야 한 시간뿐이다.
워너 본사의 VIP용 다이닝룸에서 딕을 만난 프랭크는 허겁지겁 식사를 하면서 놀라운 속도로 세븐 서미츠의 계획을 브리핑한다. 할리우드 메이저의 CEO답게 극히 치밀하고 저돌적이며 환상적(!)인 계획이다. 넋 놓고 그의 브리핑을 듣던 딕은 내심 혀를 휘두르며 이렇게 독백한다.
“이 친구 나보다 더 나를 닮아 있는 것이 아닌가?”
각자의 사업분야에서 이미 월드베스트의 자리에 올라 있는 두 사람은 여러 모로 공통점이 많았다.
그들은 직관을 믿고, 결단력이 빠르며, 실행에 옮기는 데 주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의기투합하는 데에는 한 시간까지도 필요 없었다.
딕은 프랭크의 계획 브리핑을 중간에서 자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총비용은 얼마나 들 것 같아요?”
“내 생각으로는 적어도 50만 달러.”
딕이 손을 내밀었다.
“귀하가 괜찮다면 내가 파트너가 되겠소.”
프랭크가 활짝 웃으며 그 손을 힘껏 쥐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이제 재력과 의지를 가진 두 50대의 사업가가 불가능한 꿈인 세븐 서미츠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준비와 훈련 그리고 탐색전이 필요하다. 잭 휠러는 두 사람의 일정을 관리하고 전문산악인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일을 자임한다. 잭이 프랭크에게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훗날 이 책 <불가능한 꿈은 없다>를 실제로 집필하여 공동 저자로 이름이 올라 있는 릭 리지웨이(Rick Ridgeway·1949∼)였다. 릭은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이었고 K2에 오른 최초의 미국인이기도 하다.
릭이 프랭크에게 암벽등반을 가르쳐 주겠다며 함께 데리고 나온 자일 파티들을 보면 기가 막히다. 인수봉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겼으며 세계 굴지의 등반장비회사 파타고니아를 운영하고 있는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1938∼)와 요세미테 거벽등반의 전설적인 인물 앨런 스텍(Allen Steck)이 따라온 것이다. 아마도 프랭크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프랭크의 암벽등반 솜씨는 물론 형편없다. 손은 부르트고 무릎은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미싱다리(우리식 표현으로는 오토바이)’로 후들거렸던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프랭크는 이런 체험마저도 영광으로 받아들일 줄 안다.
“골프장에 처음 나간 날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와 함께 라운딩한 기분이었다.”
1981년이 가기 전에 그들은 유럽의 최고봉 엘부르즈(Elbrus·5642m)에 도전한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딕은 정상 등정에 성공하지만 프랭크는 고소증세로 도중 하차한 것이다. 이때부터 프랭크는 모든 사람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체력보다도 더욱 문제가 된 것은 ‘고소증세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막무가내로 돌격하기만 하는 그의 태도였다. 1982년 초에 도전장을 던진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구아(Aconcagua·6960m)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딕은 성공하고 프랭크는 나자빠진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어깨를 겯고 세븐 서미츠에 오르자는 계획은 일찌감치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듯 했다.
프랭크는 그러나 놀라운 투지와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낙담하기는커녕 지금은 그저 탐색전일 뿐이라며 오히려 전의를 불태웠다.
더 나아가 그는 세븐 서미츠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보장하고 있는 워너브라더스의 사장직을 헌신짝처럼 내던진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 특히 아내와의 불화가 싹튼 것은 물론이다. 비즈니스계에서는 그를 아예 노골적으로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프랭크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 무엇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이 50대의 성공한 사업가를 폭풍설 몰아치는 산꼭대기로 내몰았을까?
“중요한 것은 먼 훗날 지금의 결정에 아무런 후회도 안 할 자신이 있느냐는 거야. 나는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왜 산에 올라야 하냐고?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느끼기 때문이야. 이번에 등정에 실패했다고 주눅들진 않아. 다시 도전하면 돼! 재도전이 더욱 마음에 들어.
나는 쉽게 얻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거든.”
마티 호이를 보내고 불퇴전의 배수진을 치다
그들이 애초에 세븐 서미츠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까다롭다고 판단한 산이 에베레스트(Everest·8850m)다. 난이도나 고도 때문이 아니다.
1990년까지 등반허가의 예약이 모두 끝나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미리 등반허가를 받아놓은 팀에 동참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동참허락을 받아낸 팀은 1982년 5월 루 휘태커가 이끄는 미국등반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택한 루트는 티베트에서 그레이트 꿀르아르를 따라 오르는 전인미답의 북벽 코스다.
딕과 프랭크 같은 아마추어로서는 노멀 루트인 사우스콜 루트도 버겁기만 한데 언감생심 북벽 코스의 개척등반이라니! 두 사람은 그러나 주저 없이 이 팀에 합류한다. 정상 등정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에베레스트의 맛을 보고 고소적응이라도 해내리라는 심산이었다.
이들 등반대는 탁월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8000미터까지 등반하는 데 성공한다. 딕과 프랭크도 7000미터까지 오르며 전문산악인들을 놀라게 한다.
제1공격조로 선발된 세 사람 중에는 마티 호이도 끼어있었다. 그러나 제6캠프를 설치하던 도중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마티가 안전벨트가 풀려있는 것을 깜빡 잊고 다른 대원을 위하여 자리를 비켜주다가 그만 추락하여 무려 1800미터를 날아버린 것이다. 이 하찮은 실수만 없었더라면 미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것이 거의 확실시되던 그녀였다. 원정대 전체가 비탄에 잠긴 것은 물론이다. 딕과 프랭크 역시 절망에 몸을 떨며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그들이 택한 결론은 그러나 퇴각이 아니라 전진이다. 특히 딕은 마티를 위해서라도 세븐 서미츠 등정 계획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고 굳은 맹세를 했다.
애당초 자신을 고산등정의 기쁨에 눈뜨게 해주고 “불가능한 꿈은 없다”며 이 무모한 계획에 최초로 동참해준 사람이 바로 마티가 아니던가?
그들에게 있어서 마티는 세븐 서미츠의 수호천사였다. 그녀의 혼령이 함께 하는 한 오직 전진이 있을 뿐이다. 마티를 보내고 난 이후 그들은 등정계획을 보다 더 타이트하게 잡았다. 1983년 한해 동안 7대륙 최고봉에 모조리 오른다는 것이다. 프랭크가 브리핑하는 등정계획을 듣고 있자면 숨이 다 가빠질 지경이다.
“1983년 1월 1일 스타트! 첫 등정은 남극 최고봉 빈슨 매시프(Vinson Massif·4897m), 돌아오는 길에 남미에 들러 아콩카과를 해치우고 한달 반정도 쉰 다음 독일 팀과 합류해 에베레스트 등정. 다시 2주정도 쉰 다음에 매킨리에 붙고 그것이 끝나면 곧바로 아프리카로 날아가 킬리만자로(Kilimanjaro·5895m). 다시 비행기로 소련으로 날아가 엘부르즈를 끝내면 몇 주간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호주의 코시어스코(Kosciusko·2230m)를 해치우자고!”
간단히 말해서 두 사람 모두 그 이전까지의 등반은 모두 백지화하고 1983년 한해를 몽땅 바쳐 세븐 서미츠를 차례로 해치우자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에 귀를 기울여보면 수긍 못할 것도 없다. 첫째, 세븐 서미츠에 오래 매달려 있다가는 사업가로서의 생명은 끝이다.
둘째, 고소적응이 되어 있을 때 몰아붙이는 것이 더욱 승산 있다. 셋째,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만큼 조금이라도 체력이 남아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
그들은 실제로 이 엄청난 모험을 해낸다.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면 순서가 조금 뒤바뀌었다는 것뿐이다. <불가능한 꿈은 없다>는 바로 이 겁 없는 50대 사업가들의 세븐 서미츠 피크 헌팅을 다룬 가슴 벅찬 기록이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명시 <율리시즈>를 읊조리며
본래 산서에서 매력적인 것은 산이 아니라 그 산에 오르는 인간들이다.
<불가능한 꿈은 없다>에는 참으로 많은 세계적인 산악인들이 등장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상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생중계를 감행한 산악인 겸 카메라맨 데이비드 브리셔스, 미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래리 닐슨, 두 사람이 세븐 서미츠에 오르는 모습을 모조리 촬영한 스티브 마츠, 빈슨 매시프를 단독 등반한 크리스 보닝턴, 빈슨 매시프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온 일본의 영웅 미우라 유이치로 등의 호쾌한 모습을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만이 주는 매력이다.
산악인은 아니지만 알래스카 개썰매 경주의 여장부 수잔 버처와 낙천적이고 담대한 남극비행사 가일드 커쇼도 잊을 수 없는 캐릭터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여전히 딕과 프랭크다. 지천명이라는 50을 넘긴 나이에, 모든 기득권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자신만의 꿈을 위해 전력투구한 그들의 모습은 더 없이 감동적이다. 세븐 서미츠를 끝내 완결시킨 사람은 딕이다. 프랭크는 한번만 더 에베레스트에 가면 그날로 이혼하겠다는 아내의 협박과 애원을 못 이겨 식스 서미츠로 만족해야만 했다.
딕은 홀로 마지막 남은 에베레스트를 1985년에 오름으로써 인류 최초의 세븐 서미터가 됨과 동시에 에베레스트 최고령 등정자(당시까지의 기록)가 된다. 딕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미리 준비해온 <기도문>과 <마티에게 바치는 추모사>를 읽는 장면에서는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는 가족들과 프랭크 그리고 세븐 서미츠를 함께 했던 모든 산악인들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오늘의 성과를 마티 호이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그녀가 제게 넣어준 영감과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지금 초모랑마의 무릎에 안겨 여기 북벽 아래에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순간을 세상의 50대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그들은 알프레드 테니슨이 불멸의 시 <율리시즈>에서 읊었던 것처럼 인생의 하반기야말로 최고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신념을 저와 함께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딕이 그 절정의 순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낭송했던 <율리시즈>를 옮겨 적는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숱한 난관을 버티었네
하늘과 땅을 움직이던 그 옛날의 힘은 이제 없어졌지만
우리 나름의 우리는 존재하는 것
영웅의 가슴에 어울릴 기백은 시간과 운명으로 약해졌지만
애써 구하며 찾고 굴하지 않는 의지는 굳건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