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다 갔습니다 ~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서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지난 2월 늦은 저녁이었다.
혼자 이 술집에 들른 것은 내 입장에서도 다소 의외였다. 나는 소주나 막걸리
를 즐기지도 않았고 이 집은 맥주나 와인 같은 것은 팔게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술을 시켰다.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 전에 김치와 나물들이 나왔다. 제대로 들어왔다는,
아니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느낌이었다. 밑반찬만으로 술을 반병 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후로 이 집은 내가 이틀이나 사흘에 한번꼴로 들르는
단골 술집이 되었다.
빈대떡에 막걸리, 찌개에 소주, 몇가지 나물들과 김치를 늘어놓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하는 생각이란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는 식의 소소한 과거사이다.
이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 곳은 내게 오로지 기억, 기억 ..그렇게 속삭이는 장소가 되었다.
천천히 술을 마시다 보면 홀연, 낫 놓고 기억자를 모르듯,
기억 속의 내가 뭣도 모르고 살아온 모양이 환들처럼 떠오른다.
현실의 시간은 밤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기억의 한 낮을 산다.
요즘 내가 그 땡볕 아래서 기다리는 인물은,
숨겨둔 단골 술집처럼 나는 남몰래 마음에 두고 좋아하지만,
그쪽은 이제 나를 한낱 친구로만 여기고 잊었을 한 여자이다.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는 방식이며
포즈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배운다.
동네에 단골 술집에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로 시작하여 ~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를 기다리는 방식이며 포즈이고 하다.로~
이어가는 2008 이상문학 대상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의 일부분입니다.
요즘은 괜히 책장앞을 서성이며 예전에 뻑가게 했던 한귀절들을
소가 되새김하듯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는게 취미입니다.
저런 아지트 하나쯤 있으시죠?
나이가 먹어가는지 션한 맥주 한잔보다는
이제 저런 곳에 가서 따끈한 찌개에 소주 한잔를 마시며
인생을 아는척 해야 하는 것이 세월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네요 ~
열흘 전엔가 운좋게 이른 퇴근할 일이 있어 마이산에 탑사에 갔다
돌아나오며 모래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황홀한 산벚꽃과 운무 그리고 굽이굽이 돌은 길 ~ 멋지지 않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