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외국인이 살아가기
안녕하세요.
저도 태국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냥 몇 번 여행다녀온 것과, 태국에 대한 책을 조금 읽은정도, 그냥 저도 여기 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태국에서 대표적인 외국인 그룹은 아마도 중국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교라고 불리는 태국내 중국인은 태국 경제를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도네시아의 경우, 과거 화교에 대한 공격이 일어났을 정도로 현지인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데 태국의 경우에는 상당히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태국인 혹은 태국의 특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듯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인이 태국에 대규모로 정주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명나라 이후부터 중국인의 해외진출이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태국진출은 19세기라고 합니다. 이들은 주로 방콕지역에 거주하면서, 쌀거래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특히 정미소를 통해 쌀의 대규모 거래를 직접 관장하면서 힘을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일단 태국에 들어온 중국인이 자리를 잡으면, 중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하나 둘씩 불러들여서 함께 사업을 나누는 형태로 성장해 갔다고 합니다.
초기 중국인 이민사회에서 태국인과의 사이는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어를 다르게 쓰고, 이름도 다르기 때문에 태국인으로서는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나아가 경제적인 격차가 반감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20세기 초 태국정체가 입헌군주제도로 바뀌면서, 중국인에 대한 정책은 태국화, 현지화로 변경됩니다. 당시 수상이었던 피분은 태국내 거주하는 중국인에 대해 태국 국적을 취득하고, 태국식 이름을 사용할 것을 강제합니다. 대신 그들의 재산권과 경제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습니다. 중국인은 이 조치를 받아들이게 되고, 태국사회에 동화되어 버립니다. 이 부분에서 태국인들의 개방성이 제시되기도 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동질화 시킨다는 측면에서 태국인의 균형감각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사업을 지속합니다.
2차대전이 끝난후 1957년 사릿장군에 의한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태국내에서 쿠데타는 정기적인 행사처럼 진행됩니다.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중국인들은 태국 군부인사들과의 유대를 모색하고, 이때 태국인의 독특한 관계인 '포쿤'이라는 개념이 사용됩니다. 즉 태국의 권력자는 자애롭게 중국인 화교들을 보살펴주고, 대신 중국인 화교들은 이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답하는 관계가 성립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1960년대 후반부터 중국계 태국인들이 미국유학을 통해 관료로 태국정부에 입성하면서 한층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인들은 태국경제를 좌우하고 있지만, 태국인들에게는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태국내에 거주하는 부자들 뭐 이런 개념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와 같은 화교 공격현상이 나타나기는 어렵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결국 외국인으로서 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반드시, 태국화 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태국화를 위해서는 참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할 거 같습니다. 비록 몇 권의 책만을 겨우 읽은 상태지만, 태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는 아닌 거 같습니다. 보잘것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태국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냥 몇 번 여행다녀온 것과, 태국에 대한 책을 조금 읽은정도, 그냥 저도 여기 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태국에서 대표적인 외국인 그룹은 아마도 중국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교라고 불리는 태국내 중국인은 태국 경제를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도네시아의 경우, 과거 화교에 대한 공격이 일어났을 정도로 현지인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데 태국의 경우에는 상당히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태국인 혹은 태국의 특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듯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인이 태국에 대규모로 정주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명나라 이후부터 중국인의 해외진출이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태국진출은 19세기라고 합니다. 이들은 주로 방콕지역에 거주하면서, 쌀거래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특히 정미소를 통해 쌀의 대규모 거래를 직접 관장하면서 힘을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일단 태국에 들어온 중국인이 자리를 잡으면, 중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하나 둘씩 불러들여서 함께 사업을 나누는 형태로 성장해 갔다고 합니다.
초기 중국인 이민사회에서 태국인과의 사이는 원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언어를 다르게 쓰고, 이름도 다르기 때문에 태국인으로서는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고, 나아가 경제적인 격차가 반감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20세기 초 태국정체가 입헌군주제도로 바뀌면서, 중국인에 대한 정책은 태국화, 현지화로 변경됩니다. 당시 수상이었던 피분은 태국내 거주하는 중국인에 대해 태국 국적을 취득하고, 태국식 이름을 사용할 것을 강제합니다. 대신 그들의 재산권과 경제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습니다. 중국인은 이 조치를 받아들이게 되고, 태국사회에 동화되어 버립니다. 이 부분에서 태국인들의 개방성이 제시되기도 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동질화 시킨다는 측면에서 태국인의 균형감각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사업을 지속합니다.
2차대전이 끝난후 1957년 사릿장군에 의한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면서,태국내에서 쿠데타는 정기적인 행사처럼 진행됩니다. 사업을 지속해야 하는 중국인들은 태국 군부인사들과의 유대를 모색하고, 이때 태국인의 독특한 관계인 '포쿤'이라는 개념이 사용됩니다. 즉 태국의 권력자는 자애롭게 중국인 화교들을 보살펴주고, 대신 중국인 화교들은 이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답하는 관계가 성립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1960년대 후반부터 중국계 태국인들이 미국유학을 통해 관료로 태국정부에 입성하면서 한층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인들은 태국경제를 좌우하고 있지만, 태국인들에게는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태국내에 거주하는 부자들 뭐 이런 개념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와 같은 화교 공격현상이 나타나기는 어렵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결국 외국인으로서 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반드시, 태국화 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태국화를 위해서는 참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할 거 같습니다. 비록 몇 권의 책만을 겨우 읽은 상태지만, 태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는 아닌 거 같습니다. 보잘것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