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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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

kSunny 4 733

 새해 맞이 잘 하셨나요?

저는 영어책을 열심히 읽고, 번역하고 있는데요. 여행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기도 해서 조금 올려 보려 합니다. 번역본이 이미 나와 있지만, 제 번역본으로 올려 봅니다, ㅎㅎ. 이 책으로 함께 영어 공부하시는 분들이 계셔 도움되고자 좀 더 직역으로 했습니다.

제목에서도 나와 있지만, 저자는 세상을 변화시켜 보고자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떠났습니다. 기본적으로 네팔과 다른 개발도상국가에 도서관과 학교를 건립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들에 대해 아주 상세히 써주고 있어 재미도 있고 유익합니다. 저는 이 책 보면서 2015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일단 조금만 올려 보고 계속 읽고 싶다는 분 계시면 to be continued!


제목: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

저자: 존 우드


 

 

1 장

 

“선생님은 아마도 언젠가는 책들과 함께 돌아오실 겁니다.”

 

 

 

내가 잠식해오는 밤에 맞서 양털 재킷의 지퍼를 잠궜을 때, 얼음같은 바람이 산에서 불어왔다. 나는 일기에서 머리를 들어, 눈으로 덮여 급상승한 히말라야 산 꼭대기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구름들은, 밤의 보초처럼 계곡 안으로 행진할 준비가 된 채, 산능선 너머로 떼지어 나타났다. 어린 네팔 소년이 음료를 권하며 끼어들었다. 이 여덟 살 소년은 스스로 그 작은 오지여행자용 숙소를 경영하는 듯 보였다; 내가 탁자에 앉아 있는 두 시간 동안 그 밖의 누구도 보지 못했다.

 

나는 맥주가 있는 지 물었다.

 

“그럼요!” 그의 열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아동 노동법에 대해 의아해하고, 이 아이가 내가 지금까지 시중받은 바 있는 가장 어린 바텐더인지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그는 달려가 버렸다.

 

 

여느 때라면,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케팅 이사로서 근무 일과로 남아 있는 3-4시간을 준비하면서, 해질 무렵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할 것이다. 오늘은 축복받은 듯이 달랐다 - 히말라야 21일 트레킹 중 첫 날이었다. 나는 9년 만에 가장 긴 휴가의 시작과 정신없던 1990년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쳇바퀴 같은 삶으로부터 휴가를 위해 건배할 맥주를 원했다. 이메일, 전화, 회의, 또는 통근이 없는 3주가 앞으로 놓여 있었다. 내 모든 장비를 등에 지고 당나귀 길을 따라 200 마일을 걷는 가장 큰 도전이 있는 3주간. 10일째 되는 날, 걸어서 18,000 피트 높이의 히말라야 산을 통과하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인생에서 오른 적 있는 가장 높은 산이 될 것이다. 그 도전적인 산의 통과 지점과 긴 휴가는 수년간 쉼 없는 일의 적절한 보상이 될 것이다.

 

 

내 바텐더가 먼지 묻은 Tuborg 병을 가지고 돌아와서 자신의 검은 색 셔츠에 닦았다. “차갑지가 않아요, 죄송해요” 라고 맥주가 상온 상태에 있음을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잠깐만요”, 막대기 같은 다리로 자신의 몸을 아래 강 방향으로 겁 없이 몰아가면서 그가 말했다. 내가 부탁받은 3분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는 그 병을 얼음 같은 빙하 녹은 물속에 넣었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옆 테이블의 중년 네팔 남자가 소년의 영리한 저차원식 해법에 크게 웃었다. “누가 냉장고가 필요하겠어요?” 나는 대화를 시작할 방법으로 물었다. ”네팔의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똑똑한가요?“ 여기 사람들은 너무나 적게 가졌기 때문에, (삶의 불편을) 견디기 위해 터득해야 했다고 그가 대답했다. 예를 들면, 저녁은 장작불 위에서 요리되었다고, 왜냐하면 사람들은 스토브나 오븐 같은 사치품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소년은 매우 차가운 맥주를 갖고 돌아왔다 -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파수파디는 50대 중반으로 보였고, 두꺼운 안경, 날씨 탓에 낡은 검은 바지, 바람막이 점퍼, 네팔 전통의 토피 천모자를 하고 있었다. 햇빛과 바람은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얼굴 안에 지혜의 잔주름을 새겨 놓았다. 내가 재빨리 익힌 바로는, 네팔인들은 친절하고 환대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파수파디는 나에게 네팔에 대해 몹시 얘기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람중 지방의 지역 자재부 직원입니다” 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이 시골 지방의 17개 학교를 위해 자재를 조달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나는 그의 낡은 테니스 신발을 눈치챘다. 네팔에서 그것은, 대부분의 학교는 주요 도로에서 떨어져 있고, 내가 마지막 7시간 동안 트레킹으로 보낸 먼 외곽의 흙길 위에 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파수파디에게 내가 아이일 때, 언제나 학교를 사랑했다고 말하고, 네팔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는지 물었다.

 

“여기 시골 지역엔 많은 똑똑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는 아주 빠른 말투로 대답했다. “그들은 배우기를 매우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충분한 학교도, 충분한 학교 비품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가난해서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지 못합니다. 이 마을엔 초등학교가 있고, 중학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5학년 이후엔 더 이상 학업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6학년과 그 이상을 가르치는 가장 가까운 학교로 두 시간 걸어갈 수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아이들에게 농사일을 돕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업을 너무나 일찍 그만둡니다.”

 

파수파디는 자신에게 차를 따르고, 더 말했다.

 

“때때로 나는 내 나라에 대해 매우 슬픕니다. 나는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더 알고 싶은 열망으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태어난 곳에 따라 무작위로 정해진 무언가가 평생의 문맹의 결과를 낳는 세상을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자신의 교육을 당연시하지 않았던가?

 

파수파디는 네팔의 문맹률이 7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에 속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 일부 사람들의 무관심의 결과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들은 교육을 신봉했다. 그 지역 사회들과 정부는 다만 너무나 가난해서 급속히 증가하는 인구에 대한 충분한 학교, 교사, 책들을 마련할 수가 없을 뿐이라고. 그의 일은 분통터질 수 있었다. 매일 그는 학교가 부족한 마을들과 세 아이가 하나의 교과서를 나누는 학교들에 대해 듣고 있었다. “나는 교육 자재 담당이지만, 어떤 자재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는 많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이 1학년부터 5학년까지 교대로 배우는 한 학급만 있는 건물부터 개선하는 것을 돕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 학교는 작은 공간에 아이들로 빽빽하기 때문에. 그의 열정적인 목소리는 그 다음 예산 없는 현실을 얘기할 때 낮아졌다.

 

 

우리의 대화는 나를 그의 세계로 끌어넣었고,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나라를 여행자의 시각보다는, 여기에 진짜 네팔에 대해 배울 잠재적인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가 다음에 어디로 향하는지 물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는 아침에 바훈단다 마을에 있는 학교를 방문하기 위해 떠나는데, 그것은 트레킹 노선을 따라가는, 3시간 동안 가파른 언덕을 올라 걷는 길이었다. 나는 합류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가 찬성했다. “나는 우리 학교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게 자랑스러울 겁니다. 여기서 다시 7시에 차를 마시러 만납시다.”

 

 

 

나는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히말라야에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심각한 어른세계에 대한 내 관념은 배낭여행과 등산화를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네팔에 갔을 때, 나는 잃어버린 청춘을 탈환하는 것 이상을 하고 있었다.

 

 

하나의 이유는 극심한 피로였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겨우 7년 동안 일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몇 십년이나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학원 졸업 직후 그 회사에 합류했다. 1991년부터 1998년을 통과하는 그 기간은 기술 산업과 마이크로소프트사에게는 격동의 흥분되는 성장이 있는 한 시기였다. (그것을) 따라잡는 유일한 방법은 어마어마한 시간을 일하는 것이었다. 내 일엔 부가적인 복잡함이 있었다. 나는 국제 시장의 전문가였고, 그 결과로 언제나 7 군데에 동시에 있으려고 애썼다. 그것은 국제적 규모로 경기되는 트위스터 게임과도 같았다. 프리젠테이션, 회의, 언론 인터뷰를 할 준비가 된 채, 금요일엔 요하네스버그, 월요일엔 타이완에 있는 것이었다.

 

그 일은 금전적으로 보상이 있었으나, 고도의 압박과 스트레스로 가득찼다.

 

그것은 마치 내 주문이 “너는 죽어 묻혀야만 잠들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매우 성가신 질문이, 7년 동안 계속해서 튀어 올랐다: 긴 업무 시간과 더 큰 보수가 이 일의 전부인가? 나는 기업 전사의 특전대같은 삷의 방식을 차용했다. 휴가는 무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진정한 선수들은 주말에도 일하고, 수만의 항공 마일리지를 달성하며, 마이크로소프트사라 불리는 팽창하는 국제적인 거대석상 안에 작은 제국을 건설했다. 불평론자들은 단순히 회사의 미래를 신경쓰지 않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점점 내가 지불하는 댓가를 깨닫고 있었다. 인간관계가 - 내 시간과 관심에 굶주려 있는 - 결과적으로 망가졌다. 내가 크리스마스 재회를 연달아 취소했을 때, 가족들은 불평했다. 친구 결혼식엔 지속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빠지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이 모험 여행을 제안했을 때, 나는 보통 내 길을 방해하는 옴싹달싹할 수 없는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나에게 의지할 수 있었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은 할 수 없었다.

 

 

타일랜드와 싱가포르 10일간의 출장을 마친 후, 내 시드니 아파트로의 늦은 밤 귀가를 기억한다. “응답 머신이 고장난 게 틀림없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불이 깜박이지 않잖아.” 어쨌든 버튼을 눌렀다. “ 삐이, 새... 메시지가... 없습니다..,” 기계음이 말했다. 차라리 마지막에 “실패자”라고 덧붙이는 게 나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매년 두 배가 되어 가고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매 주요 분류 항목에서 시장의 몫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으며, 그 지분은 자기 희생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높았다. 기업 문화는 이런 열기를 강화시켰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저돌적이고, 강압적이며, 열변을 토하는 제 2 사령관인 스티브 발머와의 일련의 회의를 끝내고, 비로소 내가 휴가를 얻었음을 확신했다. 발머는 시드니에서 우리의 아시아 사업을 검토하고 있었다. 발머가 소리치고, 장광설을 늘어놓곤 하던 이틀간의 긴 행사인, 그의 사업 검토 회의를 우리가 끝냈을 때, 동료 벤이 지역 모험 여행사에 의해 마련된 네팔 트레킹에 대한 슬라이드 쇼로 우리가 긴장을 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믿기지 않는 산맥을 보는 것은 스트레스를 뭉쳐 날려버렸다. 나는 오랫동안 휴가를 미루고 있었다. 그 발표자가, 안나푸르나 일주는 3주 걸리며, 200마일을 포함하고, 상상할 수 있는 만큼 히말라야 저 밖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고전적인 오지 여행임을 언급했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그 시간을 따로 예약하기 시작했다. 다음 여행지는 네팔이다. 벤과 몽골식 뜨거운 냄비 요리로 저녁을 먹는 동안, 나는 히말라야 속으로 충분히 높이 올라가면, 아마도 발머가 소리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현실인) 네팔로 돌아오니, 꼬끼오 하는 수탉들이 바로 일출 전에 우리를 깨웠다. 타이멕스 아이런맨이 여섯 시를 알렸다. 파수파디와 차 마시러 만나기 전에, 잠시 더 잘까 고민하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새벽은 추웠다; 사계절용 노스 페이스 침낭이 피자 오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마침내 네팔에 있다는 것에 대한 흥분이 이겼다. 나는침낭을 떠나기 전에, 따뜻한 체온 조절용 점퍼 한 겹을 입었다.

 

안개가 강 계곡을 담요처럼 감쌌다. 그 숙소의 석조 테라스는 텅 비었다. 여덟 살 주인장이 김이 나는 한 잔의 밀크티를 날라왔다. 나는 그것을 얼굴 아래에서 꽉 쥐었다. 낡은 골판지 메뉴로부터 토스트와 함께 치즈 오믈렛을 주문했다. 그 소년은 엄마가 장작불을 때는 부엌으로 달려 돌아갔다.

 

 

나는 파수파디를 기다리는 동안, 안나푸르나 일주 지도에서 그날의 노선을 익혔다. 바훈단다로 가는 길은 마르시엔디 강을 따라가는 거였다. 우리는 상류로 걸어갈 것이다, 강하고 얼음 같은 강이, 인디언 평원과 벵갈만 방향으로 곤두박질쳐 내달린 수세기 동안, 새겨놓은 깊은 협곡 사이로. 그날 트레킹의 첫 두 시간은 상대적으로 평탄해 보이고, 그 후에는 단지 1마일 이내지만, 수직으로 1300 피트를 오를 것이다. 그 등반의 꼭대기에 우리가 파수파디의 학교를 방문할 마을인 바훈단다가 놓여 있었다.

 

 

지글거리는 오믈렛과 함께 어린 주인장은 내 숙박에 대한 계산서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규모에 죄책감을 느꼈다. 나에게는 침대, 맥주, 저녁, 아침, 그리고 제한 없는 밀크티가 주어졌었다. 그런데 겨우 5달러라니. 팁을 주는 것은 모욕으로 여겨져서, 나는 이 소년과 그의 가족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밖에 뭘 할 수 있을 지 의아스러웠다. 내 사색은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난, 전날 밤과 같은 옷을 입은 파수파디에 의해 방해받았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서, 나는 재빨리 계란을 먹고 배낭을 잡았다.

 

 

아침 햇빛 속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는 날은 결코 나쁜 날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바위가 흩어져있는 강을 따라 걸었다. 놀라울 만큼 상당한 양의 물이 하류로 서둘러 흘렀다. 녹색의 테라스 같은 논들이 가파른 언덕면 속으로 불가능하게 높이 새겨져있었다. 태양이 아침 한기를 태워버리는 동안, 유일한 소리는 강과 흙길을 따라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는 두 쌍의 발들의 소리였다. 모든 것이 세상과 함께 제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두 시간의 평탄한 지형 후에, 우리는 일련의 가파른 지그재그길에 - 바훈단다로의 접근- 직면했다. 그것은 내가 그 후 몇 주 동안 다리에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경험하게 될 수많은 힘든 오르막의 첫 번째였다. 그 마을은 강 계곡이 아래로 보이는 언덕면 위 높은 횟대 같은 곳에 매달려 있었다.

 

 

파수파디는 나보다 20년 연상이고, 그날 아침의 세 번째 담배를 물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 앞에 있었다. 그는 언덕 꼭대기에 올랐고, 기다림 없이 학교를 향해 성큼 나아갔다. 진남색 바지와 밝은 푸른 셔츠 교복 차림의 아이들은 땡땡거리는 소리가 수업 시작을 알렸을 때 우리 옆을 달렸다. 그들은 외국 여행자에게 미소짓고 인사했다.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선생님."

 

파수파디는 교장 선생님을 소개했고, 그는 학교 둘러보기를 제안했다. 1학년 교실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그 수용 능력이 절반으로 보이는 교실에 70명이 있었다. 교실 바닥은 흙으로 덮여있었고, 양철 지붕이 교실을 달구며, 늦은 아침의 봄빛을 강화시켰다. 긴 의자 열에 앉은 아이들은 함께 잔뜩 쑤셔져 있었다. 책상 부족으로, 그들은 뼈가 앙상한 작은 무릎 위에 공책을 놓고 균형잡고 있었다.

 

 

우리는 여덟 교실을 각각 방문했다; 모두 똑같이 (학생들로) 쑤셔져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모든 학생들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서서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하고 완벽한 영어로 소리질렀다. 교장은 다음으로 우리를 학교 도서관으로 안내했다. 문 밖의 표시는 자랑스럽게 학교 도서관임을 알렸으나, 내부에 방은 비어 있었고, 벽을 덮고 있는 유일한 것은 낡고, 한 쪽이 접힌 세계 지도였다. 그것은, 철의 장막이 무너진 지 10년 후인, 소련 연방, 동독, 유고슬라비아와 존재하기를 멈춘 그외의 나라들을 보여주었다. 그 책들은 그들의 부재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나는 가능한 가장 정중한 방식으로 내 질문을 표현했다.

 

"이것은 아름다운 도서실입니다. 저에게 그걸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단지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여러분들의 책들은 정확하게 어디 있나요?"

 

교장은 방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한 교사가 책들이 잠겨 있는 책장의 녹슨 자물쇠에 맞는 열쇠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교장은 설명했다. 책들은 귀하게 여겨진다고. 학교는 책이 너무 적어서, 교사들은 학생들이 그것들을 망칠 위험을 무릅쓰길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책이 잠겨 있으면 어떻게 지식을 전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그 생각은 혼자 간직했다.

 

 

내 가슴은 학교의 귀중한 보물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려앉았다. 첫 표지에 열정적이고 옷을 반만 걸친 채 포옹으로 묶인 커플의 다니엘 스틸 로맨스 소설. 이탈리아어로 쓰인 두꺼운 움베르토 에코 소설. 론니 플래닛 몽골 가이드북. 그리고 어떤 어린이 도서관이 "피네건스의 소생" 없이 완성되겠는가? 그 책들은 어린 학생들에겐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모두) 접근하기 어려운, 배낭여행자가 버리고 간 걸로 보였다.

 

나는 학교 등록 사항을 물어 450명의 학생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450명의 아이들에게 책이 없다니. 물자가 너무나 풍부한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묻지 않았지만, 교장이 그때 말했다:

 

"예, 저는 당신 또한 이것이 매우 큰 문제라고 깨달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학생들에게 독서 습관을 심어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일 때 그건 불가능합니다."

 

나는 문장 속에 '심어주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어떤 교육자라도 더 나은 교육 자료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돕고 싶었으나, 내가 제안한다면 그건 거들먹거리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교장은 이것을 계속해서 고심하는 어려움을 내게 남겨놓았다. 그의 다음 문장은 영원히 내 삶의 과정을 바꿔 놓았다:

 

"아마도 선생님은 언젠가는 책들과 함께 돌아오실 겁니다."

 

 

 

 

교사들은 파수파디와 나를 차를 마시도록 초대했다. 나는 그들이 교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사했다. 그들이 더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는 도서관에 대해 얘기했다. 두 교사가 책들에 대한 부탁을 반복했다. "저도 돕고 싶지만, 제가 사는 시드니나, 제가 온 미국에서는, 단지 영어책만 모을 수 있을 뿐인데, 쓸모가 있을까요?"

 

8학년 교사가 이 책들은 열렬히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나를 확신시켰다. 학교는 - 정부 교과과정에 따라 - 네팔어에 더해,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쳤다.

 

일단 내가 고개를 끄떡이고 웃었더니, 봇물이 열렸다. 교사들은 그들이 원하는 목록의 개요를 잡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야기책, 동물에 관한 책, ABCs 와 1-2-3s, 지리학, 기초 과학, 색칠놀이 책. 나는 200-300권이면 충분한지 물었고, 교사들은 합창으로 이것은 학교에 큰 변화를 만들 거라고 나를 확신시켰다.

 

한 교사는 회의적으로 보였다. 그는 내가 맹세할 수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 많은 여행자들이 이 지역을 통과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돕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다시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나는 내 말에 진실할 거라고 바훈단다의 교사들을 확신시켰다. 내가 떠날 때, 그 학교의 영어 교사가 악수를 했다. "선생님이 책들과 함께 돌아오실 땐, 매우 환영받으실 겁니다. 아이들은 흥분해 뛰어오르고 내려앉아 천장에 머리를 찧을 겁니다."

 

 

나는 그 날이 어떨 지 상상했다. 나는 몇 백권의 책을 빌린 야크 등에 싣고 따뜻한 환영의 장소로 돌아오는 것을 그려보았다. 오늘 아침 등산은 아름다웠다. 내가 학교에 도착하는 걸 상상한다면 얼마나 많은 재미가 있는지? 나는 부모님이 '클리포드, 크고 붉은 개'나 '호기심 많은 조지' 같은 새 책을 사주던 매번, 내 자신의 어린 시절의 흥분을 기억해내고, 이 학생들이 비슷한 밝은 총천연색 책들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등에 수백 권의 책을 짊어진 야크와 동반하는 내 귀환의 이런 이미지가 마음속에서 타올랐다.

 

"당신께 약속하건대, 우리는 다시 만날 겁니다."

 

 

 

4 Comments
kSunny 2015.01.06 15:22  
총 25 장 중  첫 번째 장입니다.

새해에 어울리는, 히말라야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에 원대한 기분 느껴보세요.
남나라 2015.01.09 02:16  
아이구, 단어를 찿고 상황에 가장 적합한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는, 지루하고  힘든 안나푸르나 여정에 첫 발을 내미셨네요. 그 시작인 1장는 시간과 노력의 승리 같습니다.  논문 쓰느라 영어와 씨름 좀 한 1인으로, 머리를 맑게하는 네팔 여행기 정말 잘 읽었고 남은 24 봉우리를 잘 넘길 응윈합니다.
kSunny 2015.01.11 00:39  
현재 9장 번역 중인데, 끝나면 원하시는 분들에게 파일로 보내드릴게요. 카톡으로 한글 문서로 보내도 스마트폰에서 바로 읽기 쉽습니다. 비영리 조직을 마이크로소프트 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어슬픈 휴머니즘으로 금방 사라지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훈련된 고도의 효율성으로 지금도 일관되게 활동하고 있네요. 최근에 두 번째 책도 나왔습니다. 
www.roomtoread.org
남나라 2015.01.11 17:12  
시간되실때계속연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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