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 주산지

홈 > 소모임 > 포사모
포사모

명경지수 주산지

잘락쿤 카 5 664

청송에 있는 주산지 저수지를 찾아가 보았다.

청송이라는 지명 속에는 푸른 소나무 숲이 연상된다.

사계절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태백준령을 넘어온 맑은 공기가 청송을 이루는 골격인 탓이다.
그래서 청송에 닿으면 속된 것들과는 격을 달리하고자하는 청정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강구에서 옥계계곡으로 이어지는 창밖 선경에 눈을 씻다보면 어느새 청송군 소재, 주산지 주차장에 닿는다.

절골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여분쯤 오르면 ‘산속에 호젓한 저수지’ 주산지가 있다.

그리 크지 않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는 크기이지만, 마음속의 울림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사유 깊은 저수지이다.

저수지를 한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오솔길로 접어드는데, 입구에서 지키고 서 있던 관리인이 ‘원앙이 알을 품어 부화하고 있는 중이니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의 말이 아니어도, 숲으로 이어진 아늑한 분위기가 발소리를 죽이게 한다.

뒤이어 따라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다가 관리인의 당부를 듣고서야 잠잠해진다.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는 동물은 없다.

사람도 본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인데 무리만 지으면 질세라 큰소리를 낸다.
이곳은 조선조 숙종 때 농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저수지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겉으로 단아해 보이는 이 저수지도 속 끓는 일 허다했을 것이며 풍상인들 없었으랴만, 지난한 세월을 담아내는 동안 스스로 깊어지는 법을 터득했으리라. 생명 있는 것들의 자양분이 되어주는 일은 제 고통을 다 토로 할 수 없는 일이듯 잔물결만 일렁인다.

저수지 가운데 수령 150년이 넘는 왕버드나무가 아예 물속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모습이 압권이다.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지 않는 자태가 과히 제왕의 풍모이다.

물가에 늘어선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지 않고, 시류에 휩싸이지 않는 유연자적(悠然自適)을 본다. 이렇듯 조금만 비껴서면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듯하다.

주산지는 나만의 비밀 장소로 남겨두고 싶다.

우연히 발견한 숲 속 샘물을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나그네처럼 감춰두고 싶은 곳이다.

적적한 날 혼자 찾아와 그 앞에 서면 명경지수(明鏡止水 )에 제 마음 닦는 법을 알려줄 것도 같다.

2004년 5월 13일 경북일보 에 올렸던 글

5 Comments
잘락쿤 카 2007.05.22 16:40  
  음료수님의 주산지 사진곁에 세워두면 좋을것 같아서...
 예전에 썼던 글 인데...
우리몽이 2007.05.22 16:46  
  좋아요 쿤카님
좋아요 좋아요
눈높은쥔님 2007.05.22 17:25  
  잘락쿤 카님 글보니까 내가 청송 주산지에 있는 느낌이에요^^
넘 좋아욤^^ 눈을 감으면 머리 속에.. 막 형상이 떠오르는데요...
남나라 2007.05.22 17:27  
  역쉬~~작가님은 다름니다.
글을 읽는 동안 주산지에 가서 보는 듯 합니다.
시간내어 여유롭게 함 다녀오고 싶은 글입니다.
왕버드나무의 제왕같은 풍모도 보고 싶네요.

'아무도 모르라고' 고등학교 때 합창곡입니다.
그리운 그 시절...

*바람개비* 2007.05.22 22:28  
  글 참 좋다요.(카님 버젼 ^*^)
지금 주산지에서 산책 중. 근데 몸이 둥실 뜬다요.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