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라무로스 호세리잘 기념관
물이 고인 작은 해자(垓字)를 건너자 문양조각이 화려한 아치형 석조 입구가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요새로 들어가는 관문은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누런
바탕 곳곳에 까맣게 때가 절어 있고, 양 옆의 거대한 성벽은 완전한 검은색을
띠고 있다. 아치형 입구의 상층부에는 왕관을 쓴 사자와 성을 새겨놓은 방패가
양각되어 있다.
요새 안으로 들어서자 초록색 잔디가 깔린 광장이 나타났다. 잔디광장 옆으로 난
길에서는 관광객들과 필리핀인들이 한가롭게 거닐며 산책을 즐기고 있다.
주변으로는 허물어진 과거의 건물들도 볼 수 있다.
광장 한쪽에는 검은색 동상이 서 있다. 오른손에 책을 들고 있는 그는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인 호세 리잘이다. 그는 의사이자 과학자, 문인으로 스페인에서
유학한 후 귀국해 '필리핀 민족동맹'이란 단체를 조직, 스페인에 대한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1896년 반식민 폭동 공모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됐으며, 처형 전날 쓴
'나의 마지막 작별'이라는 시는 결국 스페인이 필리핀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길바닥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장으로 끌려간
그의 발걸음을 표시한 것으로 리잘 공원까지 이어져 있다.
요새 안에는 호세 리잘의 행적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그의 일대기와
초상화, 처형되기 전날 썼던 마지막 시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쇠창살로 둘러싸인
호세 리잘의 감옥은 아직까지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앉아 필리핀 국민들을 위한 유언을 시로 써서 남겼던 것이다.
내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운 나라
필리핀이여
나의 마지막 작별의 말을 들어다오
그대들 모두 두고 나 이제 형장으로 가노라
내 부모, 사랑하던 이들이여
저기 노예도 수탈도 억압도
사형과 처형도 없는 곳
누구도 나의 믿음과 사랑을 사멸할 수 없는 곳
하늘나라로 나는 가노라...
-'나의 마지막 작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