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포항의 고인돌 여행 해보시지요!!
♦색다른 역사 체험! 선사시대로 떠나는
<경주의 고인돌 여행> 글-송재중
경주는 우리나라의 문화 보물 창고이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신라 천년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라가 세워지기 전의 경주는 어떠했을까? 이런 상상을 해 보면 우선, 경주의 상징처럼 솟아있는 시내 복판의 거대한 무덤들은 사라진다. 반월성이며 첨성대도 없다. 그러면, 그때 여기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참으로 궁금해 진다. 그들이 살았던 흔적은 어디에 있는가? |
(1) 빌딩 사이에 숨어 있는 <용강동 고인돌>
●이 바위에 찾아 온 이유
돌빼기 하나 볼려고 여기까지 왔느냐고 의야해 할줄 모른다. 그러나 이 바위는 우리의 먼 조상님들이 여기에 옮긴 것으로, 우리의 <선사시대>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유물 <고인돌>이다.
<용강동 고인돌> 용강동 1184번지 밭 가운데 하나의 민묘(民墓)와 함께 있는 한 기의 고인돌인데, 상석(上石-덮게돌)은 길이 350cm, 너비 180cm 크기이며 하부는 묻혀 있어 고임돌(지석)은 확인할 수 없다. 화강암 상석의 위에는 성혈(聖穴) 11개가 남아 있다. |
● <고인돌>이란 무엇인가?
고인돌이란 말의 뜻은, 큼직한 돌을 작은 돌(고임돌-支石) 몇 개에 고여서 올려놓은 것을 말한다. 고인돌을 만든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야하는 작업이므로 한 부족 세력을 이끌던 족장들의 무덤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국가 조직이 이루어지기 전, 각 지역을 지배했던 조직이 있고, 이들은 족장을 중심으로 단결하면서 세력을 키웠을 것이다. 또한 고인돌은 단순히 족장의 무덤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 시대의 신앙적인 요소에 집단의 단결력이 가미된 결과로 만들어진 유물로 보며, 고인돌에서 나오는 부장품, 그리고 고인돌의 분포와 축조 연대 등을 통하여 그 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신라의 왕과 귀족들이 경주 복판에 거대한 흙무덤(돌무지덧널무덤)을 만들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의 큰 무덤을 그렇게 만든 것 처럼. |
* 바위에 있는 인공적인 흔적 찾기
-바위 윗면에 여러 개의 둥근 홈들이 파져 있다. 이 홈들은 분명 사람들이 판 것이 틀림없는데, 고인돌에 나타나는 중요한 흔적 중 하나로 <성혈>이라고 부른다. 이 ”바위구멍“ <성혈>은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인돌의 각부 명칭
■ 용강동 고인돌의 운명은?
*<용강동 고인돌>은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네요. 앞으로 빌딩들이 더 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중장비로 그냥 밀어 버릴 수도 있겠지요. 선사시대의 중요한 유적인줄도 모르고.... 바로 옆에 있는 무덤이 이 고인돌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요 ^^
(2)고인돌들이 정답게 모여 있는 <오야리 고인돌군>
◆현장 설명
여기엔 광장한 고인돌이 떼지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돌군”이라고 합니다. 크기도 굉장합니다. 용강동 고인돌은 여기 것에 비하면 애기 고인돌 같지요. 이 큰 바위들을 어떻게 옮겼는지 입이 벌어집니다
소광사라는 절 아래로 많은 바위들이 있지만 거의 자연 바위임을 알 수 있고 작은 천 아래로 있는 바위들이 고인돌입니다.
(3)영남 지역에서 가장 큰 <칠성재 고인돌>
-고인돌이 줄지어 고개를 넘고, 칠성고개 위에는 거대 고인돌이 있는데..
과연 고인돌 맞나?
이 큰 바위를 어느 곳에서부터 어떻게 옮겼을까?
[측량과 계산] <칠성재 고인돌>의 무게(ton)를 계산하고,
이 고인돌을 들어 올릴려면 몇 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인지 계산.
■여기서 잠깐! -힌트 -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음을 참고하세요 *화강암 1m3=1.8ton *성인 한 사람이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60kg을 기준으로. |
-답 : 부피 계산 440 ☓ 390 ☓ 480(高) =82.3m3 = 148ton(약 2300명의 인력 필요)
*칠성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보물(고인돌) 찾아내기
- 칠성고개에서 칠성마을까지 산 안에 9기, 칠성마을 안에 8기, 마을 동산(쉼터)에 3기
*노당리 고인돌 찾아가기
-검단리에서 사방리로 나와 북쪽으로 형산강을 따라 안강읍내로 들어간다. 안강 사거리를 직진으로 지나 직선 도로 1.5km 가면 노당리 보호수(은행나무)가 좌쪽으로 보인다. 은행나무 동편 20m에 고인돌 2기가 하나는 서있고(입방형) 하나는 누워 있다(타원 판석형). 여기서 북쪽 밭을 지나 민가 울안에 한기가 또 있는데, 3기 모두 고임돌이 잘 드러나 확실한 고인돌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 지역애서 가장 대표적인 고인돌 !
*칠성재 큰 고인돌, 문성리 고인돌 영남 지방에서 가장 큰 고인돌도 만나고 들판 가운데 당당히 서있는 멋진 고인돌도 만나는 코스이다. 아울러 이 지역은 경주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있는 고인돌군으로, <고인돌>들이 줄지어 고개를 넘고 있다. 경주 안강읍 노당리에서 부터 포항 기계면 성계, 문성리까지 고인돌 30여기가 칠성고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줄지어 배치되고 있는 특이한 곳이다. 이 고개는 넓은 안강뜰과 기계뜰을 양쪽으로 안고 있는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개 마루에는 엄청이 큰 고인돌 2기가 서있어 유명한데. 이 고개 이름은 <칠성재>요, 그 아래 마을은 <칠성마을>인데 모두 이 고인돌 바위에서 유래된 명칭인 것이다. 칠성바위와 고인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북두칠성은 오래전부터 기도와 숭배의 대상이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자기 소원을 비는 바위를 “칠성바위”라 불렀다. 마을 가까이 좋은 터에 있는 큰 바위 고인돌은 주민들의 기도처가 되는 수가 많았기 때문에, 그 마을 내의 고인돌을 보통 “칠성바위”라고 부르게도 된 것이다. 고인돌(칠성바위)에 성혈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고인돌군 중에는 실제로 일곱 개의 고인돌이 나란히 배치된 것이 여러 곳에 있는데, 이것을 “고인돌 북두칠성 배치”라고 부른다. 칠성재와 칠성마을은 바로 고인돌 고개, 고인돌 마을 이라는 뜻도 되는 것이다. |
경상도 최고 크기의 <칠성재 큰 고인돌>-고임돌 8개가 정연하다
(4) 들판에 당당히 서있는 멋쟁이 <문성리 고인돌> 포항 기계
-칠성마을 동산에서 서쪽으로 2km가면 문성리 마을 입구에 멋진 고인돌이 있습니다. 들판 가운데 <당수나무>와 함께 당당히 서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할미바위’라고 부릅니다. 이 <문성리 고인돌>을 보면 누구나 반할 것입니다
<넓은 벌판에 당수나무와 함께 당당히 서있는 문성리 고인돌>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