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칠월 건들 팔월이라 한다.
농사일을 주업으로 살았던 조상들의 삶에서 칠월은 급히 해야 할 일 없이 그저 김이나 매면서 어정거리는 동안 지나고, 어느새 건들바람 부는 팔월이 된다는 얘기를 비껴서 한 말이다.
밀보리 타작하고 모심는데 정신 없는 나날을 보냈으니 칠월 복더위에는 좀 어정거려도 과히 흉 되지 않으리라. 현대인들이 바쁘게 살면서도 시간을 쫓아가는 형국인데 반해, 우리조상들은 시절을 누리며 살았다. 삼복(三伏)을 정해두고 보양식으로 지친 육신을 달래고, 계곡과 산정을 찾아 늘어진 마음을 다스렸다.
흰 모시적삼을 가뿐하게 입은 어르신네들은 당산나무 아래 멍석을 펴놓고 장기판을 벌이고 며느리들은 찐 감자나 옥수수를 양푼 가득 내어온다. 동네 젊은이들은 좋은 날을 잡아 천렵놀이를 간다. 강가 모래밭에 솥을 걸고, 장정들은 된장미끼로 어항을 놓거나 그물질로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아낙들은 지천으로 널린 깻잎과 푸성귀를 손으로 뚝뚝 뜯어 넣고 매운탕을 끓인다. 매운탕에 동동주 한 사발씩 들이키고 거나해지면 나무그늘을 찾아 노곤한 낮잠을 자기도 한다.
아이들은 강에서 멱을 감거나 고무신에 피래미를 잡아 가두는 재미에 빠져 구릿빛으로 익어간다. 얼룩덜룩하게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하는 등짝을 쓱쓱 문지르며 방금 퍼 올린 우물물로 등목을 치고 나면 삼복더위도 잠시 잊는다.
매미소리 귀청을 때리고 마당에 다알리아 고개 숙인 여름 한낮, 하늘에 불을 놓은 듯 내리쪼이는 뙤약볕은 낟알 영그는 뿌듯함이다. 할머니는 청마루에 앉아 누런 종이에 태극문양이 박힌 큰 부채로 조근조근 바람을 일으킨다. 부채의 어디에 그렇듯 시원한 바람이 숨어있었을까 할머니의 부채바람 속에는 뭉근한 맛이 있다. 세월 속에 곰삭은 깊은 맛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버튼 하나 누르면 금세 시원해지는 세상에 살면서도 할머니의 살가운 맛이 배인 부채바람이 그립기만 하다. 여름이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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