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랏 칼럼-5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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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랏 칼럼-5월17일자

요술왕자 0 812
작성자 : 박태욱 (topark@hanmail.net)
작성일 : 2002/05/20 20:02
조회수 : 2


작성자 : 김규식 (rusamilae@hotmail.com)
작성일 : 2002/05/20 13:24
조회수 : 16

"니띠품 나와랏"의 연속컬럼 마지막입니다

5월 17일자

제목 -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한 이유-

독자 여러분 미니씨리즈 한국과 일본 이야기가 여러분과 함께한지
오늘로써 5 일째 입니다.
그러나 아직 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반도 못 왔습니다만
마침 월드컵과 맛물려 좀길게 쓰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 전체적 경제회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그때 마침 저는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 농림부장관, 교육부장관
그외 다른 여러분들을 만나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한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정부측의 주선이 아니라 저 자의적으로 휴전선에서 30리 떨어진
"왕곡"(?) (발음 나는데로 표기-역자) 이라는 마을을 찾아가 나이가 각각 75, 73 세인 남녀 노인네 두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두 분의 집은 화장실도 재래식인데다가 저녁시간 잠자리에 들기전
늘상 아궁이에 불을 지펴 넣어 온돌을 데워야하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제가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이 "왕곡" 마을의 집입니다.
어제 조금 언급하다가 말았던 이야기가
왜 한복이 임신복 마냥 펑펑하게 늘어진 치마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동안 일본군인들이 한국 처녀들과 마주칠
경우 끌고 가서 욕보임을 당하다 보니 한국여인들은 이런 일본군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답니다.
따라서 한국 여성들은 시집가는 것을 통해 이런 위험에서 벗어났는데
그 당시 12-13세 에 이르면 신랑이 있어야 했고 그 이상 내버려둘 경우
시집도 가기도 전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시집간 여성의 경우라 할지라도 일본인들에게 끌려가 병영안에서
위안부 생활을 해야하는 안타까운 운명의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한국 여성들의 현실을 개선해 보기 위한 방법으로
예전부터 입어오던 한복의 아래 부분을 늘이고 풍덩하게 변형하였습니다.
이는 일본 군인들이 임신 여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런 형태의 복장이 계속되어 오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강건한 문화를 지니고 있고 아주 근면한 민족입니다.
자연자원의 혜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올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 근면과 노력입니다.
저는 독자분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1999년 10월 저가 기록하던 일기장의 일부를 옮겨 적어 보고자 합니다.

" 어제 "함"씨 할아버지와 "남"씨 할머니 내외분 집에서 묶었다.
집은 나무와 벽돌,돌로 지어졌으며 온돌방이었다
(겨울의 추위를 막기위해 불을 넣을 아궁이와 방바닥 아래 불길을 만든방
-작가의표현)
이 집은 고추밭과 복숭아 과수원위에 지어졌으며
고추밭과 복숭아 과수원 사이에는 각종 약초들을도 심어 놓았다.
이 한국인 노인은 따로 농작물을 살필요가 없었다.
왠만한한 것은 모두 재배하고 이었기때문이었다.
약간의 빈공터가 남아만 있어도 씨앗을 사와 뿌렸다.
"남"씨할머니의 파,고추,양파 재배는 할머니의 잠자리 머리맏까지
닿아 있었다.
할머니댁의 지붕은 오래된 기와로 되어있었고 그 지붕및에는 물건을 모아두는 공간 있었으며 지붕위에는 심은 넝쿨식물들이 올라가 있었다."
우리 태국의 경우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땅이 많은데도 그냥 놀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부분 사업가들이 땅을 사서 매점해놓고는그냥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이룰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뒤척였으며 전기줄 전화줄 나무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썰렁한
바람소리만 들렸다.
아침해도 아직 뜨지 않았고 아직 손바닥의 손금도 않보이는 새벽인데
옆집 농부들이 벌써 일어나 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워서 동네 사람들이 일하는 소리와 아침 닭 울움 소리를 함께들었다.
날이 밝자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가 산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교복을 깔끔히 차려입은 어린 애들이 옥수수를 가지고와 줄을 맞추어
말렸다.
이웃의 어른들도 여러장을 연결해 만든 마대자루를 가지고와 집앞에 깔았다.
누구네 집이던 간에 곡식을 가지고와 말리거나 겨울에 사용할 고추들을
말렸다.
우리 두 사람은 산책을 하려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마침내는 "함" 할아버지댁으로 가서 곡식을 가져다 말리는 일을 돕기로
했다.
신디도 곡식 말리는 일을 끝낸 후 "남" 씨 할머니에게 다가가 마대자루 수선을 도와 드렸다.


태국에서 일부 대학 교수님들과 경제학자등등 "박사" "빡사(?)"라고 일컫는
머리속에 이론으로만 꽉차있는 분들이 어떤 이론으로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할수 있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돈만 낭비하는 그런 연구 세미나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에 제가 옮겨 적어놓은 일기장의 기록을 10번 정도만 반복해 읽으시면
왜 한국이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을수 있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독자분중에 왜 한국의 좋은 점만 쓰려고하느냐
한국의 나쁜 점도 있을테니 그 점도 알려 달라고 하십니다.
가까운 시간내에 그 점에 대해서도 2-3 회 정도 쓰도록 하겠습니다.

- 끝 -

한복과 관련된 설명은 컬럼작가가 적은데로 옮겼습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느 뉴앙스데로 옮겨보고자 했는데
컬럼니스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각부분의 의도에 이해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태국이나 태국과 한국관련 좋은 자료가 나오면
또 함께 읽고 생각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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