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타이의 잼난여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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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타이의 잼난여러이야기

룸피니 0 2370
Muay Thai에 관한 전설은 많다. 그 중 18세기 사람인 나이 카놈 톰(Nai Khanom Tom)은 타이의 최대 영웅으로 해마다 3월 17일이면 모든 복싱 경기장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가 벌어진다.

1767년 버마가 타이를 침략, 당시 수도였던 아유타야(Ayuttaya)를 불태우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붙잡아 자기 나라로 돌아갔는데, 이 포로 중에 나이 카놈 톰이 있었다. 1774년 버마의 왕이었던 망그라(Mangra)는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파고다를 기념하기 위해 랑군에서 일주일간 공양을 바치기로 결정하고, 이 행사의 일환으로 포로로 잡혀 있던 Muay Thai 선수들과 버마 선수의 시합을 마련했다. 그는 또 "리카이"라고 불리는 코메디 소극형식의 검투 경기 등도 지시했다. 시합 링은 왕궁 앞에 세워졌다. 축제의 첫날에 버마의 한 귀족이 버마의 선수들을 이끌고 왕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왔다. 물론 왕은 버마의 선수들을 격려해주며 그들을 응원했었다.
시합이 시작되어 레프리가 한 선수를 나이 카놈 톰 이라고 소개를 했다. 포로로 잡혀온 많은 타이인들은 그를 열렬히 응원했다. 게임을 시작하자 마자 나이 카놈 톰이 상대를 빙빙 돌며 춤을 추어 버마 관중들을 어리둥절 하게 했다. 바로 [Wai Kruu]였던 것이고, 시작신호가 울렸을 때, 나이 카놈 톰은 상대가 쓰러질때까지 팔꿈치 공격과, 턱 연타를 쳐서 K.O 시켰다.

하지만 레프리는 와이크루로 버마선수가 얼떨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는 졌다고 할 수 없다고 판정했고 그 결과 나이 카놈 톰은 9명의 거인 버마 선수와 싸워야 했다. 나이 카놈 톰은 무에타이의 명예를 위해 9명의 버마 선수들과 싸우기로 했고 모두 그의 발 아래 쓰러졌다. 그의 마지막 상대는 야카이에서 그저 축제를 즐기러 왔던 코우치였다. 그는 싸우기를 자원했고, 나이 카놈 톰의 무릎 공격을 받고 곧 쓰러졌다. 이에 감탄한 망그라는 그에 매료되어 돈과 예쁜 아내 몇명 중 어느쪽이 좋을지 물어보았고, 그는 예쁜 아내 쪽을 택하여 왕은 자신의 부족 출신 버마 소녀 2명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유를 주어 그는 이 아내들과 함께 무사히 태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무에타이의 기예를 태국 국경을 넘어 선양한 최초의 인물로 간주된다. 역사를 통해 볼때 나이 카놈 톰은 망그라 앞에서 9명이상의 버마 선수들을 물리쳐 무에타이에 감동한 왕이 태국인들은 타고난 기질들이 있다고 말하게 하였다. 다른 무기없이 맨손으로 한 사람이 너끈히 여러 상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천부적인 자질은 거의 마술적인 것이었고, 이렇게 무에타이의 신화가 탄생했다.

유럽인들은 60년전부터 무에타이에 관심을 두어왔다. 1차 세계 대전 동안 태국은 연합국들을 도와 파병을 했었고, 무에타이가 [동양의 스포츠]로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마인츠 신문은 "무에타이는 경이로운 스포츠이긴 하나 보기는 어렵다. 선수는 민첩하고 강인하며 터프하다. 이 스포츠는 스릴이 있을뿐 아니라 기묘하고 특이한 오락의 형태이다."라고 서술했었다.

예전에는 총이 요즘과 같이 모두에게 공급되지 않고 대부분의 태국 군인들이 자신들의 칼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무에타이는 태국 군인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대부분의 태국 군인들은 근접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발차기를 배웠다. 무에타이는 다음의 2가지 이유에서 학습되었다.

첫째, 근접 전투에서의 공격 목적
둘때, 자기 방어의 목적

따라서 이 기간동안 무에타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나이 카놈 톰(Nai Khanom Tom)의 전설 때문인지 타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Muay Thai가 세계 최고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가라테나 쿵후 등 다른 무술이나 격투기 챔피언들을 초청해 Muay Thai 선수들과 시합을 하게 한다.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Muay Thai 선수들은 외국의 챔피언들을 어김없이 때려 눕혔다. 몇 년 전에는 다섯명의 가장 강한 홍콩 쿵후 선수들이 Muay Thai 선수들과 시합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그들 역시 모두 1회전에 K.O 당하고 말았다.

1977년 3월 12일, 미국에서 가라데와 경기를 가질 때, 무에타이 선수는 무릎과 팔꿈치 등을 쓰지 못하게 되어 불리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쉽게 이겼다.

1977년 9월 6일 화요일, 방콕의 룸피니(Lumpinni) 복싱 경기장에서 2명의 무에타이 선수가 가라데 선수들을 상대로 싸웠는데, 가라데 선수들이 완전히 전멸했었다.

극진 가라데의 총수인 최영의 님(최배달-바람의 파이터)도 전 세계를 돌며 많은 무술가들과 싸워서 모두 이겼지만(심지어 스페인에서는 투우 전용 황소와도 맨손으로 싸워서 한방에 넘긴적이 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상대가 태국의 Muay Thai 선수 "블랙 코브라"와의 대전이었다고 회고한적이 있다.

다른 나라 선수를 차례로 물리칠 때마다 Muay Thai의 인기는 날로 높아갔다.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이것을 해보지 않은 태국의 남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요즈음도 해질녘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방콕에서 규모가 가장 큰 룸피니(Rumpini)나 라차담논(Ratchadamnern) 경기장 등으로 몰려가고, 일요일 오후에는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텔레비젼으로 무에타이 경기를 시청한다. 몇년 전부터는 전세계적으로 STAR TV에서 매주 두번씩(1회는 재방송) 태국의 시합을 중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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