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면세점과 공항 경찰, 중간 브로커 등이 짜고 절도 혐의를 뒤태어씌우고 석방을 조건으로 거액을 빼앗는 사기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BBC 방송이 20일 보도했다.

영국의 IT 기술자인 스티븐 잉그럼(Ingram)과 시 린(Lin)은 지난 4월 25일 밤 영국 런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탑승에 앞서 공항 면세점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는데, 갑자기 공항 경찰이 다가오더니 "면세점에서 지갑 하나가 사라졌는데, 린이 그 지갑을 가방에 넣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혔다"며 다짜고짜 이들을 체포했다.

두 사람은 별문제 없이 풀려나리라 생각했지만, 수색한 가방에서 없어졌다는 지갑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후덥지근하고 냄새 나며, 낙서와 피로 얼룩져 있는 구치소"에 갇혔다.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이들에게 '토니'라는 이름의 통역사가 다가왔다. 토니는 '보석금'으로 7500파운드(약 1540만원)를 요구했다. 이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열악한 조건으로 악명이 높은 방콕 힐튼 교도소에 갇혀 사법 절차가 진행되기까지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겁에 질린 잉그럼과 린은 일단 4000파운드를 토니가 불러준 계좌로 이체했다. 토니는 나머지 돈이 송금될 때까지 이들을 공항 주변의 호텔에 묵게 했다. 여권은 여전히 경찰에 압수된 상태였다. 간신히 영국 대사관과 접촉한 결과, 이들은 자신들이 태국 내 고전적인 사기수법인 이른바 '지그재그(zig-zag)'에 걸린 것을 알았지만, 대사관이 소개한 변호사는 경찰과 면세점을 상대로 법적 투쟁을 하면 추가로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 충고했다. 속히 귀국하고 싶었던 잉그럼과 린은 5일 후 나머지 돈도 토니에게 지불했고, 이들은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라는 증명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들만 아니다. 이달 초 아일랜드의 한 여성 과학자는 17파운드 상당의 아이라이너(eyeliner)를 훔쳤다는 혐의로 억류됐다가 돈을 주고 풀려났다. 태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도 최근 자국인이 이런 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BBC방송이 접촉한 '토니'라는 인물은 자신이 올해만 경찰과 '문제'가 생긴 외국인 150명가량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물론 토니도 이 사기행각의 일당이다.

주(駐)태국 영국대사관은 방콕의 공항 면세점에서 물건값을 지불하기 전에 이리저리 물건을 움직이지 말라고 자국민 관광객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