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찌탄 그룹 CEO 탄씨의 이야기.
쿤츠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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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17:40
태국을 방문해보셨다면 한번쯤 녹차음료를 마셔보셨을겁니다. 대표적인게 오이시와 이찌탄입니다.
회사는 달라도 창업자는 같습니다. 바로 탄씨 입니다.
출처 : EPTHAI.COM
<탄 파서콘티 (중국명 : 천 수명)>
1959 년생. 부모는 2 차 대전후 중국에서 태국 동부 촌부리로 이주하여 남녀 6 명의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작은 회사의 서기로 있던 아버지의 소득만으로는 가정이 어려워, 막내 탄 씨와 누나 2 명, 어머니등 4 명은 말레이시아로 이주해 작은 아버지집에서 자랐다. 페낭에서 소년시절을 보내던 탄 씨는 중학교 졸업후, 태국으로 돌아가 1973 년 17 세 때 방콕에서 사진기 필름판매 회사에 취직했다. 초봉은 700 바트. 처음에는 배송업무와 영업직을 맡으며 5 년간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일해도 득이 될것같지 않겠다" 며 일을 그만두고 촌부리로 돌아왔다. "미남도 아니고, 돈도없으며, 공부도 하기싫다. 내가 할수있는것은 역시 장사"라고 생각해 촌부리 시내의 장거리 버스 정류장과 가까운 위치에서 신문 판매를 시작했다. 판매대금은 3 - 6 개월에 1 회라는 악조건 이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신문뿐만 아니라 돈을 더벌기위해 다른 상품도 같이 팔았다. 이때 음료수, 인형, 음악 테이프, 잡지 등이었다. "당시 인기를 끈 스누피 지갑은 매입가가 100 바트였지만 이걸 300 바트에 판매 대히트 했다." 히트에 성공하자 반년후, 신문 · 잡화 가게를 열었으며, 여세를 몰아 외식, 부동산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작은 부동산 사업에 투자를 시작해 점차 규모를 확대, 투자 비율도 높였다. 하지만 사업도 잘된것도 잠시 1984 년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1 억 바트의 빚을 안고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월 100 만 바트 가까운 이자를 어떻게든 마련하기 위해 토지, 시계, 보석 등 자산의 대부분을 팔았지만 남은건 레스토랑 하나와 빚 3000 만 바트였다. 재기를 위한 준비를 하던중 대만을 방문했을때 화려한 모습에 눈이 멈추었다. 웨딩 사진스튜디오 였다. 1993 년 방콕 통로에 1 호점을 내고, 이것이 대성공 하였다. 다양한 의상으로 촬영하는 웨딩 앨범은 화려한것을 좋아하고 외형을 중시하는 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점포수는 단숨에 20 개 점 이상으로 늘어 빚을 모조리 갚았다. "다른 업종도 진출해두면 안심"이라고 생각한 탄 씨는 다음 사업에 뛰어들었다. "장래성이있는 사업만하자. 재탕은하지 말자. 일식은 건강에 좋고, 태국에 뿌리 내렸다. 음악, 패션등 일본붐도 일고 있다." 궁리 끝에 나온 해답은 "일식 뷔페 레스토랑 체인"이다. "일식 요리의 이름을 몰라서 주문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먹고싶다"는 태국인의 수요에 맞춰 오이시는 1999 년 9 월 1 호점을 오픈해 압도적 인기를 차지하며 일식의 대명사가되었다. "뷔페 형식으로 양이 많기 때문에 박리 다매로 이익은 1 명 100-150 바트 정도. 일식은 가격이 비싸고 양이 적다는 이미지를 깬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스스로 분석한다. 일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탄 씨의 다음 계획은 또 다시 새로운것 당시 태국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녹차 음료 '를 자체개발 · 생산해낸 지금까지도 없었던 도전에 나서게된 것이다. 2004 년에 본격 처음 시판된 녹차음료. 하지만 태국인의 기호를 읽어내 성공적인 판매와 때마침 웰빙붐을 타고 대히트를 치면서, 일식 레스토랑 매출을 넘는 대박을 터뜨렸다. 탄 씨는 2006 년 자신이 소유한 오이시 주식을 태국 최대주류 음료 회사에 매각한후, 새로운 회사인 이찌탄을 창업해 또다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