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에서의 죽을뻔했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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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서의 죽을뻔했던 경험.

체게발 5 1270

아래 산바람님의 댓글에 덕유산이야기가 나와서 옛날기억을 끄집어 내어 적어봅니다.

태풍이 오는 날에는 가급적이면 산행을 삼가하는것이 좋지요.
허나 젊은 혈기에 태풍이 오는날의 산행도 꽤 재미있을것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겁니다.
하지만 태풍중의 산행은 50%의 죽을고생에 40%의 재해가능성 그리고 10%정도의 추억만이 남는 산행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98년도에 덕유산으로 산행을 했었는데요.
당시에 제가 만화화실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만화나 출판계에 계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쪽 계통이 마감이라는 데드라인이 있어서 마감을 앞두고 일주일간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하며 잠깐의 여유시간도 꿈꿀수없을만큼 촉박한 시간전쟁을 다투고 있습니다.
처절하다시피한 마감을 끝내고 나면 맥이 탁 풀리면서 뭔가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 본능을 느낄수가 있지요.
그래서 제가 주축이 되어 마감후의 덕유산산행을 기획하였습니다.
화실식구들이 9명정도였는데 총4명을 저의 계획에 동참시킬수있었고, 프로덕션오야붕에게 찬조금도 타내었습니다.
마감을 끝내고 난후 덕유산으로 떠나는 기차안에서의 홀가분함이란~
정말 기분좋은 산행이 될것같은 마음으로 들떠있었지요.
그런데 아뿔사 마감에 쫓겨 거의 티비와는 담을 쌓고지냈었던게 화근이 되어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모르고 산행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가는날부터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덕유산에 도착해서는 굵은 장대비로 바뀌어져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올라가보자하는 생각에 -지금 생각하면 참 대책없는 짧은 생각-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바람은 점점 강해지더니 도저히 판쵸우의를 입을수없는 상태가 되었고,나중에는 비가 가로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더이상 비가 아닌 수많은 바늘이 되어 온몸에 꽂히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않고 정상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지만 산에서의 밤은 너무나 빨리 찾아와버렸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맘에 걸렸던것은 매표소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이나 내려오는 사람을 한명도 보지못했다는것이였습니다. 칼비바람을 맞으며 랜턴에 의지해서 겨우겨우 정상까지 올라왔을때는 정말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나 긴장을 풀수가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덕유산에 올라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덕유산정상이 좀 황량하다싶을정도로 넓직합니다. 도처에는 세월의 풍화작용에 깍인 이상하게 생긴 바위들도 있구요.
일미터 앞도 볼수없는 칠흑같은 밤에,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불어대는 바람에,옆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들, 정말 정신을 차릴수없을 정도였고, 조금만 방심해도 큰사고가 날수있는 상황이였습니다.
제가 인솔해온 화실식구들은 산경험도 거의 없는 초짜들이었는데, 전 그만 겁이 덜컥나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가 사고라도 날까봐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있었고,네명이 서로의 몸을 꼭 붙잡고 저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만 있었습니다.
지도에서 봤을때는 분명 정상 근처에 산악인의 집?이라는 산장이 있는걸로 표시가 되어있어서 제생각에는 정상에 올라가면 밤이라도 산장의 불빛을 보고 충분히 찾아갈 수 있지 않겠냐 생각했던것이 기대와 다를게 360'아무리 둘러봐도 불빛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점점 맘은 초조해지고 일행들은 흠뻑적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이리저리 후래쉬를 비치면서 산장의 불빛을 찾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봐도 불빛은 보이지않고,이대로 하산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울고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서있는곳에서 약 30m정도 떨어진 아래쯤에서 사람들 소리가 분명히 들렸습니다.
대여섯명이 떠들고 있는 소리와 완전 똑같았고, 누구라도 그 소리를 들어다면 사람들 소리로 판단했을것입니다. 전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후래쉬를 비추어봤지만 너무 어둡도 비가 많이 와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일단 저희와 같은 산행인들이 생각하고 그쪽으로 일행을 이끌고 내려가보았습니다.
내려갈수록 사람들 소리가 크게 들려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한발한발 내려가 보았습니다.
20m정도를 내려가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이상하다 싶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소리를 놓칠까봐 좀 더 속력을 내어 소리나는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세게 때리는 것같은 느낌의 공포가 확 밀려왔습니다.
분명히 사람들의소리가 들렸으나 아무곳에도 사람들은 없었고, 그저 거대한 비바람만이 바위들을 스쳐가면서 째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내맘속의 공포심이 바람소리를 사람소리로 착각하게 하여 이곳까지 내려왔던 것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행들은 전부 얼굴빛이 하얗게 되어 비명이라도 지를정도로 공포심을 느꼈지만 체면상 서로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몸은 점점 추워지고 기운도 빠져서 이대로 죽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낭에서 쵸쿄바를 꺼내 하나씩 돌리고 우걱우걱 억지로 씹어가며 기운을 내 보았습니다.
그런데 순간 뒤를 돌아보니 약 100m정도 떨어진 곳에 희미한 불빛이 빛나는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산장이라 생각하고 조심조심 바람에 날려가지않게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그곳을 기어가다싶히 하여 도착하였습니다.
인기척없는 싸늘한 시멘트건물에 백열등한개가 어찌나 그리 반가웠던지 정말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인기척이 없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렸습니다. 잠시후 문이 열렸는데, 저흰 정말 그자리에서 주저앉을뻔 했습니다.
얼굴이 시커먼 거대한사내가 수염을 수북히 기른채 우리들 앞에 서있었습니다.
아마도 낮에 봤더라면 그냥 산사람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심신이 지칠데로 지친데다 공포감마저 극대화된 긴장된 상태에서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외모의 거대한 무언가를 봤다면 안놀랠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근데 오히려 그 사람은 우리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이런 태풍오는 밤에 산에 오르는 사람이 어디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겨우겨우 맘을 진정시키고 산장안에 들어가 젖은옷을 벗어서 널고 알몸으로 산장에 있는 침낭안에 들어가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따뜻한 라면을 끓여서 소주와 함께 먹고 나니 좀 몸이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행들에게는 정말 너무나 미안했고 아무말도 할수없었습니다.
무언의 질책들을 맘으로 받으며 철저한 준비를 하지못한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악몽을 꾸었습니다. 심신이 피로해서 그랬던것같습니다.
귀신에게 밤새 쫓기다가 새벽에 식은땀을 흘리며 깼습니다.
영화에서 보던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벌떡 깨버린것이었습니다.
일행들은 제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꿈쩍도 않고 자고 있었습니다.
밖에는 아까 들었던 비바람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정말 제 생애 가장 무서웠던 밤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날 이후로 전 태풍오는날은 당연히 절대 산행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웠거든요. ㅜㅜ
나마스떼횐님중에는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꽤 많으신것같은데요.
나중에 나마스떼단체 산행한번 해보는것도 좋을듯합니다. ^^
행복하세요.








5 Comments
holybeing 2006.12.10 01:02  
  와 정말 섬뜩하네요.
글을 읽는데, 정말 제 몸에 수직으로 장대비가 꽂히고 전방에 비바람소리가 우왕 우왕 그러면서 사람소리로 들리면서[[헉]].....

대학교 1학년때.. 음... 북한산에 뜬금없이 간적이 있었는데, 겨울에요. 5명이 남자고 저 혼자 여자였는데, 우린 정말 김밥만 사서 아무생각없이 갔어요.
눈도 안오는 때였고... 그냥 안춥게만 입고...

근데, 산이 가파르더라고요.
가벼운 산책하려고 다같이 출발한 일정이었는데...
어쩜 남자 다섯이 산을 못탄다는 말을 한개도 안하는거에요.
근데 산을 오른지 5분도 안되서 엄청 가파르지, 흙도 없고 온통 뾰족한 돌뿐이지. 그 돌은 온통 얼음으로 휘감겨있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심신이 공황상태에 빠진거에요.

근데도 남자 다섯은 곧죽어도 이런것쯤은 껌이라고 말하면서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는거에요. ㅠㅠ

한 15분 올라갔나... 하산하는 분들께 위에 상태 어떠냐고 하니까 웃으시면서 다시 내려가세요. 하는거에요. 우리가 아무 장비도 없이 정말 맨몸의 무방비상태인걸 보시고요...

그래서 난 죽기 싫어서, 얘들아. 내려가자. 했더니
이제 곧 평지가 나온다나. 뭐래나...

여튼 얼음투성이인지라 손으로 어딜 잡을수도 없고...

한 삼십분 되었는데, 점점 남자애들이 우는거에요.
ㅠㅠ;; 저도 막 겁이 나고.
왜냐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내려가자니 더 가파르고 미끄럽지. 가만서있자니 엄청 춥고 미끄럽지. 올라가자니 그또한 가파르고 미끄럽지.

여튼 우리는 어느정도 가다가 하산하자고 합의를 보고 오르는데 나중에 언덕배기에 이르러서, 정말 남자애들이 소리내서 우는거에여. [[엉엉]]
그러면서 엄마~ 엄마~ 그래요.

이제 이쯤 되었으니 하산하자. 말을 하고는 발을 돌리는데, 한애가 미끄러졌어요. 그러자 한애가 내 손잡아. 그러면서 미친듯이 우는데, 어쩔도리가 없었어요.[[벙뜸]]


잠시 후 산장이 나왔는데, 체게발님글에서 나온 그런 아저씨가 정말 계시더라고요.
난 김밥먹자고 애들을 졸랐더니
애들은 김밥이고 나발이고 하산못하겠다는거에요.

그애들을 달래고 달래서 김밥 먹이고 ㅠㅠ;;
울음 그치게 하고 ㅜㅜ;;

참고로 그 애들은 제 또래였는데 말이죠... [[에혀]]

여자인 제가 초기부터 울어제꼈으면 아마 발걸음을 멈추고 저를 달래려고 다들 서둘러 하산했을텐데...
남자애들이 우는걸 보니까 마음이 애려서 어쩔줄 모르겠더라고요.

여튼 저도 그때 정말 무섭고 섬뜩했지만, 제가 안운관계로 그날 북한산 정상까지 공황상태로 목숨걸고 올라갔다가 산장에서 김밥먹고 하산한 기억이 나네요.


그 후로 십년동안 제가 등산한번 안갔네요...ㅋㅋ


따뜻한 봄이오면 나마스떼 단체산행 해봄직 하겠어요[[므흣]]


* 이런 생각이 나는걸 보면 추억은 참 마음의 좋은 집에 살고 있나봐요. 섬뜩한 공황상태의 기억들도 따뜻하게 생각나는거 보면요...
돼지의꿈 2006.12.10 14:37  
  나마스떼 단체산행 찬성입니다.
산행후에 동동주 한잔 끝내줍니다.
holybeing 2006.12.11 01:47  
  ㅎㅎ 산행 후 동동주 쥑이죠....
혹은 산행 중 동동주도 좋구요~[[원츄]]
산바람 2006.12.11 13:49  
  겨울산보다 따스한 봄기운이 도는 초봄과
다쓰한 늦가을에 사고가 많이 나죠
산밑에는 더워 반팔을 입고 다니고 산꼭대기는 얼음이 어는
이래서 동사한답니다.
겨울 산행은 최소한의 장비준비 돼 있으면 사고나지 않습니다.
언볼을 녹이고 입안에 쏘~옥 들어가는
라면의 면발이 정겨운 계절입니다.
눈쌓인 오솔길에 오세요
겨울속에 포옥 빠져 보세요
쉽게 맞볼 수 없는 느낌일 것입니다.
holybeing 2006.12.11 16:32  
  와. 윗 게시글에선 별 쏟아지는 밤하늘.
여기 글엔 눈쌓인 오솔길...

[[그렁그렁]] 어쩜좋아요. 마구마구 심장이 빠르게 뛰어요. 마음으로만 그려봤던 눈쌓인 오솔길... 으앙....[[엉엉]]

잊어버린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과 잊기싫어도 잊고 지냈던 슬픔이 동시에 밀려오네요.

그런것을 볼 수 있단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너무 좋아서요. [[그렁그렁]]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