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시기리야(Sigir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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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시기리야(Sigir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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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으로 유명한 시기리야 입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정말 올라가기 힘든곳입니다. 바위산을 오르는 동안 밑을 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시기리야(Sigiriya)

시기리야의 바위산에는 5세기에 신할리왕조 제65대 왕 카사파 1세가 건설한 성채도시 유적이 있고 산기슭에는 정원과 담장들로 둘러싸인 시가지 유적이 있다. 높이 약 200m, 넓이 약 2㏊인 평평한 산 정상에는 좁은 계단과 작은 길을 연결하여 궁전·저수지\·정원 등을 세웠으나, 지금은 벽돌로 된 기단만 남아 있다.

산 북쪽 중턱에는 성문 유적이 남아 있는데, 문 양쪽 옆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거대한 동물의 앞발 조각상이 있다. 문 중앙에는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바위산 암벽에는 천상계의 여자가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하나 현재는 서쪽 측벽에 있는 22명만 남아 있다. 체구는 실물보다 조금 작으며 구름 위로 옷을 입지 않은 풍만한 윗몸만 드러나 있다. 눈은 가늘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머리와 가슴 등에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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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 동쪽과 서쪽 기슭에 세워진 시가지는 2중으로 된 굴과 벽으로 에워싸여 있다. 서쪽 시가지에서는 자연상태의 바위언덕과 기하학적인 인공연못 등으로 조화를 이룬 정원 유적이 발굴되었다. 1982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시기리야의 프레스코 화

돌출된 바위 면에 선명한 색체로 그려진 미녀의 모습이 5세기의 작품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취를 자아낸다. 처음에는 미인의 그림이 500장이 넘었다고 하나, 마멸되고 18장만 남았다. 아버지를 죽인 카샤파가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절벽에 마련된 철제계단을 850개 정도 올라가면 그림이 나타나는데, 계단이 경사가 심한데다 자주 강한 바람이 불어오곤 하므로 짐은 등에 지는 등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르도록 한다. 풍만한 육체의 나체상 등이 선명한 색채로 그려져 있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아득한 절벽에 매달려 그림을 보고 있으므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지만, 바깥쪽은 쇠그물을 쳐놓았다.

-미러 월

프레스코화 아래쪽에 있는 회랑의 벽을 미러 월이라고 한다. 절벽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타나는 회랑이다.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게 갈고 닦은 벽면으로 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다세나와 카파샤, 모갈라나의 서사시가 새겨져 있는데, 그 문자는 7~11세기 당시에 쓰이던 싱하리 문자이다.

 

-바위의 요새

카파샤 왕의 피난처였던 궁전터이다. 인공 연못과 분수, 정원 등의 시설을 볼 수 있다. 바위 꼭대기의 높은 곳으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설은 불가사의라고 할 만큼 훌륭한 기술을 자랑한다. 바위의 모습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싱하기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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