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플론나루와(Polonna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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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플론나루와(Polonnaruwa)

인도지기 0 1848

 플론나루와는 시기리야에서 한시간이 체걸리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유적도시로 많은 중세 유적들을 볼수 있는 곳입니다.

폴론나루와(POLONNARUWA)

9세기경, 인도 타밀족(族)의 침입으로 수도가 아누라 다푸라에서 이 곳으로 옮겨졌다. 13세기 후반까지 수도로서 번영하였으나 타밀족의 침공을 피하여 다시 천도(遷都)했기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12세기경의 대규모 불교유적이 복구 중이며 옛 관개용 저수지가 마을 주변에 남아 있다.

유적이 남아 있는 구시가는 거대한 인공 저수지 부근에 있다. 파라쿠라마 사무드라라고 불리는 이 저수지는 단순히 저수지라 부르기엔 엄청나게 크고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을 담고 있다. 플론나루와의 번영은 드라이 존이라 불리는 이 메마른 대지에 생명의 물을 준 파라쿠라마사무드라 덕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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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파라크라마 사무드라 호숫가의 레스트 하우스 동쪽에 있는 왕궁 유적이다. 니산카 말라 왕의 목욕장과 벽돌로 지은 집회소 등이 있으며, 그 동쪽 구성벽 내부에 파라크라마 바후 1세의 궁전유적이 있다. 한 변이 각각 45.7m인 정사각형의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3층 벽까지만 남아 있다. 36개의 돌기둥은 당시의 홀 지붕을 받치고 있었던 것이며, 방이 모두 50개나 되었다. 궁전안의 동쪽에 있는 것은 각의장 King Council Chamber 흔적이다.

궁전의 동남쪽, 성벽의 바깥쪽 끄트머리에 닛상카 말라 왕자의 목욕장 쿠마라 포쿠나가 있다. 악어입모양으로 돤

 

-쿼드 랭글

궁전 북쪽 일대에 펼쳐지는 불교유적으로, 싱하리 왕조 때는 불치사가 있던 지역이다.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투파라마는 옛 싱하리 양식의 건물인데, 불당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벽돌로 된 건물은 힌두교의 영향을 받으 것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의 여러 모습이 그려져 있다. 투파라마 북동쪽에는 둥근 바타다게 불당이 서 있다.

도로에서 2m 정도 높은 곳에 서 있는 아름다운 건물인데, 폴론나루와에서 가장 예술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네 군데의 입구 계단 앞에는 반월석과 가드 스톤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네 군데 모두 좌불상이 있다. 불당 건너편에 있는 것이 불치사의 유적인 하타다게이다. 하타다게 서쪽에는 비자야 바후 1세가 세운 불치사 유적 아타다게가 있다.

하타다게 동쪽에는 스리랑카 최대의 석비가 있다. 갈포다라고 하는 이 석비는 니산카 말라 왕이 미힌탈레에서 가져오게 한 것인데, 장식에서 힌두 문화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갈비할라

쿼드 랭글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되는 곳에 있는 불교사원 유적이다. 폴론나루와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으며, 자연석에서 파낸 3구의 대불상이 있다. 바로 앞의 좌불상은 높이가 4.6m나 되며, 그 옆 석굴사원에는 작은 불상들이 있는데, 오른쪽에서 두번째에 있는 높이 6.7m의 입상이 성도 2주일째 되는 불타상이라고 한다. 맨 오른쪽의 열반불상은 누워 있는 상의 길이가 13.4m나 된다

 

-북원

가장 북쪽에 있는 유적이며, 내부에는 여성적인 불상과 벽화가 남아 있다. 석가모니의 수행이나 불교의 가르침 등이 그려져 있는데, 폴론나루와를 재건하기 위하여 파라크라마바후 3세가 그리게 한 것이다. 색은 상당히 퇴색되어 있지만, 스리랑카 불교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파라크라마 바후 상

파라크라마 바후는 폴론나루와의 왕으로, 관개시설을 발달시킨 왕이다. 파라크라마 사무드라 저수지 제방에 서 있는 거대한 그의 조각상은 파라크라마 바후 왕이 전통적인 의상을 입고 두 손에는 무엇인가를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다. 손에 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히 밝혀진 것 없이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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