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홈 > 소모임 > 나마스테
나마스테

★스리랑카★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인도지기 0 1448

 인도하면 겐지스강의 바라나시를 빼놓을수 없듯이 스리랑카 하면 고대도시인 아누라다푸라를 빼놓을수 없습니다. 불교국가 답게 불교사원을 비롯해 많은 볼거리들로 가득찬 이 곳은 스리랑카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도시로 스리랑카 방문시 꼭 거쳐가는 곳입니다.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BC 5세기~AD 8세기 신할리족(族) 왕국의 수도였다.번영했던 이 왕국은 매우 높은 수준 문명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쓰고 있는 관개시설이나 상, 하수도는 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760년경에 인도로부터 타밀족이 침입함으로써 황폐해졌으나 19세기에 복구되었다. 유적이 많은 고도(古都)로서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스리랑카 최대의 아바야기리야의 다가바(원형의 불탑, 3세기)를 비롯하여 많은 다가바와 사원(寺院)터, 석조 연못 등이 남아 있다.

불교는 이 지역에서 스리랑카 전역으로, 그리고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유명한 보리수(보제수)는 BC 245년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옮겨온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현존 수목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아누라다푸라유적

정글에 매몰되어 있었으나 1912년부터 발굴·정비되었다. 건축물로는 BC 244년 만들어지고 1842년 수축된 탑인 투파라마 타가바, BC 1세기에 창건된 아바야기리, 루안벨리의 양 타가바, 원래 목조의 9층 고루(高樓)이나 현재는 1,600개의 기둥만 남아 있는 궁전터 등이 있다. 조각에는 루안벨리탑 앞의 불입상(佛立像) 및 두타가마니 왕립상(王立像), 2∼3세기경의 마하세나사원의 반원석부조(半圓石浮彫) 등이 유명하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스리 마하 보리수

스리랑카 최대의 불교 성지 안에 있는 보리수. 철도역 서쪽 1.2Km 정도 되는 곳에 있는데, 석가모니가 성도한 보리수의 가지를 아소카 왕의 공주 상가미타가 BC 3세기에 이곳에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의 일부는 쇠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19세기에 코끼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돌축대를 쌓았으며, 1966년에 금제 울타리를 쳤다. 울타리 안에는 들어갈 수 없고, 주변에서 순례자들이 합장배례를 하고 있다.

-루반벨리세야 대탑

로하파사다 북서쪽에 서 있는 거대한 불탑은 원래의 높이는 110m나 되었으나 지금은 55m 정도밖에 안 된다. BC 2세기에 두투가마니 왕이 건립을 명했으나 왕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탑 경내의 외벽에는 코끼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서쪽 입구 좌우에 있는 3개의 코끼리 조각은 8세기 때의 것이다. 탑 남쪽에는 두투가마니 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이 서 있고, 동쪽에는 12세기에 이 곳을 방문한 니산카말라 왕의 기념비가 있다.

 

-제타바나 라마야

투파라마 대탑 동쪽 500m 정도 되는 곳에 있는 승원 유적이다. 풀이 무성한 불탑은 높이가 100m가 넘는다. 3세기에 마하세나 왕이 세운 것이다. 불탑 서쪽으로 승원의 건물유적이 있는데,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수루무니야 사원

커다란 인공호수 티사웨바 동쪽의 바위를 뚫어서 세운 사원이다. BC 3세기에 세운 승원 일부가 남아서 사원으로 쓰이고 있다. 호숫가 바위에 새겨진 코끼리의 조각 등이 스리랑카 불교미술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또 보물관에 소장된 남녀 연인상은 두투가마니 왕의 아들 사리야와 아리카마라라는 평민여성의 상이라고 한다. 그 밖에 궁정광경 조각도 걸작이다.

-로하파사다

스리 마하 보리수 앞에 서 있는 돌기둥들이다. 황동궁전이라고도 하는데, 지붕을 구리로 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1,600개나 되는 돌기둥 위에 9층이나 되는 승원을 지어놓았다고 한다. BC 2세기에 두투가마니 왕이 세웠는데, 승려 1,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돌기둥은 12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이곳은 소승불교의 중심지인 마하 비하라에 해당한다.





 

0 Comments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