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도시★뭄바이(Mumb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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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도시★뭄바이(Mumb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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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경제의 축이자 인도 영화를 대표하는 볼리우드로도 유명한 도시 뭄바이입니다. 영어이름으로는 봄베이 입니다.


●뭄바이(Mumbai)

서(西)고츠산맥에서부터 아라비아해로 반도 모양으로 뻗어난 인도 최대의 도시이며, 국제무역항과 국제공항이 있다. 1995년 11월에 봄베이(Bomay)를 뭄바이로 개칭하였다. 인도 본토와 좁은 수도(水道)로 분리되어 있는 뭄바이섬의 남단에 위치한 뭄바이도 16세기까지는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뭄바이섬은 고대그리스의 톨레미(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수록되어 있듯이 7개의 작은 섬에서, 토착민들이 어업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1534년에 이곳을 지배하던 토후(土侯) 바하두르 샤가 포르투갈에 권익을 넘겨주었으며, 1662년에는 포르투갈 국왕이 누이동생 캐서린과 영국의 찰스 2세와의 결혼 때, 지참금의 일부로서 이곳을 영국에 양도하였다. 찰스 2세는 당시 양항(良港)을 찾고 있던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연간 10파운드의 금과 교환하여 7개의 섬을 처분하였다. 이때부터 동인도회사에 의한 해면매립과 항만건설 및 도시건설이 시작되었다. 1861∼1865년 미국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인도 목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뭄바이는 목화의 집하지·적출항으로서 활기를 띠게 되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에 따라 인도에서 유럽에 이르는 최단거리에 위치한 뭄바이항은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다. 인도 전국에 철도망이 완비되자 뭄바이는 인도 서해안 최대 경제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항만기능은 인도 최대로서 전인도 무역량의 1/3을 취급하며, 목화·곡물\·종자 등의 수출과 공업제품·금속\·기계류 등의 수입으로 인도의 대외무역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공업면에서는 19세기 중엽부터 창업한 근대 방적업이 발전하여, 아마다바드시(市) 다음으로 인도 제2의 생산실적을 올리고 있다. 그 밖에 기계·조선\·인쇄·식료품 등을 비롯한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다. 북쪽 교외에서는 석유정제 기지가 있으며, 원자력발전소도 가동하고 있다. 반도부의 남동단에는 프린세스(1880 완성)·빅토리아(1888)·알렉산드리아(1914) 등의 독(船渠)이 자리잡고 있다. 주민은 다양하며, 국적이 약 50개에 이른다. 대부분의 서민은 마라티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무역 등에서 사용되는 상업용어는 구자라트어와 영어이며, 인도 북부에서 들어온 노동자들은 힌두어를 일상어로서 사용한다. 인도 경제의 주도 그룹의 하나인 파시교도의 본거지이며, 타타 재벌이 뭄바이의 시가지 건설을 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다. 시가지는 길이 넓고 반듯하다.

중심은 반도부 남동부의 뭄바이 성채에서 서쪽으로 뻗어 있는 처치게이트로(路) 부근이며, 관공서·회사·은행·학교·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다. 근교에는 인도 원자력연구소가 있으며, 백만(灣)에 면한 ‘머린드라이브’는 뭄바이 시민의 자랑인 해안도로이다. 이곳을 바라보는 야경(夜景)은 ‘여왕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는 별칭이 있듯이 아름다운 근대도시의 경관을 이룬다. 남동부에 바다에 면한 유명한 ‘인도의 문’이 있는데 이는 1911년 영국 국왕 조지 5세와 메리 여왕의 인도방문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석조의 이 문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혼합양식으로 16세기 구자라트 지방의 석조문을 모델로 하였다.

시가지 남서단에 돌출된 말라바르 언덕에 있는 파시 교도의 묘지에 솟아 있는 ‘침묵의 탑’도 옛날에 조장(鳥葬)이 행해지던 곳이며 명소(名所)로 꼽힌다. 그 밖에 인도의 문에서 유람선으로 1시간(약 10 km) 거리의 만내(灣內)에 있는 코끼리섬에는 7∼8세기의 힌두교 석굴사원이 있고, 3면상(面相)의 시바신(神)의 석상(石像)이 유명하다. 예전에는 석조(石彫)의 코끼리가 있었으나 1864년에 시내의 빅토리아 정원으로 옮겨졌다.

-인도문

뭄바이의 상징인 거대한 문.

1911년 영국의 왕 조지 5세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여 세웠다. 16세기 구자라트 양식의 문 양 옆에는 보조문이 있다. 문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인도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인 시바지의 상이 말 위에서 영국 침략의 상징인 인도문을 쏘아보고 있다. 뭄바이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이곳 주변에는 레스토랑과 토산품 상점이 줄지어 서 있다. 교통수단이 별로 없었을 때에는 인도에 입국하는 중요한 항구였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웨일스 왕자 박물관

인도문 북쪽 정원 내에 있는 육중한 건물이다. 후에 조지 5세가 된 웨일스 황태자가 1905년에 초석을 놓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기념 의도로 지어졌지만 후에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장엄한 건물이며, 미술·고고학·자연사의 세 분야로 구분되어 있다. 미술 부문에서는 16세기 이후의 힌두와 이슬람의 세밀화가 압권이다. 이 밖에 티베트의 불교 세밀화인 탄카도 뛰어나다. 고고학 부문에서는 엘러펀트섬과 간다라의 조각과 신상이 유명하고, 자연사 부문에서는 인도 특산동물의 박제가 눈길을 끈다.

-엘러펀트섬

인도문 앞 아폴로 부두에서 약 100Km 정도 떨어진 해상에 있는 작은 섬이다. 높이 약 200m의 바위산에 석굴을 파고 힌두교 사원이 조성되어 있다. 굽타 왕조 후기인 6~8세기에 조성되었는데, 힌두신들과 라마야나 신화의 이야기를 양각해 놓은 것이 신비롭다. 섬에는 7개의 석굴이 있으며, 7세기에 만들어진 시바 사원에는 '춤추는 시바', '악마를 물리치는 시바' 등의 조각이 있다.

-포트지구

1687년에 축성된 성채를 의미한다. 중앙에 분수대가 있는 후타트마 초크(Hutatma Chowk)에서 동쪽 일대를 포트 지구라고 한다. 일대는 인도인을 재판한 재판소, 영어를 가르치던 대학, 그리스도교를 포교했던 교회 등 영국 식민지시대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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