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도시★델리(Del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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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도시★델리(Delhi)

인도지기 0 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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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Delhi)

 기원 1200년 '마하바라타'시대에 이미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고 하며, 그 이후의 힌두 시대 유적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11세기 말부터 이슬람교도의 지배 하에 들어가 몇 차례 왕조가 바뀌게 된다. 16세기에 들어와 무굴제국이 성립되고 악바르대제는 아그라를 왕도로 하였으나, 제 5대 샤자한이 다시 델리를 왕도로 정하고, 델리 성(랄킬라)과 자마 마스지드로 상징되는 성도를 만든다. 쇠퇴 일로를 걷던 무굴 제국을 대신해서 19세기 초엽부터 영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1857년 대반란의 괴멸을 계기로 형식만 남아있던 무굴제국은 멸망하고 만다.

 1911년 영국령 인도 제국의 수도가 캘커타로부터 델리로 옮겨오고, 시 남부에 뉴델리가 건설된다.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뉴델리가 인도의 수도 기능을 하고 있다. 힌두어에 '딜리 두르해(델리는 멀다)'라는 표현이 있다. '목표 달성이 아직도 멀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고대로부터 여러 왕조가 흥망했던 고도(古都) 델리는 서방에서 온 침략자가 풍요로운 힌두스탄 평원으로의 진출을 위해 발판을 삼았던 곳이며,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인도 지배의 본거지가 되엇던 땅이기도 한다. 그리고 1857년 영국 지배에 대항해 대반란을 일으킨 애국자들과 조국의 무력 해방을 목표로 한 찬드라 보스의 국민군(자유 인도군)의 격렬한
투쟁 끝에 쟁취한, 미래를 꿈꾸는 도시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델리는 인도 저변을 차지하는 민중들이 마음대로 생활의 환상을 펼칠 수 없고, 평생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머나먼 도시이며, 민중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엘리트 정치가들의 정치 싸움으로 명멸해 가는 '중앙 도시' 이기도 하다. 그래서 델리는 아직도 멀다. 그러나 이러한 델리도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조금도 멀지 않은 도시이다.

 정치의 중심지로서 각종 오피스가 집중되어 있어서 인도에 장기체류하거나 인도에서 다시 다른 나라로 들어갈 사람은 우선 한번은 들르게 될 것이다. 또 육로·항공로 등 교통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북인도를 중점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피하고 싶어도 델리에 도착해 버릴 것이다. 델리는 오래 머물러야 할 정도로 흥미로운 곳은 아니다.

일찍이 간디가 말한 것처럼 '인도의 혼은 촌(村)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일자가 한정된 사람은 꼭 이곳에서 끝내야만 하는 일을 재빨리 마무리 짓고 다음 장소로 옮겨가는 편이 좋다.

 도시는 잔혹하다. 빈부의 차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물질문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전통적인 '인도 혼'이 들쑤셔져 있는 모습도 거침없이 눈에 들어온다. 짧은 체재로도 뉴델리의 현대적인 시가지뿐만 아니라 무굴제국 시대의 분위가 짙게 남아있는 구 델리를 사람들을 따라 큰 거리에서 골목길로 돌아다니면서 그곳의 색채와 내음, 그리고 웅성거림을 전신으로 느끼고, 더하여 시내와 교외에 흩어져 있는 유적을 돌아볼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긴 역사를 더듬다 보면 오늘날의 인도의 모습에 대한 시각을 고쳐잡을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델리는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으며, 주변의 농촌 지역까지 포함하여 중앙 정부의 직할령 이다.

 

-붉은성(Red Fort)

무굴제국의 건축광이자 위대한 유산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자한이 1639년부터 1648년까지 10년에 걸쳐 완성한 성으로 현제 올드델리의 대표적 건축유산으로 남겨져 있다.. 힌디로 랄(붉다)낄라(성)이라고도 불리는 이성은 왕궁의 목적과 전투의 목적을 다 갖추어 지어진 성이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성들은 우리에게도 잘알려진 인도의 세포이 항쟁때 많은 부분이 파손된후 개,보수 되었다.올드 델리의 대표적 건축물로 많은 내외국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랜드마크로 델리에서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

타지마할을 건축한 샤쟈한의 마지막 작품으로 인도의 이슬람 사원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원이다. 붉은성에서 도보로 10분정도 거리에 위치하며, 사원 끝에 있는 미나렛(Minaret)이라 불리는 40m의 탑에 올라가면 델리 시내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의 특성상 예배시간에는 신자만 입장 가능하며 신발을 벗어야 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입장할 수 없다.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

뉴델리 상권의 중심지로 1931년 인도의 총독이었던 Edwin Lutyens가 올드델리를 대체 할 수 있는 신도시 건설의 목적으로 건설된 계획 도시로 원형 모양의 써클로 현대적 건물들과 샵으로 가득차있다. 외국 유명 브랜드의 옷들과 상점들이 가득차 있는곳으로 현대적인 느낌이 많이 드는 곳이다.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도 군인들을 위한 위령탑으로 높이가 42m에 달하고 벽면에는 전쟁에서 희생된 8만 5천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라즈파트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통령궁과 마주보고 있다.

 

-후마윤의 무덤(Humayun's Tomb)

샤자한의 증조할아버지이자 무굴제국 2대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으로,사후 그의 왕비인 하지 베굼의 지시에 따라 건설된 무덤이다. 무덤의 이름은 후마윤의 무덤이지만 무굴의 마지막 황제자리를 놓고 아우랑제브와 격돌했던 다라 사코 등 무굴의 주요 인물 150여명이 함께 묻혀 있다. 인도가 보유하고 있는 26개의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중 하나로 샤자한이 건설한 타지마할에 많은 영향을 준 건축물로 유명하다.

 

-라즈 가트(Raj Ghat)

인도의 위대한 영웅 마하트마 간디가 화장된 자리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검은 대리석 제단이 있는곳이다. “헤이 람(라마신이여..)”이라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제단에는 쓰여져 있으며 그를 추모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화장터 였던곳이라 엄숙함의 무거운 느낌이 들법도 하지만 그런 느낌 보다는 그저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기념으로 찾는곳이다.

 

-바하이 사원(Bahai Temple)

인도의 국화 연꽃모양을 형상화 했다고 해서 연꽃사원이라고 불리기도하는 바하이 사원은 이슬람의 한분파로 시작된 신흥종교로 모든 종교의 평화와 통일을 주장하는 종교이다. 모든 종교가 서로 모여 서로 각자의 신에게 평화스럽게 기도하고 의식을 하자는 종교이다. 바깥에서 보는 바하이 사원은 연꽃모양의 화려움을 가지며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같은 느낌을 주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의자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큰 예배실 같은 분위기를 준다. 1986년에 완공돼 20년이 넘은 사원으로 전세계 바하이 사원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꾸뚭 미나르 유적군(Qutab Minar Complex)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델리관광의 최고 볼거리로 여겨지는 곳으로 힌두 왕국이었던 인도에 무슬림이 처음 진출후 이슬람제국을 세우면서 승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72.5m의 거대한 탑을 비롯한 유적군이다. 1982년 까지는 탑을 오를수가 있었지만 좁은통로로 인한 인파의 압사사고가 빈번해 현재는 아쉽게도 밖에서만 볼수 있다.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코넛 플레이스에서 잔파트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라즈파트를 만나는 지점에 있는 뉴델리의 국립박물관은

대단히 큰 규모로 소장품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BC 2 ∼ 3 세기의 마우리야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굽타, 간다라 시대 등 고대인도의 각종 조각품과 테라코타 그리고 벽화들을 소장하고 있음은 물론 티벳이나 중앙아시아에 속하는 나라들의

유물들을 비롯하여 중세 인도의 각종 세밀화들도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국립 박물관은 이런 방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번은 방문해 볼 만한 곳인 것이다.

또한 이 박물관에는 아우렐 스틴경이 중앙아시아를 탐사하며 발견한 불교 유적들을 비록하여 여러 불교 예술품들이

다양하게 소장되어 있어, 불교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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