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로 달람에서 빈둥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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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3일-로 달람에서 빈둥거리기

필리핀 3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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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이 얕은 로 달람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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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달람에서는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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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달람 해변에 즐비한 파라솔과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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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요가에 열중인 필리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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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요가 중인 필리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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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현지 어린이. 이런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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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불쇼와 킥복싱쇼를 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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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예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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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으로 좋은 치킨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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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위한 사진접시... 죄다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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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기 구경 났네...



9월 13일-로 달람에서 빈둥거리기


내 몸에 배인 방랑벽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섬에 와서도 3일째가 되니 슬슬 엉덩이가 들썩거려진다.
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하루 더 있기로 한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꼬 피피를 찾을지 기약이 없다. 오늘 하루는 꼬 피피에서 유유자적하며 이곳의 풍광들이라도 확실히 기억해두자.
숙소 카운터에 하루치 방값을 치르고 아침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나선다. 중심가 골목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가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조그만 시장통을 발견했다. 여러 상점들 속에 노점식당도 몇 있다. 그중 한 집이 죽을 팔고 있다. 주문을 하려는데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태국어를 총동원한 끝에 죽 2그릇을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편의점에서 두유와 코코넛 요구르트를 1개씩 사서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 발코니에 의자를 2개 붙여서 식탁을 만들고 그 위에 비닐봉지에 담긴 죽과 음료를 펼쳐놓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음... 죽에 돼지 내장이 들어 있다. 맛은 별로이다. 너무 짜다. 아내는 반쯤 먹다가 남기고 나는 아까워서 싹싹 다 긁어먹는다.
디저트로 나를 두유를, 아내는 요구르트를 먹은 뒤, 해변용품(싸롱, 선글라스, 썬블록 로션, 책, 물 등)을 챙겨들고 숙소를 나선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는 로 달람 해변이 목적지다. 가는 도중에 노점에서 바나나 쉐이크를 하나 사서 나누어 먹는다. 20밧.
로 달람은 꼬 피피를 드나드는 똔싸이 항구 반대편에 있는 해변이다. 바다 멀리까지 수심이 얕고 완만해서 초보자도 물놀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먼 바다와 해변 양쪽 끝에는 카르스트식 지형의 영향으로 인한 기암괴석들이 솟아 있어서 주변 경관도 무척 아름답다.
해변 중간 쯤에 싸롱을 깔고 누워 온몸에 썬블록 로션을 바른 뒤, 책을 펼쳐든다.(태국의 해변에서 일광욕을 할 때 썬블록 로션은 필수이다. 단 5분 만에 온몸이 물집으로 뒤덮일 정도의 화상을 입을 만큼 태국의 햇살은 강렬하다.)책을 몇 장 넘기다가 졸리면 책으로 얼굴을 덮고 스르르 낮잠에 빠져든다. 머리 위로는 시간을 빗질하는 바람들이 맨발로 몰려다니고, 발아래에서는 먼 바다에서 끊임없이 모래를 퍼서 나르다 지친 파도가 입에 허연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있다.
후두둑거리며 이마를 때리는 빗줄기에 소스라친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몇몇 사람들은 비를 피해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물 속에 있다. 이 비가 금세 그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폐 몇 장을 들고 아침에 봐둔 시장통으로 간다. 점심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서다. 해변에는 멋진 레스토랑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곳의 메뉴들은 대부분 서양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태국에 온 이상은 태국의 음식을 먹고 싶다. 그 중에서도 태국의 서민들이 즐겨 찾는 시장통에서 파는 싸구려 음식들을!
숯불에 구운 닭꼬치 4개와 찹쌀밥 2봉지와 쏨땀 1그릇과 환타 2캔을 산다. 모두 136밧이다. 4천원 남짓한 돈으로 푸짐한 점심식사가 마련되었다. 해변에 음식을 늘어놓고 손으로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옆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여성들이 곁눈질을 한다. 서로 수군거리는 소리를 짐작해보니 자신들이 점심으로 때운 햄버거보다 우리들의 음식이 맛있어 보여서 부러운 모양이다. ㅎㅎㅎ...
배가 부르니 세상에 부러운 게 없다. 게다가 눈앞에는 짓푸른 바다까지 펼쳐져 있으니 세상에 무엇이 이보다 더 좋을쏘냐. 다시 책을 펼쳐든다. 이번 여행에 가지고 온 책은 2권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나는 걷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아테네 올림픽에 대한 오마쥬로 아내가 골랐고, 나는 걷는다는 내가 골랐다. 나는 걷는다는 60대의 은퇴한 프랑스 신문기자가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서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옛날의 상인들을 제외하면 실크로드를 걸어서 횡단한 사람은 그가 최초라고 한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이 고른 책보다 내가 고른 책을 먼저 읽겠다고 해서 내 차지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되어 버렸다. 천국에 계실 저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원래 외국소설의 번역에 대해서 불신과 거부감이 있는 내게 이 세계적인 명작도 예외는 아니다. 몇 장 읽다보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리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다. 진공상태에 빠진 듯 사방이 조용해진다. 시간과 공간이 스르르 정지하더니 나와 세상이 하나가 된 것처럼 편안해진다. 서서히 사고가 정지해버리고 완전한 수면상태로 돌입한다.
꽤 잔 것 같았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1시간도 안 지나 있다. 더위를 식히고 땀도 씻을 겸 바다로 뛰어든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국인 커플이 몇 보인다. 음... 수영복에 헤어스타일까지 한결 같은 차림이다.
해가 서쪽 하늘로 웬만큼 기울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숙소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출출해서 노점에서 망고 쉐이크와 바나나 팬케잌을 하나씩 먹는다. 맨 처음 꼬 피피에 왔을 때 아줌마처럼 생긴 꺼터이 혼자서 하는 팬케잌 집이 기억에 남았다. 두 번째 방문 때는 종업원까지 몇 둘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와보니 그 집이 없어졌다. 어떻게 된 일일까. 꽤 장사가 잘되던 집이었는데... 그 아줌마(?)가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섬을 떠난 걸까?
숙소로 오는 길에 한 여행사에 꼬 피피-푸켓을 운행하는 경비행기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정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무섭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하는 사회가 그립다.

3 Comments
곰돌이 2004.12.09 19:02  
  사진으로 봐도 멌있네요^^* 가고 싶습니다.
근데 필리핀님은 해변의 여성들이 이스라엘 사람인 걸 어찌 아셨을까? 혹시 전생에 박수무당이셨나[[으힛]]
필리핀 2004.12.10 14:35  
  이스라엘 문자는 가로 쓰기인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요.
(우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죠.)
그들이 읽는 책이나 글씨 쓰는 거 보면 알 수 있죠.
해변에서는 빈둥거리면서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하잖아요. ^^
곰돌이 2004.12.10 19:49  
  아하~~~ 뭘 모르는 곰돌이가 착각했습니다. 죄송[[윙크]] 필리핀님 덕분에 또 상식(?) 하나 늘었습니다.[[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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