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기다란 쉼표 열넷, 타라 빠똥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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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기다란 쉼표 열넷, 타라 빠똥 리조트.

지지퍼그 10 1419


여행 떠나온지 14일째 되는 날이다. 슬금슬금 시간감각, 공간감각이 사라져간다. 서울에서 늘상 하던 일들, 알고지내던 사람들도 아득하게 느껴지고 기억마저 가물가물... 심지어 시엄니 얼굴조차 까먹겠다. 그냥 나는 원래부터 여기에 있던 사람처럼, 여기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빈둥빈둥 살아가는 돈좀 있는 백수처럼 느껴진다. 이런 자유였나. 망각의 자유. 사람들로부터의 자유. 이 자유를 찾아서 떠나온 것이었나.

어김없이 아침에 일찍 눈을 뜬다. 서울에서는 있을 수 없던 일. 아침마다 억지로 잠깨어 이불 속에서 버티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내가 아니다. 어디서 에너지가 솟는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종일 움직이고도 그다지 피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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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과일.

아침은 언제나 풍성하게. 과일까지 꼭꼭 챙겨 먹는다. 우리 딸도 어른 하나 못지 않은 식성을 자랑하므로 늘 2인분 값으로 3인분을 먹는 것과 같다. 우리 식구가 부페에 가면 식당이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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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홀리데이인 떠나는 날, 앞으로 이런 고급 조식은 없을 거라고.... 엄마가 마지막으로 실컷 먹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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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나면 쪼르르 달려가는 키즈룸. 마지막 날이라고 빼먹을 수 없죠. 키즈룸 있는 호텔도 이제 마지막이래요.

100밧짜리 뚝뚝을 타고 짐을 옮겨 이사간다. 타라빠똥리조트로. 빠똥비치 끝쪽에 있는 리조트다. 수영장이 이쁘고 가격이 무지 싸서 선택했는데..어떤 곳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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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디럭스룸이다.
복도가 구리다. 아주 구리다.
그나마 객실은 양호하고.....서비스는 꽝! 인 그곳. 타라빠똥리조트. 여러개의 식당이 주변에서 유명하고 (맛있나?) 길가 방향으로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집도 있다. 중국인들, 인도인들, 단체객들이 묵는 곳. 늙은 서양 남자들이 묵는 곳. 따라서 젊은 태국 아줌마들도 심심치 않게 함께 드나드는 곳. 간혹 가족여행객들도 눈에 띄는 곳. 타라빠똥리조트. 사건사고가 많아서 잊을 수 없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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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에 온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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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쪽 사진의 커튼을 열면 창밖 풍경은...이렇다. 일종의 풀억세스룸이라고 우기면 받아줄라나?

나름대로 맘에 드는 방이다. 특히 아이하고 수영장 왔다갔다 하기에는 이런 위치가 매우 요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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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만 아니면, 비만 아니면, 밤에 저렇게 앉아 수영장 야경 바라보고 있으면 운치있겠는데....

리조트 감상을 끝내고 주린 배부터 채운다. 마지막 남은 햇반을 처리하기로 한다. 그런데 앗! 이게 뭐야, 경고문이다. 방안에서 요리하면 벌금 5,000밧을 물리겠단다. 햇반도 요린가? 어쩌지?

퍼그는 호텔에서 고객에게 벌금을 물리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그런 호텔이 어디있냐고, 걱정말라고.... 그러나 이 호텔에 몇일 있으면서 느낀 바로는...이 호텔은 만약에 진짜로 걸릴 경우 저 벌금을 물리고도 남을 그런 호텔이다! 아니, 여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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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끝에 룸서비스 몇개 시키고 햇반이랑 먹었다. 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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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배도 채웠으니 수영장으로 직행해야지요? 지퍼양의 수영복 패션과 말레이 오시코시에서 산 새 슬리퍼, 아이, 부끄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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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구경시켜 드릴께요~ 지퍼양 입이 또 쩍!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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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와 자꾸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만 잠깐씩 나와요~.

뒷마당에 어린이풀 하나 (보시다시피 근사함.) 성인풀 하나 자꾸지풀 하나. 앞마당에도 어린이풀 하나, 성인풀 하나, 자꾸지 하나. 수영장이 많다.

앞마당과 뒷마당 사이로 난 길에 정자가 있다. 아이 수영하는 동안 여기서 잠시 마사지 받으면 좋다.

그런데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기분좋게 수영장에 입수하는 순간, 아얏! 나는 뭔가에 발바닥을 찔렸다. 그것도 어린이풀 바닥에서!!!
나의 비명 소리에 건너편에 있던 유럽 아줌마들까지 달려왔다.
유리조각에 찔렸다. 아줌마들 신났다. 얼른 가서 따지라고 난리다.
상처는 아주아주 작다. 억지로 힘주어 짜면 피가 조금 나온다.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평화주의자인(나쁘게 말하자면 소심한) 퍼그는 머뭇거리고 나도 질세라 머뭇거리고...
아점마들 더욱 거세게 가서 따지라고 부추키고 이제는 아예 대신 가서 따져줄까??? 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워 따분하기까지 하던 수영장 분위기 업! 되는 순간이다.

퍼그, 마지못해 삐질삐질 근처의 바로 걸어간다. 유리조각 손에 들고서.

그순간 깜빡 잊고 있던 지퍼양 물에 빠지고 (자기 키보다 얕은 어린이풀에서!!!) 아점마들 시선 일제히 아이에게로 이동하고...
얼른 뛰어가 수영장에서 아이를 안고 나와보니... 수영장 물에 그나마 억지로 짜냈던 피가 씻겨나가 마치 상처가 없는 발처럼 보인다. 그때 호텔 직원 한사람이 퍼그와 함께 다가와 상처를 보잔다. 상처라 하기에도 민망해지는 순간이다.
직원은 유리조각을 들고 돌아서며 보스에게 말하겠다고 한다.

아점마들 제자리로 돌아가고 수영장은 다시 평화를 찾는다.

저녁때 문득 생각한다. 이런 경우 보통 어느정도 수준있는 호텔이라면 사과의 뜻으로 방을 업그레이드 해주거나 무료숙박권을 주거나 하다못해 일회용밴드라도 사다주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럽 아점마들이 흥분액션을 취한 것도 다 떨어지는 떡고물을 바라고 그런 것 같다.

- 퍼그! 왜 호텔에서 나한테 사과하러 안와?
- 몰라.
- 내 상처가 너무 작아서 그런가?
- 그런가?
- 그래도 그렇지, 다른 곳도 아니고 어린이풀에서 유리가 나왔는데 대단히 큰 일 아니야? 이런거 밖에 알려지면 호텔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줄텐데???

그러나 다시한번 말하지만 타라는,
<호텔 이미지에 쓸데없이 신경을 쓰는 그런 소심한 호텔이 아니었다!!!>
두고보면 아시리라!!! 간큰 호텔, 타라.

- 퍼그! 근데 아까 누구한테 얘기했어? 지배인?
- 아니, 그냥 바에서 일하는 점원.
- ! ? 그 중요한 걸 일개 점원에게 말하면 무슨 소용이야? 아마 그 점원은 별것도 아닌걸로 난리야, 하고 그 유리조각을 이미 버렸을 것이야. 나참, 어이가 없어서... 이제라도 가서 다시 따질까? 이것들이 사과도 안하고 아주...
- 지지야, 따지려면 아까 따졌어야지, 이제와서 다 아물어가는 쪼매난 상처 가지고 가봤자 우스운 사람 취급 받는다.
- 아니지, 그건 아니지. 어린이풀에서 유리조각이 나왔는데!
- 증거도 없잖아.
- 유럽 아점마들!
- 아서라!
- 지퍼양이 찔렸어도 그럴꺼야?

결국 옥신각신 끝에 묻어두기로 합의를 했다. 옥신각신이 심각한 부부싸움으로 번질 것만 같아서...그래도 영 아까웠다. 무료숙박권, 받을 수 있는건데...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 따졌어도 사과를 받는 정도에서 그쳤을 것. 타라는 <호텔 이미지에 쓸데없이 신경을 쓰는 그런 소심한 호텔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다음에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꼭 그자리에서 강하게 따지고 보상(?)을 받기로 이 소심한 부부 굳게굳게 다짐했다.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거지, 뭐... 하고 애써 마음을 달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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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영 독학. 숨쉬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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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돌리고 새초롬히 앉아있어 다가가보니...저런...때밀고 계시는구랴.

잘한다. 유리조각 나온 미운 수영장 마니 오염시켜주라. (거기서 수영하는 우리들은 모야, 그럼? 제얼굴에 침뱉기?)

종일 수영장에서 놀다가 오후에 빅씨에 갔다.
싸고 싼 속옷들과 수영복 (이 두가지는 잘만 고르면 유명 수입상표 제품을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을 사고 동네아이들 (그 대상이 좀 특이~) 줄 선물도 간단하게 준비했다.
돌아와 잠시 방안에서 쉬다가 저녁 사냥하러 나서려는데...

어머나? 비가 내리네? 그것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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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저녁 수영장.

할수없이 저녁은 호텔 내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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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구린 호텔 복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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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해산물 식당. 분위기 그럴 듯 합니다. 요리를 시키면 샐러드바는 무료. 허접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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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피쉬앤칩. 지퍼양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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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잰감? 암튼 이렇게 생긴 거 처음 시켜먹어봤다. 촌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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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양의 엽기행각 하나. 감자튀김에 토마토 케첩이 없으니 대신 장식으로 나온 토마토를 찍어 먹고 앉아있다. 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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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한 모성애를 발휘하야 얼렁 토마토케첩을 공수해다 주니 맛나게 찍어잡수신다. 어설픈 게 요리와 입맛다시는 고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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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식당 씬 한컷. 사랑하는 사람들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누가 그랬더라...생떽쥐베리?

식사 내내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이탈리안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유난히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지퍼양. 게다가 피아노에 노래까지 불러주는 할아버지였으니 넋이 나갈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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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킨 라빈스.

식후 디저트로 선택한 아이스크림. 퍼그가 더 좋아한다. 어린애처럼 아이스크림 좋아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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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앉은 자리에 태극기 스티커 장식이!

오! 놀라워라! 정말 우연히 딱! 앉았는데... 많은 국기들로 장식된 많은 냅킨꽂이들...중에서 바로 태극기 장식 냅킨꽂이를 만나다니! 단일민족의 핏줄이 땡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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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킨라빈스 창문 밖으로 비에 젖은 거리를 달리는 뚝뚝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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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려요~ 먹다말고도 하품! 오늘 심하게 놀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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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양의 엽기행각 둘. 자기전엔 꼭 발냄새를 맡아보는 습관.

냄새나요~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

계속됩니다....

10 Comments
이츠키 2004.12.02 18:54  
  아~일등이다!!!  항상 글 만 읽다 첨으로 리플을....
오늘도 지퍼양 넘 귀엽고 사랑스럽고 왕성한 식욕에 한표던집니다.... 매번 회사서 태국갈 궁리만 하며 눈팅하다 컴앞에 앉았는데 후기 올리셔서 제 맘이 다시 도 설렙니다!!!  지겨운 회사생활 오늘처럼 감기로 아픈날엔 다스한 햇빛아래 타이 맛사지 받고 싱하 한잔 함 싹 풀릴것 같은데......!!!  참 식당에서 찍은 사진에 나온 귀걸이 혹 태국서 사신건가여?  저도 태국가서20바트주고 산거랑 넘 똑같아서여???
몰디브 2004.12.02 22:05  
  아깝다~~~!!....2등이네..^^*
행복한 가족 여행기 넘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문득..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ㅎㅎ
동미 2004.12.03 01:28  
  오늘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후기..ㅎㅎ
지퍼양. 오늘도 귀엽군용. ㅎㅎ
엽기행각들.. 하하하하하하
그래도 귀여버요~  ㅋㅋㅋ
아부지 2004.12.03 03:19  
  지퍼양 귀엽다~ ㅎㅎㅎ 지지님의 여행기는 정말 떠나고싶게 만드는군여. 나빠여..[[아니]][[아니]][[므흣]]
이정우 2004.12.03 13:44  
  지지퍼그님....저도 내년에 태국 가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우선 허락도 없이 사진 여러장을 제 싸이로 가져갔거든요...괜찮은지요..안된다 하심 바로 지우겠습니다..사진 찍으신 솜씨가 너무 좋아서요...언짢으심 말씀해주세요..여행기는 정말 잘 읽었습니다...
gg 2004.12.03 21:46  
  이정우님, 아기사진은 퍼뜨리기가 좀 그래요~ 풍경사진은 퍼가셔도 상관없구요.
출처가 나온 제 블로그 주소 그대로 같이 올리신다면야 뭐, 문제되겠어요?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이정우 2004.12.04 11:20  
  저도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내아기 사진을 막 퍼간다면 기분이 안좋겠죠...아기 사진은 안가져 갔습니다...인물 사진은 코키리 트래킹에서 세분 같이찍으신 거 한장만 가져갔구요..사실은 코끼리만 가져간건데 같이 왔더라구요..실력이 없어서 지우질 못해서 그냥..이 사진의 주인이라고 글 남겼어요.나머지는 다 배경만 골라서 리조트랑 빌리지 카이섬등 이런것만요...컴퓨터를 잘 못해서 주소 지우고 그런건 더 못하구요...그대로 있는 그대로 올렸어요..안된다 하실줄 알았는데 감사합니다..확인이 필요하시다면 제 주소도 알려드릴께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유 2004.12.04 19:07  
  저... 저를 찾아 떠나셨다구용?
유부녀께서 총각을 찾아댕기시믄 안 되는데... ^^;;;;
gg 2004.12.05 22:11  
  ㅋㅋㅋ 자유님, 야심한 밤에 저를 웃겨주시네용. ^^
클클 2004.12.07 01:13  
  댓글도 참 기분 좋은 여행기네요~ 자유님 유머가 대단하시네요. 눈팅하다 너무 재밌어서 저도 끼어서 한마디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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