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꼬 피피로 가는 길,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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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꼬 피피로 가는 길,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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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뚜껑으로 체스(?)를 두는 카오산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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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색깔의 태국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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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표 오렌지 주스와 시원한 음료들


9월 10일-꼬 피피로 가는 길, 아름다움으로 가는 길


카오산에 머문 지 이틀째가 되니 슬슬 엉덩이가 들썩 거려진다. 캄보디아에 있을 때는 이곳이 그렇게나 그리웠는데, 정작 이곳에 있으면서는 며칠 되지도 않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한국인이 운영하는 홍익여행사에 들러 꼬 피피 행 여행자버스 티켓을 구입한다. 버스와 보트를 포함한 조인트 티켓이 1인당 350밧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 요금이 500밧 이상이고 보트 요금은 250밧인데, 어떻게 이런 요금이 가능한지 정말 놀랍다. 아무튼 태국은 21세기의 불가사의가 존재하는 나라이다.
꼬 피피는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은백색 해변과 잉크 빛 바다, 날렵하게 솟구친 기암절벽과 하늘을 향해 뻗은 야자수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꼬 피피는 자연이 만든 에술작품이다.
나는 그동안 꼬 피피를 2번 방문했다. 첫 방문은 1998년 1월이었다. 내가 태국을 첫 방문한 때이기도 하다.
1997년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서 방문한 필리핀 보라카이 섬에 만난 두 독일 청년 클라우스와 율겐과 의기가 투합한 나는 그들과 함께 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콕 돈무앙 공항에 내리자마자 밤 열차를 타고 곧장 쑤랏타니로 가서 다음날 아침 페리로 꼬 사무이에 도착했다. 꼬 사무이에서 광란(?)의 1주일을 보낸 후, 클라우스와 율겐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꼬 란타로 향했다. 당시 꼬 란타는 숙소만 몇 채 있고 별다른 편의시설이 없는 원시 상태의 섬이었다.(그랬던 꼬 란타가 최근 여행자들에게 남서부 최고의 파티 섬으로 각광받고 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낮에는 파도와 대화하고 밤에는 별과 친구해야 하는 고독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하룻밤 만에 꼬 란타를 탈출하여 꼬 피피 행 보트에 몸을 실었다.
두 번째 방문은 2001년 5월이었다. 취재 때문에 싱가폴-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라오스 등지를 1년 예정으로 여행하던 중에 들렸다. 3년 여 만에 들른 꼬 피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번 방문도 3년 만이다. 아직도 꼬 피피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동안 꼬 피피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꽤 들었다. 워낙 유명한 섬이라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섬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했다.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비치」의 주무대가 꼬 피피임이 밝혀진 이후로 더욱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어떤 해변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가슴 아픈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내 눈으로 그 소문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 추억 속에 낭만과 환상의 섬으로 남아 있는 꼬 피피에 아직도 낭만과 환상이 존재하고 있을 것인가.
일반적으로 육지에 비해 섬의 물가가 비싸다. 꼬 피피도 물가가 비싼 곳으로 악명이 높다. 워낙 좁은 섬에 많은 사람들이 찾다보니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엄격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꼬 피피의 숙소는 비싸면서 시설이 안 좋기로 유명하다. 꼬 피피에서 웬만큼 마음에 드는 숙소에 묵으려면 1,000밧(약 3만원)은 지불해야 한다. 한정된 여행경비 내에서 숙소가 차지하는 비용이 커지면 당연히 식비를 줄여야 하므로 먹는 게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은 꼬 피피에 가면 부실해질 식도락을 마음껏 즐기기로 한다. 먼저 늦은 아침으로 짜끄라퐁 거리의 국수집에서 꿰이띠오남과 뽀삐야를 먹었다. 맛은 최고이지만 양이 적어서 금세 배가 고파졌다.
곧바로 버스를 타고 삔까오로 이동한다. 삔까오는 쇼핑과 유흥시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다. 방콕에서 쇼핑이나 유흥을 즐기려면 싸얌이나 씰롬이 훨씬 화려하고 다양하다. 삔까오는 그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다.
하지만 싸얌이나 씰롬은 워낙 유명해서 상당히 혼잡하고, 교통 체증으로 인해 이동하는 시간이 꽤 걸리는 게 약점이다. 반면에 삔까오는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그렇게 혼잡하지도 않고 카오산에서 가까운 게 장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가끔 카오산의 분위기에 싫증이 나면 삔까오로 나들이를 한다.
삔까오에 도착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씨즐러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씨즐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갖춘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샐러드 뷔페이다. 내가 씨즐러의 샐러드 뷔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고(99밧, 약 3천원), 샐러드 종류가 무척 다양하기 때문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버스비는 1인당 10밧. 택시를 타면 50밧 정도 나온다.
소화도 시키고 더위도 식힐 겸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인터넷 카페에서 인터넷을 한다. 오랜만에 한국 신문 웹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전직 국무총리와 장관을 비롯한 이른바 ‘원로’(신문 제목의 표현이다)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무현 물러가라고 난리를 쳤단다.
정말 세상이 많이 좋아지긴 좋아진 모양이다. 독재자가 통치하던 시절에는 찍 소리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설쳐대는 꼴은 정말 가관이다. 면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독재정권에 기생하며 호의호식하던 자들이 대부분이다. 나이가 들면 창피함이 없어진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뭐가 잘났다고 이렇게 나서는 걸까.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나는 나중에 절대로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추하지 않게 늙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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