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하고 떠난 일가족 자전거세계여행(태국편) 6 콩지암을 찾아서
라오스 들어가기 앞서서 메콩 강변의 절벽산 파땜(pha taem)국립공원을 들르기로 했다. 지나가는 말로 선사시대 벽화 이야기를 던졌는데, 그것이 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딸아이도 찬성하니 애비로서 반대할 이유란 있을 수 없지!
우본에서 콩지암까지는 약 85km, 언덕이 없어 보여서 혹시나 하고 아내를 꼬셨다. “하루에 갈까? 충분히 갈 수 있잖아? 중국을 생각해봐? 장강둑을 달릴 때 완전 역풍이었지만 그날 85km 달렸잖아?” 사실 그날은 어느 시골 마을에 단 하나 있는 허름한 빈관을 아내가 정중히 거절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달렸고, 1시간은 거의 전등을 켜고 달렸다. 아내는 그 사실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태국에서의, 오전에 달리고 오후에 아들 공부시킨다는 라이딩 원칙은 고수 했다.
그렇다면 시간은 넉넉하고, 11월 18일 현재 햇빛은 여전히 강하지만, 바람이 제법 선선하니 조금 늑장을 부려도 문제된 하등이 이유가 없어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출발했다.
스리이싼호텔의 간단한 조식은 라이더들에게는 조금 야속하다. 10살인 아들 배도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 염치불구하고 계속 빵을 굽는다면야 빵으로 배를 채울 수는 있었겠지만!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강을 건너자마자 세븐이 우릴 유혹했다. 태국에서의 세븐은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한국에서라면 할 수만 있다면 안 가는 곳이 편의점이지만 태국에서는 일부러 세븐을 찾는다. 가볍게 에너지를 보충하고 물과 비상식량을 챙겨 라오스로 향하는 도로를 타니 9시 20분이나 되었다.
아이들에게 자전거 여행은 무엇일까?
무엇이 아이들을 달리게(?) 하는가?
바로 먹을 거다!
집에서는 못 먹는, 아니 안 먹는, 그러나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매우 자주 먹을 수 있다는 것!
태국에서는 그것이 ‘아이스크림’이다.
집에서는 정말 어쩌다 먹는 것이 아이스크림인데, 날이 덥다고, 라이딩이 길었다고, 오르막이 심했다고, 그런 날은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어야 한다.
때로는 무언가를 조건으로 약속을 미리하고서 먹기도 한다.
그러면 아들은 잘 달린다.
그러면 포토 모델과 인사를 전담하는 딸애는 불평을 하다가도 포즈를 취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이게 대단히 열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간혹 사줘야 한다.)
정말로 사소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너무나 자주 체험(?)한다.
역시나 중간에 제법 규모가 큰 주유소에 있는 세븐에 들러 더위를 핑계로 아이스크림은 하나씩 먹고 있는데, 가죽 바지를 입은 서양인이 자꾸 말을 걸었다.
자신을 홀란드 사람이라고 소개한, 이름은...... 들었지만...... 잠깐 스쳐간 경우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 이상 기억하기 쉽지 않다. 은퇴 후 여행을 다니신다는 매우 핸섬하고 젊어 보이는 분이었다. 이싼을 둘러보기 위해서 방콕에서 우본으로, 우본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이싼지역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보통 몇 마디하고 나면 나의 부족한 잉글리쉬로 인해 이야기가 끊어져야 정상인데, 여간 심심하고 외로우셨던 게 아닌지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내 계속 대화(?)를 이어 갔다.
한참을 더 달렸을까!
갑자기 손이 자동으로 올라가 흔들리고, 입가에 미소와 함께 나도 모르게 ‘할로?’ 소리가 터졌다. 자전거 여행 중 가장 반가운 순간이다. 특히나 이런 길을 달릴 때면!
태국에서 처음으로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이다.
그들도 반가운지 멈춰선 우리를 향해 길을 건너 왔다.
그래서 특별히 이름도 기억, 독일인 크리스와 영국인 버핏, 아마도!
두 주간 휴가를 얻어서 방콕에서 기차로 농카이로 이동 후 농카이에서 라이딩을 시작해서 메콩을 따라 콩지암까지, 그리고 콩지암에서 우본까지 라이딩 후에 기차로 방콕,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간다고 한다.
북동풍을 받고 달리는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러운 코스일 뿐이다. 북동풍을 받고 남서쪽으로 상류에서 하류로 달린다니!
오후 1시, 달의 강, 그 문강 변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마을 피분Phibun에 도착했다.
두어 곳 숙소를 들렸지만 마을에 있는 숙소는 그저 그랬다. 그럴 때는 먼저 배를 채우는 것이 순서, 쌀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물어서 찾아 간곳은 다리 건너 좌측에 자리한 아담한 미니리조트! 아이들이 좋아하는 LCD tv가 무려 삼성이다.
아내가 아들 공부를 봐주는 동안 딸 아이 손을 잡고 다리를 걸어 건너 강변에 위치한 작은 식당에서 볶음밥을 취향대로 주문하고(어찌어찌 해서, 양파와 당근을 잘게 썰어 넣고, 쿠킹오일은 조금만 쓰고, 미원은 빼고) 기다리는 동안 잠시 강변의 작은 먹거리 장터에서 두어가지 더 저녁거리로 장만해서 볶음밥을 들고 다시 다리를 건너오니 문강에 비스듬히 해가 떨어진다.
숙소가 좋으면 부작용이 심하다.
숙소가 싸고 좋으면 부작용이 매우 심하다.
저녁부터 애들이 ‘내일 가? 하루만 더 있으면 안돼?’라며 계속 노래를 부른다.
더구나 이 곳처럼 가격까지 저렴하면 내 마음마저 흔들린다.
하지만 우본에서도 3일을 있었으니, 이럴 때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해야 한다. 아내 입에서 하루만 더 있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빨리! 타협의 여지가 없도록!
피분에서는 메콩강변의 마을 콩지암까지는...... 실수로 거리를 체크하지 못했다.
표지판에 몇 개의 이름이 나오고 거리가 나왔지만, 콩지암이라는 말을 모르니 조금 답답했다. 10여km 이후부터 계속되는 오르막 내리막, 아내는 조금 많이 힘든지 평소보다 많이 처지며 계속해서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다. 어제 50여km를 달렸으니 많이 남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확실한 척 말할 수밖에!
갑자기 징처럼 생긴 거대한 종들이 나타났다. 종마을인가?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종을 파는 집들이 제법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의 생업인가 보다. 딸애를 큰 종 아래 세우니, 저 종을 치려면 딸애보다 큰 뭔가가 필요할 듯하다.
마침 구멍가게가 하나 있어서 간식을 먹는데 멀리서 조금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커다란 철판을 용접해서 테투리를 만들고, 흙 위에 두고 문양을 내기 위해서 두드리는 소리였다. 한번 두드려 보고자 하니 웃으며 기꺼이 끝이 둥그렇고 뭉퉁한 햄머를 건네준다. 이럴 때 사진을 찍어야하는데 아내는 먹는다고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고마운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 때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심히 곤란할 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니, 그 은혜는 가슴에 새기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할 은혜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족이 누군가에게 준 즐거움도 많다.
대부분은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은, 와! 하는 환호를 하는 사람, 그냥 보고 웃는 사람, 옆 사람 붙들어 당기며 보라는 사람! 특히, 논에서 벼를 베다가 웃음을 터트리며 일하던 이들과 함께 웃던 이싼지역 농부들! 이들은 다 우리 가족에게 빗진(?) 사람들이다.
물론 중국의 어느 농촌지역에서 삶에 찌든 얼굴과 죽은 눈빛으로 우리를 보고도 무감각했던 사람들도 잊을 수는 없다. 어린 아이를 보고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일까? 딸애가 아빠 자전거에 자기 자전거를 달고 열심히 페달을 굴리는 모습을 보고도 눈길을 두지 않는, 아니 눈에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는......! 10여 개월의 자전거 여행 중 가장 슬펐던 순간이었다.
콩지암!
이 이름을 한 5년쯤 되었나? 태사랑 어느 분의 여행기에서 들었을 때, 뭐 이리 정겨운 이름이 다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들러 보리라고 마음먹고 잊고 있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더구나 자전거 타고 간다니!
피분에서 2222도로를 타고 35km 정도 달렸을까? 내 마음대로 이름 붙인 콩지암 삼거리가 나왔다. 계속가면 파땜국립공원을 비롯한 여러 공원들이 메콩강변에 자리하고 있고, 우회전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작고 아담한, 콩지암이라고 불리는 동네가 삼각형 형태로 메콩강과 문강을 두 변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