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동안의 가을방학 -4- Good Girls in BKK
다섯째날
1. 코리안 타임? 타이 타임!
클럽을 다녀온 후 새벽 2시가 좀 넘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알람소리에 일어난 후, 10분만 더 자자던 것이 일어나니 10시 10분.
약속시간은 10시.
헉!! x됐다!!
씻지도 않고 옷만 입고 택시를 잡아타려다 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where are you? 도착했어요? 미안해요. 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 저도 10, 20분 늦을 것 같네요."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번개같이 샤워를 했다.
근데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확인하고 씻고나니 이번엔 10시 20분.
허겁지겁 옷을 입고 택시를 잡아탔다. 첫 만남부터 지각하면 이미지 안좋은데...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만나기로 했던 왓 프라깨우는 카오산로드와 택시로 5분거리밖에 되지않았다.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왓 프라깨우 정문이 어디냐고 물으니
누군가는 "왕궁 입구에요."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입장해야 왓 프라깨우 입구가 나와요."라고 한다.
두리번 두리번거려보았으나 SNS로 보았던 그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초조한 맘으로 관광온 중국인 아주머니의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해보았더니
"트래픽 잼이 심해요! 11시쯤 되야 도착할 것 같아요."
"OK... 나 더우니까 와이파이 터지는 까페 들어가있을게요. 거기로 와요!"
젖과 꿀같은 에어컨 바람이 흐르는 까페 안에서 망고쥬스를 시키며 핸드폰에 메모해놓았던 태국어 인사를 암기했다.
"싸왓디캅. 폼츠 시와캅. 마짝 쁘라텟 까올리.
폼 첩 왓차라와리(태국밴드) 래 똠양꿍.
인디 티다이 루짝 크랍!"
원래는 1대1 가이드였으나 그녀가 친구를 데려온다기에 3명이서 방콕을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태사랑 지도를 보다가, 아직은 어색한 인사를 암기하다가, 사진을 찍으면서 카페 안과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시간은 11시 10분... 11시 20분...
미안하다며, 차가 막혀서 택시를 탔다는 메시지에 괜찮다는 답장을 연발하던 무렵 그녀가 카페안으로 들어왔다.
평소 씨엔블루의 빅팬이라, 태국 콘서트는 물론 한국관광 겸 한국에 콘서트를 보러온 적도 있다던 그녀이기에
어떤 선물을 사서 갈까 고민하다가 한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한정판 화보집을 구매했었다.
선물을 건네며 그녀 옆의 친구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친구분은 이름이 뭐에요?"
"비아(Bya)! 그녀의 이름은 맥주에요."
"what? really? i like drinking beer sooooo much!!"
몇분간 인사와 대화를 주고받다 이제 나가자는 말에 그녀가 말하길 "아, 친구가 한명 더 오기로 했어요."
그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11시 40분이 되어있었다.
'음... 이 나라도 우리나라 코리안 타임처럼 조금 시간관념이 느슨한가?'
그때까지는 중국에 "만만디"가 있다면 태국에는 "마이뻰라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이었다.
2. 오빠! and 누나!
마지막 친구까지 도착하여 서로 인사와 통성명을 한 뒤 밖을 나선 나의 첫마디는
"배고파요!"
10여분 정도 걸어 도착한 시장에서 아점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여전히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또한 그녀들과 분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아는 하늘양의 사전정보는 카시콘 은행에 근무한다는 점.
한국어를 조금 공부했다는 것. 씨엔블루와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것.
서울여행을 와본 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편안한 표정으로 회사 내에서 동료들과 셀카를 자주 찍어 올리는 것을 보면 근무한 지 적어도 몇년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음 막연히 나보다 누나겠군, 하는 추측.
그러나...
"how old are you?"
그녀의 질문에 내가 만 나이로 대답을 하자, 양쪽에서 터져나오는 한국어.
"오빠!"
알고보니 하늘양과 비아양은 만 23세.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나 보다.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파사다씨는 나보다 누나였다.
"누나!"
나 역시 한국말로 화답해주었더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두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이내 웃어보였다.
"점심식사는 누나가 살게." (물론 영어. 아무래도 나는 태국어를, 그네들은 한국어를 잘 못하기에 주로 대화는 영어로 이어나갔다.)
3. 에메랄드 사원에서 코끼리song을 부르다
500바트라는 거금을 내고 들어간 왕궁.
혹자는 태국을 몇번이나 들락날락거려도 왕궁은 가지않았다... 고 하지만
사원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곳은 감동 그 자체였다.
후에 들른 씨엠립의 앙코르 와트가 규모면의 웅장함에서 나를 압도했으나 비슷비슷한 부조로 인해 약간의 심심함을 안겨주었다면
방콕 에메랄드 사원의 색색깔 찬란하고 오밀조밀한 장식과 그림들은, 눈물이 핑 돌것처럼 깊은 감흥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유일하게 아시아 국가 중 식민지배를 받지않은 나라답게 깔끔한 보존상태.
사진을 찍기가 송구스러울 정도라, 나는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보다 결국 눈과 기억속에 실컷 담아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녀들은 처음이 아니겠지, 얼른 얼른 앞으로 나아가는 가뿐한 걸음을 내가 겨우 겨우 붙들어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려 애썼다.
아마 혼자 왔다면 이곳에서만 2,3시간 정도 구경하고 갔으리라.
요즈음, 세계 어디를 가나 여행자들이 참 많다.
가이드북은 서점마다 넘쳐나고, 손안의 스마트폰에 타자 몇번만 치면 필요한 정보가 넘실거린다.
여행을 가기전 내가 여행을 가는 목적, 이유, 그리고 여행에서 하고싶거나 보고싶은 것들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했다.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하고 오자!"
(물론... 2주가 지나 이 말을 자진해서 거두긴 했지만 말이다.
후에 적게 되겠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얄궂은 일에 휘말려 경찰서도 갔다가 병원도 갔다가... -.-;;
하지만 그 2주의 또 2주뒤, 태국여자와의 로맨스도 있었으니 아주 얄궂은 말은 또 아닌 것 같기도 ^^)
그랬기에 여행을 하면서 낯선 태국인들에게도 불쑥불쑥 말을 잘 걸고 다녔다.
카오산 로드 근처의 세븐일레븐 옆 샛길 골목에 두런두런 앉아있는 태국청년들에게
"친구들, 태국 넘버원 맥주는 뭐지?"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그때 그들의 대답은 "leo 맥주"
호불호가 나뉘지만 나는 태국 맥주중에 leo가 가장 별로더라 ^^;;
김빠진 맥주 느낌이 난다고 해야할지...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드러워서 좋다고 하지만)
기분좋을 만큼만 취한 상태로 숙소를 가는 길목, 노천 주점에서 기골이 장대한 트렌스젠더 형님 두분이
내게 호객행위하려는 듯 손짓을 했을때도 "나는 너네 손님이 아냐. 하지만 태국문화를 알고싶고 태국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앉았어.
영업(?)에 방해가 된다면 그냥 일어설게."라고 말문을 열어, 한시간 남짓 의외로 즐거운(그리고 조금은 소름 돋는^^;;) 대화를 나눈 적도 있었다.
파사다씨가 셋중에선 영어실력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동생들과도 퍽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물론 나도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다 ^^;;)
여행이 길어질수록 언어장벽이란 것이 디테일한 이야기나 묘사에 갈증을 느끼게 만들긴 했지만
이제 첫주차인 뽀송뽀송 조증상태의 여행자에게 언어따위는 전혀 문제될 틈이 없었다.
백색 제복을 입은 태국군인과 검은색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검은색 코끼리 동상 사이에서 잠시 쉬어갈 무렵..
"how do you say elephant in thai?
태국말로 코끼리가 뭐야?"
"창!"
"아하~~ 그래서 창 맥주에 코끼리가 그려져있구나! 와... 신기하다. 한국말로 엘리펀트가 뭔줄 아니?"
"코끼리!"
"굿! 한국말 잘하네 ^^"
"OPPA! do you know elephant song?"
응? 코끼리 노래?
"아니, 모르는데?"
그러자 비아 동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묘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창창창창 창창창!"
매우 간단한 가사와 안무였는데 중독성이 대단했다.
나 역시 한번만 따라듣고 바로 노래와 안무를 소화할 수 있었을 정도로 ^^
나 역시 질 순 없지.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로 시작하는 코리안 엘리펀트 송을 들려주었다.
(가사가 어렵다며 인기는 좋지않았다만.)
더위를 식히려 앉은 그늘에서, 유일하게 내가 가사를 외우는 태국노래인 whatcharawalee의 끄롬 씨 타우(ร่มสีเทา)를 부르며 바라본 하늘은 노래의 멜로디만큼이나 화창하고 밝았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가라오케!"라고 대답했던 태국친구들.
역시 언어 익히기엔 노래만한 게 없나보다 ^^;;
4. 친절한 태국인들
왕궁을 나와 버스를 타고 총 40분 남짓 갔을까.
원래는 싸얌스퀘에 데려다 준다고 하였지만 전날 짜뚜짝 주말시장이 가고싶다는 나의 요청으로
우리는 짜뚜짝으로 향하였다.
주전부리의 천국!
무척 넓은 규모의 이 시장은, 골목골목 곁가지는 쳐내고 중앙만 한바퀴를, 다 돌지못했음에도 3시간 남짓이 족히 걸렸다.
닭 염통꼬치가 무척이나 맛있었다. 메추리알 프라이는 어릴적부터 자주 상상해본 먹거리였기에 매우 흥미롭고 또한 귀여웠다.
짜뚜짝의 특징은 입구쪽은 비싸다가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가격이 싸지면서 출구가 가까워지면 가격을 후려친다는 것.
250바트로 시작한 흥정도 없는 입구의 티셔츠 샵에서, 발품을 팔면 팔수록 버젓이 종이에 "100바트"라고 적혀져있는 가게가 수두룩한 거리로 변해갔다.

여자아인줄 알았으나 이구동성으로 태국친구들이 하는 말은 "쟤 남자야."
기타연주를 맛깔나게 잘 쳤다.
앞으로 일정이 많이 남았기에 짐을 많이 부풀리면 안되지만,
어쩔 수 없는 지름신에 반바지 한벌, 티셔츠 세네벌, 폰케이스 2개, 그리고 여행내내 아주 유용했던 동전지갑 등을 사며 쇼핑을 만끽했다.
한쪽에선 마운틴 듀의 디자인과 맛을 쏙 빼닮은 사이다 판촉행사 중이라, 줄만 섰다하면 공짜로 사이다를 마실 수 있는 행운도!
닭꼬치에서부터 의류, 악어가죽, 악기, 기타등등 없는 게 없는 이 짜뚜짝 시장은
다음에 태국에 들러도 다시 가보고싶다.
쇼핑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도착한 로컬 맛집!
메뉴판에 영어라고는 토씨 하나도 적혀져있지 않았던 곳.
스포츠머리에 립스틱을 바른 게이청년 웨이터가 인상적이었던 곳.
(그후로는 여러번 봤지만 이때는 처음이라서 태국의 개방성에 감탄했다.)
한달동안 한국음식은 커녕 서양요리조차 입에 안대고 태국요리만 주구장창 먹었으나
이날 먹었던 가게만큼의 맛집은 보지 못한 듯 싶다
한국에서도 김치가 맛있는 식당이 제대로 된 곳이듯, 이곳 또한 쏨땀이 무척 맛있었다.
게를 넣은 매운 쏨땀과 일반적인 쏨땀.
그리고 처음 맛본 까이양에 씽 맥주 한잔은 천국이었다 ^^
태국친구들의 양이 작아 음식이 꽤 남았는데, 아깝기도 하고 호의가 미안하기도 해서
꾸역꾸역 배가 full로 찰 때까지 씩씩하게 먹었다는 후문.
짜뚜짝에서 구매한 티셔츠와, 맥주가 그려진 폰 케이스.
나의 맥주 사랑은, 38일 연속 음주로 이어졌다.
비아 씽을 마시며 비아 폰케이스를 들고 옆자리의 비아양과 함께
이날 감동을 받은 건, 쇼핑한 것을 제외한
택시비, 버스비부터 자잘한 군것질이나 밥값까지 모두 이 친구들이 계산해주었다는 것.
"이거 어때? 맛있어 보여?"
"응, 맛있겠다."
그러면 바로 돈을 지불하여 내 손에 쥐어주는 식. 매번 지불 타이밍마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빠르게 돈을 내밀었으나 "너는 우리나라에 온 손님이야."라는 듯 괜찮다며 넣어두라는 그녀들.
그래서 저녁식사 값은 몰래 카운터로 가서 내가 계산했다.
혹시라도 대놓고 계산을 하면 잘 알지 못하는 태국문화에서 실례가 될까봐,
손짓으로만 저쪽편의 웨이터를 불러서 나쁜짓이라도 하듯 조용조용히 계산을 하고 있으려니
쉴 짬이 나서 우리쪽을 바라보던 주방 아주머니가 재밌다는 듯 연신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7시 즈음 다른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아직 음식을 다 안 먹었다고 20분이 넘게 기다려주기도 하였다.
처음엔 "늦는 거 아니야? 친구 기다릴텐데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고 묻다가, 연신 이어지는 "it's okay"에 나중엔 그냥 내가 먼저 일어나버렸다. 혹 날 배려하다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지하철 역에서 헤어지며 나는 태국어 회화 어플에서 "고마움" 관련 표현을 찾아 연발했다.
정말 고맙고도 즐거운 하루였으니까.
태국의 대중교통 요금은 조금 이상하다.
지하철이 호선별로 각기 회사가 다른 탓에, 결국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다 보면 택시비와 비슷한 요금이 나오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택시만 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비지땀을 흘리며 두번 지하철 환승을 하고, 마지막엔 택시로 카오산까지 돌아왔다.
역 근처에 널부러져있는 큰 개들과 놀고 사진도 찍으면서, "음, 이쪽은 싸얌 근처인가 보구나. 조만간 오게되겠군." 눈도장도 찍으며.
그리곤 도미토리에서 만난 새 룸메이트와 맥주한잔.
그 형이 추천해준 마사지 샵에서 타이 마사지를 받고, 내가 좋아하는 똠양꿍으로 속을 풀면서 방콕에서의 이틀째 밤이 깊어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