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동안의 가을방학 -3- 방콕, 여고생 길잡이와 어설픈 바가지꾼과 다구리
4일째
1. 공항을 나서며
비행시간은 2시간이라고 알고있었는데 막상 소요된 시간은 1시간 40분 남짓밖에 되지않았다. 예정 이륙시간보다 10분 늦게 출발했는데 도착시간보다 일찍 착륙했으니까.
이미 입국수속은 베트남에서 한번 해봤으나, 이번에도 수속을 앞두고 미친듯이 떨려오는 게 아닌가?
그제서야 '아, 입국수속이 긴장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나라에 발을 딛게 되는 이 순간이 무척 두근거려서 그런거구나.' 깨달을 수 있었다.
수완나폼 공항은 무척 넓고 쾌적했다. 기후는 크게 차이나지 않았지만 하노이 공항이 무언가 삭막하고 차가운 느낌이라면, 야자수가 통유리 창문밖으로 보이는 수완나폼 공항은 오픈되어 있고 따뜻한 느낌이랄까.
마침내 남국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건물과 바로 연결된 지하 공항철도로 가는길, 메모해놓은 태국친구의 폰번호로 공중전화를 걸었다.
동전이 없어 편의점에서 처음 태국음료를 사고 바트화 동전을 거슬러 받았을때의 소소한 기쁨이란.
아, 이제 단위가 커서 계산하기 어려운 베트남 Dong화가 아니라 바트화로 계산을 하는구나.
5개월 전에 미리 티켓팅을 해둔 탓에, 여행 루트 구상과 함께 "이왕 가는 여행, 태국의 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좀 알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시도한 것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태국친구들과의 조우.
무언가 공통분모는 있어야겠기에, 방콕의 한글 랭귀지 스쿨쪽 친구들에게 친구신청을 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무작위로 "10월달에 태국여행을 갑니다. 가기전에 태국문화와 사람들에 대해 알고싶어서 친구신청을 합니다."란 요지의 메시지를 몇십통 보내다 보니 SNS 측에서 '이 사람들이 당신 친구들이 맞느냐?'며 의심섞인(?) 추궁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hello. 이하늘씨 전화 맞나요?"
"네 맞아요."
한국문화를 좋아해서 SNS 이름조차 한글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그녀.
출국 며칠전에 황급하게 일일 가이드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내일 만나기로 한 시간과 약속장소를 재차 확인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철도를 타고 파야타이역으로 향했다.
빨간색의 동그란 차표. 이쁘고, 또한 신기했다.
방콕에서의 첫날은, 그저 모든게 신기하고 또한 기분좋았던 것 같다.
철도칸 안에서, 태국남녀들의 생김생김을 바라보다 내 옆자리에 앉은 프랑스 꼬마아이에 눈이 갔다.
에메랄드빛 눈에 어눌하게 이어가는 프랑스어. 금발에 흰 피부인 그 남자아이는 천사처럼 귀여웠다.
조부모, 부모님과 함께 삼대가 관광을 왔나보다.
2. 파야타이 역에서 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종점인 파야타이 역에서 내려 버블티 한잔 사먹고 종업원에게 길을 물었더니 가까운 곳에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한다.
허나 있어야 할 그 자리엔 정류장이 없었고 여러명의 태국인들에게 물어물어 20여분을 더 걸은 후에야 겨우 카오산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에 탑승해 처음엔 우리나라처럼 요금통이 없어서 버벅대다, 뒤쪽의 안내양을 보고서야 '아, 맞다. 블로그에서 태국은 아직 안내양이 있다고 그랬지..' 뒤늦게 끄덕이며 좌석에 앉았다.
안내양 누나한테 '카오산 근처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그리고 도착하면 귀뜸을 좀 해달라'고 했더니, 이 누나 아직 초보인지 내 뒷좌석 여학생들에게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를 물어본다.
20,30분 즈음이 지나고 뒷좌석에서 한 소녀가 내 어깨를 툭툭 치기에 뭔가해서 뒤돌아봤더니
다 왔다며 같이 내리자 한다. 자기네들도 카오산쪽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며.
"어디 나라에서 왔어요?"
아까 버스안에서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걸 계속 들었던지라 조금은 편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마짝 쁘라텟 까올리 (한국에서 왔어요.)"
그러자 너나할거 없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들 이름 대기에 바쁘다.
"강승윤!"
"씨엔블루!"
"원빈!"
처음 접한 태국의 햇볕처럼 반짝거리는 표정으로 꺄르르 웃는 소녀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카오산 로드.
나이를 물으니 이제 열여섯, 일곱 즈음이라는 아이들.
합장하며 컵쿤 캅을 외치며 태국에서의 첫 기념사진을 청하였다.

태국의 첫인상은 "사람들 친절하구나! 날씨는 덥지만 (베트남에 비해) 사방이 탁 트여있구나!"였고
카오산 로드의 첫인상은, 좀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나 토씨한자 안틀리고
"우와, 여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거리구나." 였다.
배낭을 멘 걸음걸음마다 땀이 주루룩 주루룩 흘렀음에도,
햇빛이 마냥 얄밉지 않았다.
그후로 1,2주 있어보니 방콕 또한 공기가 좋지 않단걸 느끼게 되었지만
오토바이의 아수라장, 매연의 소용돌이인 하노이를 갓 빠져나온 나에겐 쾌적한 도로와 청정한(?) 공기, 밝고 떠들썩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퍽이나 마음에 들어, 기분이 통통 튀어올랐다.
그후 자주 먹지는 않았으나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던 코코넛 쥬스는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숙소로 가기전 카오산 로드를 한바퀴 슥 돌고있자니
하노이에선 코빼기도 못 보았던 한국인들도 무척 많았다. 마치 이태원인 양.
왠지 그점이 첫날은 더 어색했지만 ^^;;
들고있던 K모 브랜드 신발을 보고 "이거 팔래? 얼마에 팔래?"라더니 한번 줘보란 말에 웃으며 건넸더니
자기 노점안으로 슥 들고들어가는 척 농을 던지는 상인도,
코끼리 티셔츠를 250밧 부르는데 달러와 동화에 익숙한 머리가 오해를 하여 "뭐? 25달러라고?"라고 반문했더니 눈치를 슥 보며 "응, 25달러."라며 씨익 웃는 상인도
경계하기보다는 유쾌하게만 다가왔다.
물론 묻고 2초도 지나지 않아 '아, 여기 베트남 아니지..'싶어
"you're kidding me"라며 잽싸게 250밧에서 100밧 남짓을 깎았다.
3. 방콕 첫 숙소 DDM으로!
그리고는 10분여를 걸어걸어 도착한 방콕에서의 첫 숙소 DDM.
후기를 쓰고있자니 첫날에 찍었던 사진들이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른다.
처음 폰을 소매치기당했을때는 그안의 사진과 동영상이 무척이나 아쉬웠는데,
지금은 이렇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풍경들이 있어 많이 서운하지는 않다.
다만 긴 글에 사진이 몇장 없어 읽는 분들이 조금은 눈이 침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뿐 ^^;;
미리 3일치 도미토리 요금을 지불하였기에, 간단한 확인수속을 거치고 짐을 풀었다.
아닌 게 아니라, 꼬따오에서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고 태사랑에서 카톡을 주고받은 나머지 일행들은 제각기 따로 숙소를 잡았음에도 모두 홍익인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슬쩍 흘리는 말이 "나는 DDM이 좀 취향에 안 맞더라구요..."
여자 도미토리 방으로 가는 길에 남자 도미토리 룸을 지나야 하는 특이한 구조,
노천에 오픈되어있는 (문은 닫히지만 잠기지는 않았다) 샤워실, 좌변기를 사용하려면 한층 더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하는 탓에 '아... 이래서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DDM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내다보니 남자방이 여자방 가는 길목 복도처럼 이용되는 탓에 여행객들끼리 자주 인사를 하며 친해질 수 있었고,
천장에서 물줄기 시원하게 쏟아지는 야외 샤워장은 하루에 2번 이상 샤워를 하게만드는 태국날씨에, 굳이 샤워기를 들고 씻지않아도 되어 꽤나 편리했고,
말티즈를 두마리 키우는 탓에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DDM의 두마리 개는 게스트 하우스에 더 정이 가게 만드는 요소였다.
4. 어설픈 바가지꾼
꼬따오에 동행하기로 한 일행을 처음으로 만나 식사를 하러 갔다.
아직은 40밧, 170밧 이렇게 바트로만 부르면 서둘러 계산기를 꺼내던 첫날.
팟타이와 비어 씽 큰병을 시키고 한국물가와 비교해가며 "우와, 싸다"를 연발하던 찰나
우리네 엿장수처럼 조그만 좌판을 목에 걸고 구운 전갈을 팔고다니는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우 머치?"
"100밧!"
"헐! 너무 비싸요. 안사요."
산다는 말도 하지않았는데 혼자서 90밧, 80밧 가격을 깎아나가는 아줌마.
에라 모르겠다, 한번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에 흥정을 시작했는데
50밧 아래로는 절대 안된단다.
바가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특유의 능청스러운 웃음과 후덕한 인상이 우리나라 어머니들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50밧을 건넸다.
맛은? 약하지 않은 비위임에도, 한시간 가량 고생했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살은 다 파내고 소금을 왕창 뿌린, 비린내가 진동하는 새우껍질을 먹는 느낌?
그후에도 이 아줌마를 몇번이나 마주쳤는데 나를 못 알아보는지 "전갈 먹을래?"라기에
"저번에 벌써 샀어요! 나 기억해요?"라고 하니
그녀는 두번 권하지도 않은 채 씨익 웃어보이며 지나간다.
오늘도 카오산 언저리에서 뽀송뽀송 태국초보 티가 나는 여행자들에게 전갈을 팔고 있겠지.
5. RCA 클럽거리
저녁엔 숙소에서 만난 일행들과 함께 RCA 클럽거리로 향했다.
불금이라 ROUTE 66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블로깅으로 읽었던 그대로, 태국 클럽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친구, 연인 단위로 많이 오더라.
입장시에 총기를 소지하고있는지 검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총기소지가 합법화인 국가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순간.
그 후로도 마분콩이나 지하철을 탈때 검색대를 종종 보고, 총기반입 금지 싸인을 보았는데...
머릿속에 든 생각은 "사고를 쳐도 우리 업장안에선 치지마."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 ㅎㅎ
겨우겨우 야외에 자리를 잡고 스미노프와 탄산수를 주문한 뒤 나는 분주히 클럽 안쪽 구경에 바빴다.
특이한 점은 보통 우리나라 클럽이 하우스, 일렉 아니면 힙합 음악만 다룬다면 방콕의 클럽은 한쪽에 라이브 밴드 스테이지가 있다는 것.
공연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열심히 점프를 하며, 웅얼웅얼이지만 대충 노래 후렴구를 따라부르며 태국 사람들과 같이 놀 수 있는 밴드부스가 나에게는 가장 좋았다 ^^
일행들은 새벽까지 달린다기에, 토요일 아침부터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나는 1시쯤 되서 일찍 택시를 잡으러 나왔다.
호객행위 당하지 않으려 택시가 주차되어있는 곳을 뚫고나와 도로로 가던중 들리는 한 여자의 비명소리.
아무리 태국이 첫날이지만 이건 태국여자가 아니라 한국여자의 비명소리 같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쌓여있는 그 곳으로 급하게 걸음을 옮겼더니
시비가 붙은 것인지, 한국인 남자가 태국인 남자들에게 다구리를 당하고 있었다.
발로 등짝을 차고, 주먹으로 연신 얼굴과 귀를 때리고... 옆에 있는 한국인 여자친구는 연신 비명을 지르며 말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경찰이 도착했으나 여기서 경악스러운 일 발생.
격렬하게 폭행을 하고있는 현장인데 두명의 경찰은 손을 스윽스윽 느리게 흔들며 "하지마, 하지마" 하는것이 고작.
우여곡절끝에 택시에 탑승한 한국인 남녀에게 "are you ok?"라고 묻는것이 고작.
그 상황에서 그들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말하자 기사에게 출발해도 좋다고 고갯짓을 한다.
아... 외국에서 내 안전은 내가 스스로 지켜야겠구나.
묵직한 깨달음을 체감하는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