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랏(Trat) 탐방기 3: 우연이 맺어준 인연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킥복싱이란 이름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던 무에타이는 우리나라의 태권도에 비견될 수 있는 태국의 국기(國技)와 다름없는 스포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무에타이 경기를 TV에서 본 사람들은 많이 있겠지만, 아마도 무에타이 도장에서 그들의 수련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것도 저렇게 앳되고 귀엽게 생긴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무에타이를 수련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을 수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번에 뜨랏에서 일박하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에타이 도장에서 한참을 보낸 뒤에, 작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져있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남국의 밤은 정말 일찍 찾아온다. 어둑어둑해지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칠흙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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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려고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얻기 위해 주인아주머니를 찾았더니, 주인아주머니 얼굴이 뭔가 심기가 불편한 듯 잔뜩 부어있었다. 당시에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머니의 게스트하우스는 무에타이 도장을 겸하고 있는 앞집의 게스트하우스와는 경쟁 관계에 있는데, 그쪽으로 손님을 자꾸 뺏기고 있어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차에 자신의 손님인 내가 자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 할 그 시간에 자신의 경쟁자인 앞집에 가서 즐거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목격한 모양이고 그것이 심사에 비틀렸던 모양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불친절한 태도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지려고 했지만, 싸구려 숙소에 묵는 댓가로 치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원래 이 숙소에 묵기로 했을 때는 이곳에 묵고 있던 두 명의 오스트리아 미녀들과 혹시 맥주라도 함께 마시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은근히 작용했던 것이지만, 이 외딴 태국의 지방도시에서 뜻밖에 우리 동포를 만났으니 그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내가 아무리 미녀를 밝히는 색동(色童)이라고 한들, 이역만리 먼 타향 땅에서 우연히 만난 동포를 외면하고 외국의 처자들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 제부시까형의 쭉쭉빵빵이 미녀들은 내 취향도 아니다. 혹시나 그들이 쭉쭉빵빵한 서양 미녀가 아니라, 아담하고 귀여운 청순가련형의 동양 미녀들이었다면, 내 동포를 배반하고 그녀들과 어울리고 싶은 유혹에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날의 나의 선택은 애초에 약간의 썸씽을 기대하고 따라갔던 그 오스트리아 미녀들이 아니라 낮에 숙소에 체크인 할 때 리셉션을 겸한 식당에서 만났던 우리 동포 L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한 블록 아래에 있는 별채에 투숙하고 있던 L의 방으로 찾아갔다. L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기에 낮에 처음 봤을 때는 아주 젊은 청년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청년이라 하기에는 좀 연륜이 있어보였고 그렇다고 장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중년의 초입에 있는 연령대였다. 우리는 낮에 충분히 하지 못했던 인사를 조금 더 나누고 나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섰다.
예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곳에서 동포를 만난 반가움에 내가 저녁을 사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L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대로의 이면에 숨어있는 시장에 있는 노점 식당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음식에 관해서는 많이 까다로운 편이다. 우선 고기류는 전혀 먹지 않는다. 돼지고기, 닭고기는 물론 소고기도 전혀 안 먹으니 그 밖의 생소한 고기류는 당연히 입에 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조금씩 먹기도 했지만, 오히려 어른이 된 어느 순간부터 동물들도 우리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고기류를 입에 대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생선과 해산물은 먹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식물도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해산물과 식물은 감정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복잡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존재는 아니라고 합리화하면서 먹는다. 그마저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기에, 궁색하지만 나름대로 내린 합리화이니 모순적이라고 너무 나무라지들 마시라!
게다가 비위도 약한 편이라, 위생 상태가 열악해 보이는 거리 음식이나 로컬 식당의 음식은 먹어볼 시도도 하지 않는다. 식성이 이처럼 까탈스러우니 사실 여행의 즐거움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맛집 기행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L이 시내 대로변 뒤편에 있는 시장에 가면 맛있는 생선구이집이 있다고 해서 그를 따라나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약간 늦은 저녁 시간이었기에 생선구이 집들은 이미 모두 철시하고 없었다. 할 수 없이, 시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시장 내에 있는 한 노점 식당에 가서 새우볶음밥을 먹기로 했다. 비록 노점 식당이기는 했지만, 많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맛은 괜찮은 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새우와 해물을 섞어 넣은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잠시 후에 나온 음식은 내게는 완전히 노점 식당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위생 상태도 생각보다 깨끗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 맛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태국 내의 어느 깨끗한 식당에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식재료로 사용한 새우와 오징어는 바다에서 이제 막 잡아 올린 듯 싱싱해서 정말로 말로 형언하기 힘들만큼 맛있었다. 아무튼, L덕택에 나로서는 이제껏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았던 노점 식당과 로컬 식당의 음식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우리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주로 여행을 주제로 대화를 계속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하고 서로 여행 경험도 많았기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지루한 줄 모르고 이어졌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같은 집에서 맥주를 추가 주문해서 마시면서 우리의 대화는 계속됐다. 그곳에서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눈 대화로도 부족해서, 우리는 맥주 몇 병과 약간의 안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L의 방에서 밤이 깊어질 때까지 대화를 계속했다.
나도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의 주요 도시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여행해 본 경험이 있지만, L은 여행 정도가 아니라 아주 현지인처럼 한 도시에서 몇 달씩 생활하면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주요 도시들을 여행해 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경험은 나와 같은 단기 여행자들의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가 들려주는 얘기들은 흥미진진했을 뿐만 아니라 정보 가치로서도 매우 유익한 것들이 많았다.
그때 나는 방콕에서 아란-포이펫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들어간 후, 씨엠립을 거쳐서 왕꼬르유적들을 구경한 후 프놈펜과 시하누크빌, 꼬꽁 등을 여행한 후, 꼬꽁-핫렉 국경을 넘어 뜨랏으로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얘기 중 내가 방금 여행을 마치고 온 캄보디아의 얘기들이 특히 흥미진진했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프놈펜에서 위험 지역의 밤거리를 내가 겁 없이 혼자서 헤집고 돌아다닌 것은 무식하면 용감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었다. 또, 나도 나름대로 늘 많은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데도 불구하고, 정보 부족으로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놓쳤음을 알게 되었다. 그를 일찍 알았더라면 보다 풍요로운 캄보디아 여행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의 다음 행선지가 방콕이었기에, L은 방콕에 대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사실, 방콕은 인터넷 상에 정보가 넘쳐흐르고, 그동안 개인적으로도 몇 차례 여행을 통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온 곳이었는데, 그로부터 몰랐던 정보를 하나 얻게 되었다. 그것은 Wongwian Yai 기차역(같은 이름의 BTS역에서 도심 쪽으로 도보로 15분쯤 되는 거리에 있음)에서 10밧짜리(현지인은 무료) 완행열차를 타고 1시간쯤 걸리는 Mahachai라는 어촌 마을에 관한 정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근교에 있는 소래포구쯤 되는 곳으로 이해해도 좋을 곳인데, 수산물이 방콕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방콕에서 장사를 하는 분들도 물건을 사러 많이들 오는 곳이다. 그의 추천에 의해, 나는 방콕에 돌아온 후 이곳을 방문했었고, 또 열차 안에서 한국에서 4년간 근로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는 한 태국인을 우연히 만나서 그를 따라서 Mahachai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Kachin시장이란 곳도 구경하게 되었다. 이곳은 근처 공단에서 일하는 미얀마 근로자들이 많은 곳이라서 주말에 가면 미얀마 전통의상을 입고 모처럼의 쇼핑에 나선 미얀마인 처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이 뜨랏에서 일박하면서 우연히 L을 만나게 됨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니, 뜨랏 여행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젯밤 L과 밤늦도록 대화하는 바람에 늦게 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문밖에서 뭔가 부산스런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방에 투숙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처자들이 화장실을 다녀오고 세면을 하느라고 부산스러웠던 것이다. 눈꼽도 떼지 못한 부스스한 모습으로 마주치면 서로 민망할 것 같아, 그들이 세면을 마칠 때까지 나는 방안에 한참동안 갇혀있어야 했다. 젊은 여성들이라서 그런지 둘이 세면하는데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투숙하고 있던 곳은 방 댓 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별관이었는데 단 한 개의 화장실과 욕실을 투숙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그때, 투숙객이라곤 나와 옆방의 오스트리아 처자 2명밖에 없었는데도 아침에 이렇게 불편하니 성수기에 방들이 투숙객들로 꽉 차게 될 경우에는 아침에 화장실 앞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난민촌의 모습을 재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 생활이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국방부 시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서 결국 제대 날이 돌아오듯이, 그녀들 세면이 끝나고 드디어 내가 세면할 시간이 돌아왔다. 세면을 끝내고, L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방을 나서려는 순간, 옆방의 오스트리아 처자들도 각자 무거운 배낭들을 앞뒤로 하나씩 짊어지고 체크아웃을 하려고 방을 나서다 나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굿모닝.” 하고 서로 아침 인사를 한 뒤 간단하게 몇 마디 더 나누었는데, 그녀들은 오늘 비행기편으로 치앙마이로 가서 태국 북부 여행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하기 바란다는 인사말을 하고 그녀들과 작별했다. 애초에 젊고 아름다운 금발 미녀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그녀들을 졸래졸래 쫓아와서 이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 묵었건만, 결국 그녀들과는 아무런 인연도 맺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보통은,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많은 외국인들과 서로 사진도 함께 찍고 이메일도 교환해서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녀들과는 한 장의 사진도 같이 찍지 못했고 이메일주소도 교환하지 못했으니, 우리들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모양이었다.
그녀들과 작별한 뒤, 내가 묵고 있던 숙소에서 한 블록 떨어진 별채에 있는 방에서 투숙하고 있던 L에게로 갔다. 우리는 가벼운 아침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숙소를 나왔다. 이번에는 그가 단골로 다니는 근처의 로컬 식당으로 날 안내했다. 외관은 허름해 보이는 국수집이었는데, 그런대로 청결했고, 맛은 그가 단골로 다니는 집인 만큼 보증된 집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L과 함께 식사를 하러 다님으로써 노점 식당이나 로컬 식당에 대해 내가 갖고 있었던 부정적인 선입견들이 많이 누그러진 점도 이번 뜨랏 여행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친 뒤, 방콕행 버스표를 사기 위해서 근처의 여행사에 갈 때에도 L은 나와 동행해 주었다. 버스표를 산 뒤, 두 시간 이상의 여유 시간이 있었지만, 편한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서 숙소에서 바로 체크아웃해서 여행사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주머니도, 어제 저녁 내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것이 미안했던지, 체크아웃할 때에는 얼굴에 다소 과장된 미소를 띤 채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 약간은 가시 돋힌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농담이 튀어나왔다: “오늘 밝게 미소 지으시니, 어제 저녁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이시네요.” 그렇다고 나를 뒤끝 있는 남자로 오해들은 하지 마시라! 아무리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일지라도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 서비스업의 본령이라는 것을 농담의 형식을 빌어서나마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L은 나대신 나의 무거운 캐리어를 끌어주면서 여행사까지 함께 가서,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고, 그는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 버스의 짐칸에 넣어주고 나서, 버스에 올라타는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버스가 출발하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는 그곳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후기] L을 뜨랏에서 만난 게 2011년 10월의 일이니, 2013년 10월 현재 딱 2년이 흘렀다. 그는 지금도 동남아시아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민간요법을 공부하고 있는데, 현재는 베트남 북부 지방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체재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두 차례 귀국한 적이 있는데, 귀국할 때마다 내게 연락을 줘서 우리는 서울에서 두 차례 반갑게 해후해서 밤늦게까지 술을 함께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지난번 귀국 때는 고맙게도 중국의 현지 특산품인 귀중한 차까지도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후로도 이메일로 근황을 전하면서 간간이 귀중한 여행 정보도 전해주고 있으니, 뜨랏 여행을 통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L과의 소중한 인연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