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여행기2] 호치민에서 방콕그리기
**방콕 가기 5일 전입니다!
저는 지금 호치민에 있지만, 이 여행기는 결코 벳남 여행기가 아님을 밝혀둡니다.
잠깐 태사랑을 멀리하고 이름부터가 감성 돋는 베트남그리기 카페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도 있지만,
방콕으로 가기 전에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일 뿐,
내 영혼은 이미 방콕에 가 있답니다.
어제는 오토바이들을 헤치고 길 건너느라 식겁했는데,
오늘은 과도한 커피 드리킹으로 심장마비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네요.
호치민에 있는 동안, 지난 번에 다 쓰지 못한 방콕 여행기를 완성해야겠네요,
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실시간 여행기다보니 당장에 일어나는 일들이 피부 가까이 다가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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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을 가기 위해서 굳이 아마존까지 찾아갈 필요는 없다.
이곳, 호치민은 지금껏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정글이다.
길바닥에 목숨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아찔함이 골목마다 거리마다 도로마다 있다.
오토바이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흡사 필리핀 외딴 섬에 있던 오래된 목재 건물 숙소에 불을 켜고 들어갔을 때,
갑작스런 눈부심에 빠른 속도로 흩어지던 바퀴벌레들처럼,
무섭고 징그럽지만 한편으론 매혹적이다.
그리하여,
숙주나물 야무지게 넣어 쌀국수를 먹을 때도,
망고와 패션의 조합이 최상인 생과일주스(신또)를 마실 때도,
굳이 위험천만한 도로변 가장 가까운 곳에 놓여진,
목욕탕에서 때 밀 때만 앉을 수 있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오토바이 행렬의 장관을 감상하고 또 감상하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슬아슬하지만 사고를 비껴간다.
묘기를 구경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하루종일 쳐다봐도 질릴 거 같지 않던 그 풍경에,
내가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목숨이 내 것이라면,
블록버스터 웰메이드 액션 영화가 하드코어 호러로 둔갑할 수밖에.
내 생명은 너무나 소중해서 순간 마음이 애틋해진다.
놀라지 말라고,
나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고 있던 그 손이 기특하다.
호치민에는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없다.
아니 있다. 시내 중심가 돈 냄새 물씬 나는 공간에는 있다.
그러나 여행자 거리 데탐에는 없다.
애초에 시내 투어를 나갈 생각은 없었다.
근데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파는 켐박당을 찾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시내로 나가야 한단다.
호치민에 도착한 첫날,
혼돈의 오토바이 소굴을 경험한 나는,
저 도로를 다시 건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텔 방에서 꼼짝도 않고 무서움에 떠는 모습이 시간이 지날 수록 또 한심한 거다.
슬그머니 기어나와 시내로 나가는 첫관문인 숙소 앞 도로를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방법이 있었다.
정글에서 태어나 자란 현지인이 나타나면,
그림자처럼 옆에 붙으면 된다.
단, 너무 붙으면 상대방이 당황할 수 있으니 거리 유지를 잘해야 한다.
만에 하나, 그가 당황해서 도로 중간에 멈추기라도 하면,
이건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데탐 거리에서 공원을 가로질러 뉴월드호텔까지 잘 찾아왔다.
다음은 벤탄시장을 지나서 대통령이 옛날에 살았다는 집을 거쳐 노틀담 성당까지 가야 한다.
단단히 숨을 붙잡고,
현지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 명은 안 된다.
쏟아지는 오토바이를 막아줄 방패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방패막이 서너 명이 모이면 잽싸게 따라 붙는다.
곧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혼잣말을 해댄다.
- 아, 대박, 헐, 대박, 악, 악, 악, 악, 악, 휴우,,,,,,, 대박
악, 이 다섯번이면 죽을 위기가 다섯번이었다는 얘기다.
이 방법으로 나는 무사히 호치민 시티를 한 바퀴 돌고,
소원하던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태국 것이 훨씬 맛있다는 게 함정.-_-)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듬직하니 믿음직해 보이는 건장한 남자 옆에 따라 붙었을 때가,
최고로 위험한 순간이었는데,
지나고나니 그는 하자있는 방패였다는 생각이 든다.
정글에서 나고 자란 이가 아닌 나랑 똑같이 정글에 갇힌 외지인이었던 거다.
그렇게 몇 번의 판단 미스로 내 목숨은 길바닥에 수 번 굴러다녔다.
지금, 이 안전한 커피숍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와 그보다 더 진한 연유가 밑에 깔려있는,
달고도 쓴 베트남 커피를 두 잔째 드리킹하면서 감상하는 오토바이 행렬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하지만,
다시는, 다시는, 저 길을 건너진 않을 테다.
나서지 않으면 사고도 없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 실연도 없다.
나는,
사고도 실패도 실연도 없는 안전무사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방콕 도착 5일 전이다...! 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