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타이랜드] - 이건 뭐 굿이라도 해야 되나?
생각해보면 그것이 첫 번째 징조였다. 북부로 올라가기 위해 태국의 주요도시 중 하나인 나콘싸완(Nakhon Sawam)을 향해가던 중, 갑작스레 페니어(자전거 전용가방)가 망가졌다. 커브를 도는 중에 전봇대에 살짝 부딪친 거 같은데 아무래도 고리 부분에 정통으로 딱 맞아떨어진 게 문제였던 것 같다. 비루한 내 장비 중에 그나마 가장 비싼 물건 중 하나인 페니어가 망가지다니! 나 잠시 패닉! 할 수 없이 짐받이 끈으로 대충 응급처치를 하고 달리려는데, 이거야 뭔. 모양이 뭔가 꼴사나워졌는데. 일단은 무사히 고정되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지. 조만간 벨트라도 하나사서 묶고 다녀야겠다.
그렇게 한 시간쯤 달렸을까? 여행 중 처음으로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아니, 자전거 사고 처음 난 펑크니까 1년 2개월 만에 첫 펑크구나. 일단 배운 데로 자전거에서 뒷바퀴를 분리하고, 튜브와 타이어를 분리하는 동안 타이어레버 하나는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겨우겨우 타이어에 박힌 가시를 찾긴 찾았는데, 튜브에 구멍은 대체 어딜 간 거야? 못 찾겠다!! 꾀꼬리! 일단 포기하고 새 튜브로 갈아 끼고 출발! 세상에.. 이거 하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내 손으로 펑크를 수리했다는 생각에 콧구멍이 벌렁벌렁~
: 자전거를 사자마자, 국토종주를 하겠다며 펌프를 사러 간 저에게 손수 앞바퀴 튜브 가는 법을 가르쳐주신 바이클리 점장님! 폐점시간이 다 돼서 펑크패치를 사러 간 저에게 가게 문 닫다 말고 뒷바퀴 분리·조립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선학역 송도MTB사장님! 두 분은 절 기억 못하시겠지만, 전 오늘 두 분 덕분에 머나먼 타지에서 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이렇게 말하니 무슨 미스코리아 수상 발표하는 것 같네. 하하.
어쨌든 두 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숙소에 도착! 이대로 오늘 하루 마무리하나 싶었는데!! 이번엔 멀쩡하던 자전거 자물쇠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내 자물쇠는 비밀번호를 돌려서 맞추는 스타일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부분이 뻑뻑하니 잘 안돌아가는 것 같더니, 급기야 잠기지도 않아! 마음 같아서는 당장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싶었지만, 잠기지 않는 자물쇠라도 일단 걸어두는 편이 도난방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단은 가지고 다니기로 결정! 왜 카메라가 없어도 CCTV 촬영 중이라는 문구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방범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게 벌써 세 번째. 오늘 정말 왜 이러지? 이거 무슨 굿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심난해진 마음을 다스릴 겸,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확인해보려는데, 아, 무슨 여행사진이 죄다 길바닥 아니면 숙소 사진뿐이야? 아무래도 자전거를 타고 온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여행보다는 자전거 타는 일에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 같다. 내일부터는 기상시간을 좀 빨리하고, 마음을 열어라는 표현은 좀 그렇고. 뭐랄까. 그래. 부끄러움을 조금 걷어내고, 조금씩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오늘 짜증나는 일투성이였지만, 덕분에 직접 펑크도 수리해보고, 그간의 여행을 되짚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다행인 셈인가? 그러고 보면 세상엔 정말 나쁘기만 한 일이란 건 없나보다. 자, 그럼 내일을 위해 오늘의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