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하늘나라로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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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9월 7일-하늘나라로 이르는 길

필리핀 3 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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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왓 주변에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유적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개별여행자가 앙코르 유적을 둘러보는데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대략 4가지다. 1) 자동차-대당 요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4인 미만일 때는 1인당 요금이 비싸다. 그러나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보기에 좋다. 게다가 에어콘까지 빵빵하게 나오므로 무척 쾌적하다.
2) 뚝뚝-2명이 관광할 때 가장 편리하고 저렴한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 뒤에 2인용 좌석을 부착한 형태인데 승차감은 좋다. 지붕이 있어서 캄보디아의 타는 듯한 햇볕을 가려준다.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차양도 갖추고 있다.
3) 오토바이-혼자일 때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그러나 햇빛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고 좁은 운전사 뒷좌석에 앉아서 이동해야 하므로 약간 불편하다.
4) 자전거-시간이 많고 체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주로 이용한다. 유적 간의 거리가 먼 곳은 이동하다가 녹초가 될 수 있다. 물론 요금은 가장 저렴하다.
걸리버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틀 동안 우리의 발노릇을 해줄 뚝뚝 운전사가 도착했다. 이름은 씽끗이고 나이는 29살인데 아직 총각이란다. 일반적으로 캄보디아 남성들은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다. 왜 아직 결혼을 안했느냐고 묻자, 씽끗 웃으면서 '결혼하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든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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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 씽끗과 그의 밥벌이 수단인 뚝뚝


아침식사를 마치고 앙코르 유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캄보디아에서 뚝뚝은 처음 타보는데 생김새는 어설퍼보였지만 승차감은 좋았다. 속력을 내자 맞바람이 불어와서 상쾌하기까지 하다. 유적지 입구에서 미화 40불을 내고 3일 패스를 끊는다. 무료로 찍어주는 패스 사진 속의 얼굴이 다른 사람처럼 어색하다.
먼저 빡세이 참 끄롱을 둘러본 후 앙코르 톰 남문으로 입장하여 바욘으로 들어섰다. 50여 개의 거대한 관세음보살 얼굴상이 있는 바욘은 내가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3곳 중 한 곳이다.(다른 두 곳은 앙코르 왓과 반띠아이 쓰레이다.)
처음 바욘에 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얼굴상들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었다. 투박한 돌로 이루어진 얼굴상들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했다. 게다가 그 표정 하나하나도 똑같은 게 없이 다 제각각이어서 마치 살아 있는 거인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었다. 수백 년 동안 잠을 자고 있던 거인들이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일어설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취해 정신이 혼미했던 곳이 바로 바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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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욘의 신비한 미소를 흉내내어 볼까?


21세기 문명세계를 사는 사람도 이 정도인데 이곳이 처음 만들어진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까. 13세기에는 몇몇 왕족과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하루 연명하기도 곤궁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 거대한 얼굴상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승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잠시 망각하게 해주는 환상의 공간이었을까. 아니면 배부른 돼지로 살기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남기를 원하는 지적 동물로써의 자존심의 상징이었을까.
바욘을 비롯한 앙코르 톰 주변의 유적들을 관람하고 앙코르 왓으로 발길을 돌렸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앙코르 왓은 여전했다.
방대한 신화적 상상력의 집합체인 이 엄청난 규모의 사원은 입구부터 여행자를 압도한다. 聖山을 상징하는 중앙의 6개의 탑과, 힌두교의 온갖 신화들이 현란하게 조각되어 있는 사방 200여 미터에 이르는 회랑 등, 전체 80여 헥타르의 방대한 대지 위에 자리잡은 앙코르 왓은그 뛰어난 예술성과 창조성으로 인해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손꼽힌다. 건성으로 둘러봐도 꼬박 한나절을 할애해야 하는 앙코르 왓은 캄보디아 만의 자랑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첫 방문시 회랑 벽면에 아로새겨져 있는 부조는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인도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 부조는 도저히 인간의 솜씨로 탄생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초월적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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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왓으로 가는 길, 하늘나라로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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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예술성과 창조성을 보여주는 회랑 벽의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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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벽에서 뛰쳐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앙코르 왓을 찾은 나의 가슴 속으로 벅찬 감동보다 애잔한 슬픔 같은 게 잔잔히 밀려들었다. 이 거대한 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스러져 갔을까. 그들의 노력은 지금 그 어느 곳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앙코르 왓을 거쳐가는 수많은 관광객들 중 과연 몇 명이나 그 무명의 일꾼들을 추념할까.
13세기의 통치자는 왜 앙코르 왓을 건설했을까? 신에 대한 경배일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픈 욕망 때문일까?
전자라면, 신에 대한 경배를 빙자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토탄에 밀어넣는 통치자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건설된 사원에서 신은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후자라면, 권력 과시욕에 사로잡힌 통치자의 세속적 욕망이 놀랍다. 그도 인간이었을텐데, 우주 속에서의 인간은 이 건축물을 이루고 있는 수백만 개의 돌조각 중 하나 만도 못한 존재가 아니던가. 한 줌의 욕망도 통제하지 못하는 통치자를 모신 백성들이 가엾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어찌 수백년 전에만 벌어졌으랴.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는 통치자의 야망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며 대리전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인간은 위대한 존재인가, 어리석은 존재인가.
앙코르 왓의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가파르다. 신이 있는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개를 꼿꼿이 들어서는 안 되고 엎드려서 두 손과 두 발을 사용해서 기어 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앙코르 왓 곳곳에 시멘트를 사용해서 보수한 흔적이 눈에 띈다. 돌과 시멘트가 서로 제대로 결합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고 있는 듯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돌들의 신음이 들려올 것 같다. 그 돌들에 짓눌려 스러져 간 캄보디아 민중들의 비명이 들려올 것만 같다.
어느새 서녁 하늘이 주홍빛 노을로 물 들기 시작한다. 앙코르 왓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서 프놈바켕으로 이동한다. 씨엠리업의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에 모인 것 같다. 아마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새쉬가 쉴새없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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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바켕에서 일몰을 기다리고 있는 여행자들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는 뚝뚝에 몸을 실는다. 저녁식사를 위해서 올드마켓으로 데려다 달라고 씽끗에게 부탁한다.
올드마켓에 도착하자 씽끗이 조심스럽게 오늘 일당을 지금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원래는 마지막 날에 한꺼번에 주는 게 관례이다. 하지만 하루를 못 참을 정도로 급한 용도가 있는 모양이다.
약간의 팁을 얹어서 씽끗에게 돈을 건네고 어제 왔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이 얼굴을 알아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음... 이 집의 음식은 정말 맛있다. 포식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과일을 조금 산다. 오늘은 바에 들려서 앙코르 비어라도 한 잔할까 싶었는데, 한 낮의 더위에 시달리다가 배를 채우고 나니 온몸이 금세 나른하다.
일단 숙소에 돌아와서 잠시 눈을 붙일 요량으로 침대에 누웠다가 내처 아침까지 골아떨어지고 말았다. 오래 전 캄보디아 백성들이 꿈꿔왔던 하늘나라로 오르는 길을 꿈 속에서나마 찾을 수 있을까...
3 Comments
내일 2004.10.16 10:12  
  필리핀님의 글솜씨가 돋 보이는 여행기네요. 잘보고 있습니다.
체리맛초코 2004.10.16 13:21  
  대단해요~~ 글 잘보고 있습니다...건강하세요
곰돌이 2004.10.16 14:26  
  어 사진 테두리가 바뀌었네요 ! 작품사진의 테두리같은 멋진[[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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