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삽질힐링여행 1 - 여행을 계획하게 된 배경 및 준비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는 시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내 영혼은 많이 아프다는걸 깨닫게 되었다. 누가 정하지도 않았지만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늘 탓하면서 스스로를 질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기분으로 살아냈던 몇 년 이었다. 난 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사는걸까 싶은 마음에 남들처럼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라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체험하고나서야 그냥 생긴대로 살자 싶었다. 하지만 내적 일치를 이루면 그것이 외부와의 마찰에서 내는 불협화음때문에 나를 괴롭혔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아픈지도 모른채 견디며 나를 죽이고 있었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고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나서야 엄마는 내가 아프다는걸 알았다. 넌 언제나 스스로 잘 해왔으니 늘 알아서 잘 하겠다고 말하는 나를 너무 믿고 신경을 못써줘서 미안하다고 하시며 이번 기회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신다. 나이 서른 넘어서까지 엄마에게 이런 말 듣는 것도 참 괴롭다. 엄마 입장에서야 미안하고 안쓰럽겠지만 그럼 난 서른이 넘도록 엄마가 챙겨줘야되는 애란 말인건가 싶은 마음에 또 자괴감이 들었다. 각설하고, 지금 기분에, 이런 상황에서 여행이 즐거울리 없기에 무슨 소리냐 했다가 어느새 태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아둔 돈이 얼마나 있는지도 체크하고 동생 스케줄도 물어보면서 여행 동반자도 물색한다. 여행이라는 자극 하나로 이렇게나 빨리, 이렇게 능동적으로 변한 내가 스스로도 신기했다. 동시에 한심하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 그렇게 하루에도 열두 번 씩 태국여행을 시뮬레이션 했다가, 내 처지에 그게 되겠냐 하며 포기했다가를 반복하는 고민 끝에, 동생과의 대화로 그냥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아픈건 몇 년 간에 걸쳐서 계속 받아온 상처 때문인데 이게 고작 10여일 여행 한다고 깨끗하게 낫겠어? 엄마는 이제 취직도 해야되고 하니까 인상도 예쁘게 하고 밝아지라고 보내주는거지만 그게 과연 가능할까?"
보이지 않는 몇 년 간의 학대 속에서 나는 어느새 웃음도 잃고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도 잃은 채, 짜증만 늘어서 얼굴에 짜증이 붙어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응. 그게 여행 한 번에 다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힐링은 될걸? 옅어지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같은데"
그렇게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상처받은 나를 치료하고 나를 더 사랑해서 남들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이상 피해의식에 젖지 않기 위해.
본격적으로 여행에 대한 마음을 먹으니 실제적인 문제들이 괴롭혔다.
비행기 예약이며 숙소, 일정, 예산 등등..
모아둔 돈이 별로 없었던지라, 동생과 둘의 여행에서 모자라는 돈은 엄마의 지원을 받았다.
(역시 아쉬울 땐 엄마 뿐이다 ㅠㅠ)
할배들도 가는 유럽여행을 젊은 나는 아직도 못가본지라 비행기 마일리지나 모으려고 발급신청해둔 카드도 발급일을 재조정했다.
비행기 예약도 땡처리 항공 사이트에서 자리 남아있는걸 확인 한 후에 카드 발급일과 맞춰서 예약하려고 했는데 정작 예약을 하려고 보니 대기예약도 안된단다-_-
그럼 왜 일주일 이상이나 좌석이 9개 남아있다고 표시를 해둔거지??
전화해서 물어보니 자기들은 거기 표시된 좌석수와 실제 좌석수가 다를 수 있으니 예약을 넣어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는 문구를 적어놨으니 자기들 잘못은 아니란다.
난 그거 믿고 숙소먼저 예약해 뒀는데-_- 난감했다.
분명 내가 보는 사이트엔 좌석이 9개 있다고 나오는데 상담원 언니 화면엔 좌석 없다고 나온단다.
어렵게 내가 보는 화면을 캡쳐해서 메일로 보내줬고,
그 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지만 조금 후에 전화가 왔는데 해줄 수 있는게 없단다.
그 날짜로 이런저런 항공편은 가능하고 요금은 얼마가 되겠다면서 예약 진행해줄까? 이러는데 기가 찼다.
그 돈이면 인터파크 항공에서 나도 예약 가능한건데 왜 굳이..?
답이 안나오니 상담원 언니가 부장님이라는 남자에게 내 전화를 돌렸다.
이 아저씨 부장님이라는 직함과 달리 목소리가 젊다.
근데 다짜고짜 나한테 따진다.
"손님, 예약 하셨어요? 안하셨죠? 그럼 저희가 책임질 부분은 없어요. 그리고 거기 문구를 넣어놨잖아요. 다를 수 있으니까 예약을 하시라고. 어쨌든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건 없습니다."
뭐지? 싸우자고? 나한테 지금 싸움 거는건가?
회사가 비행기 예약 대행으로 돈을 버는거면, 적어도 고객에게 정확한 정보는 전달해 주어야 하는거 아닐까?
대기예약조차 불가능한 좌석을 9개나 남아있다고 열흘이 다 되도록 표기를 해뒀다면,
이 성수기 피크 시즌에, 낚시성 상품이란 생각이 드는게 정상이 아닐까?
사기도 아니고 정말 뒤집어지는 날이었다.
그 곳에서의 예약은 불가능하므로 다른 방향으로 항공권 예약을 알아보았다.
예산이 빠듯하니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는 좌석이 있어도 못타고,
저가항공사 홈페이지를 쭉 돌며 가격을 알아보니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표가 티웨이 항공
원하는 날짜, 2인에 세금 포함 117만원 정도 였다.
부산에서 서울가서 인천공항까지 가야하니 왕복 KTX 요금까지 하면 뭐-_- 저가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한 푼이 아쉬운 여행자니까, 부산에서 출발하는 타이항공 요금보다는 그래도 약간 저렴한 티웨이를 선택한다.
타이항공은 내가 선택한 날짜는 만석이기도 했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여행.
불안하기 그지 없지만, 태국에서의 행복한 열흘을 꿈꾸며 다 참기로 한다.
'그래, 이게 다 액땜이지. 너무 순조로우면 오히려 불안해. 지금 미리 삐걱거려줘야 여행 당일은 별 문제가 없는거야. 이게 오히려 좋아.'
라고 자위하면서 꿋꿋하게 여행을 진행한다.
내가 이렇게 여행준비로 발을 동동구르는 사이, 나의 여행 동반자인 동생은 매우 바빴다.
중요한 시험을 치른 직후였고,
아르바이트 하기로 한 게 있어서 그걸 해야 했다.
나와의 여행계획이 아르바이트 약속보다 뒤였는데, 그것 때문에 아르바이트 일정도 약간 어긋나게 되어
알바를 시켜주는 분에게도 미안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동생으로서도 여행다운 외국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내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지라,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여행을 같이 가기로 했다.
그래서 여행 준비는 나 혼자 했다는것이 삽질의 시작이다.
새로 발급받은 신용카드는 pp카드라는 공항 라운지 이용권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일 터였다.
인천공항 라운지는 가족카드 사용자도 들어갈 수 있고, 인천공항에서 밥도 공짜로 먹을 수 있고,
귀국시 공항버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역시나,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게 매우 매력적이고 유용한 카드.
게다가 오랫동안 써온 현대카드는 비면세구역에 라운지가 있기 때문에 티켓팅 전에 쉬기 좋은 장소였다.
그래서 넓은 인천공항에 대해서도 공부하면서 출국에서 귀국까지의 동선도 미리 체크하고 준비했다.
먼저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간 다음,
거기서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간다.
현대카드 라운지에서 좀 쉬다가 티켓팅 한 후,
재빨리 면세구역 들어가서 라운지에서 배 채우고 휴식,
비행기 타고 출국.
귀국시엔 수완나품 공항에서 동생껀 비용 지불하고 같이 라운지 들어가서 샤워하고 배 채우고 쉬다가
인천공항 들어와서는 순두부찌개 사먹고 무료 공항셔틀 이용해서 서울역으로 가는 동선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완벽했는데
준비성, 계획성으로 빠지지 않는 내가 그렇게까지 삽질을 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