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태국 여행의 기억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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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태국 여행의 기억 - 02

구엔 3 755
목에는 자스민 화환을 걸고, 등에는 20리터짜리 당일치기 산행용 배낭을 하나 걸고, 그리고 벌써부터 땀이 젖기 시작하는 회색 프로스펙스 반팔티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방콕으로 향하는 9인승 도요타 흰색 승합차에 몸을 실은 시간이 아마도 태국시간으로 11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승합차 안에서는 신혼여행객을 위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주로 일정에 관한 안내였던것 같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방콕 2박하고 푸켓으로 가는 일정이었던 거 같습니다.  기억나는 내용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셔야 해요. 7시에는 나와 주셔야 합니다. 내일은 관광하시고 모레 푸켓으로 갑니다.  여행지에서는 도난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그리고 꼭 여행중에 도와주는 태국인에게는 팁을 주시고요. "

95년 1월이니까요, 물론 해외여행은 많이 나가던 시절입니다.  1989년 40세 이상에게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고, 기억이 맞을지 모르지만, 92년부터 전체국민을 대상으로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었지요.  YS정부에서는 늘어나는 무역흑자를 주체하지 못해 해외 여행을 장려하는 정책이 펼쳐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대학생이던 저도 비자카드 만들어서 해외 여행을 나오긴 했습니다.

여하튼, 붉은 듯한 가로등 빛을 뚫고 지나던 소형 버스는 어느 호텔 앞에 섯습니다.  늦은시간이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국이라, 그냥 나도 여기서 잘 까 하는 생각에 물어 봤지요. 그 가이드 하시는 분께.

"여긴 하루에 얼마에요?"
"여긴 아주 좋은 호텔이에요. 하루에 170불입니다"

금액은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100불이 넘는 가격이었습니다.  당시 환율이 약 1불에 30揚潔珦릿歐? 약 5천밧 정도 하는 금액이지요.  170불이라, 여행하려고 환전한 돈이 700불이었습니다.  계획은 30일이었지요.  태국만 가는게 아니고 싱가폴 말레이지아 거기다 일본까지 갈 생각이 있었으니까, 하루에 170불짜리 방은 너무나도 높아 보였습니다.

"아, 그런가요"

친절한 가이드였습니다.  신혼여행객을 안내하고 나서 이야기를 조금 하자고 하시더군요.  저를 태워준 고마운 신혼여행객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잘 하세요, 그리고 언제 또 기회가 되면 만나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허 준"입니다.

불행히 이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 생각나네요 싱가폴의 래플즈 시티 앞에서 잃어버린 내 다이어리.. 언제 한 번 뵙고 싶네요.

그 호텔은 ANA호텔이었습니다.  지금은 임페리얼 호텔이라고 하네요, 그때도 임페리얼일지 모르겠습니다, 스쿰빗에 있었고, 저는 호텔 옆에 있는 맥도날드로 들어갔습니다.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청소하고 있더군요.

어색해서 주춤하고 서 있는데, 한 남자 직원, 아르바이트 생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보고 씩 웃더군요.  바로 그게 미소였습니다.  미소의 나라라고 하는 바로 그 미소.

"Can I wait here for somebody?"

아마도 못 알아듣는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냥 자리를 권하더군요.  땀은 흐르고, 후덥지근한 방콕의 밤이었지만, 그래도 낮익은 노란 의자는 반갑더군요. 자리에 앉아서 론리 플래닛을 꺼내 들었습니다. 오늘 가야 할 곳을 정했지요. 카오산 로드.

한참 있다가 가이드 분이 오셨습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지요, 스쿰빗이라고 했고, 싼 숙소는 잘 모르고 카오산 로드로 가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더니, 택시를 타라고 합니다.  고마워서, 그냥 예의상일지 모르지만

"제가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까요?"
"사례는 무슨.. 여행 조심해서 하고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치앙마이에도 우리 사무실이 있어요"

하면서 명함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주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선하네요.

처음 타는 방콕택시였습니다.  향내가 차안에 진하게 배어있고, 기사 옆에는 불상이 모셔 있었습니다.

"카오산 로드"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태국어가 쉴새없이 들려오고, 어두컴컴하게 철시한 상점을 지나 약간 불이 켜진 거리를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차가 서더라고요.  약 62밧인가 72밧이 나왔습니다.  100밧짜리 주고 거슬러 받고 내렸습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하지만 어두컴컴하기만 한 곳에서 방향조차 알지 못하겠습니다.  방금 내린 여행자를 호객하듯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Hello!"라고 부르는데 그냥 못 들은척 밝은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카오산 로드 끝에 있는 경찰서 바로 옆의 길이었습니다. 건너편에 사원이 하나 있고요, 제 목적지는 그 뒤에 있다는 Merry V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massine께서 추천한 곳이라 전화를 했습니다.  Full이랍니다. 졸린 목소리로 짜증나게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비잉 돌았습니다.  시간은 자정이 넘은 시간, 웬 개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타마삿 대학의 건너편쪽까지 걸어왔을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길거리에서 누워 자고 있더군요.  겁도 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숙소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지요.  방 있냐고 물었는데, 제복을 입은 태국인이 요금표를 보여주더군요. 

A/C Room 1200B
FAN          600B

너무 비싸 보였습니다.  아니다, 하루에 100B이면 된다고 들었는데 이게 뭐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도 그렇고 지치더군요. 다시 카오산로드로 돌아왔습니다. 무작정 걷다 보니, 알아듣는 말이 들리더군요.  한국인들이었습니다.  염치 불구하고 말을 붙였지요.

"저기요, 한국분들이시죠?"
"예"
"제가 방금 도착했거든요"

이말만 마쳤는데 자리를 권하더군요.  땀을 뻘뻘 흘리고, 거기에 아까 받은 자스민 화환도 벗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더군요. 그리고 물을 줍디다.

"숙소를 못 잡으셨어요?"
"네"
"아고.. 저런, 저희는 내일 가거든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일단 숙소부터 잡자고 해서 그 중 한 분이 저를 안내했습니다. 여기 저기를 다니다 방이 없다고 해서 카오산 뒷쪽 예전 홍익인간 식당있던곳 근처에 있는 Suny Pub이란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았습니다.  하루에 250B, 3인실.  일단 짐을 내려 놓고, 샤워 하고 내려오니 살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까 그 분들 있던 곳으로 갔지요.

웬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보다 두시간 빨리 출발하는게 있었는데, 그 비행기는 대만을 거쳐 오던 비행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도착한 것이었지요. 그냥 제 방 같이 쓰자고 해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습니다.  주인이 50B더달라고 하더군요. 말없이 주고, 다시 카오산 로드로 돌아와서 수박을 한 줄 사먹었습니다.  여행은 첫날은 겁나게 길었습니다.

(모두 1995년 1월 10일부터 11일 새벽의 일입니다.)

3 Comments
내일 2004.10.15 14:29  
  그 시절이면 저도 가끔 카오산에 갈땐데....    그때 저는 딩댕에 살았구, 만남의 광장 이재현씨가 할때인데 가끔 들렀죠
주니애비 2004.10.15 16:02  
  초행길이시지만 그래도 주눅들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구엔님의 성격이 느껴지는군요.
곰돌이 2004.10.15 16:04  
  10년전의 고생... 지금은 수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가죠^^; 요왕님 정말 좋은분이에요. 만세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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