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여행기] 오만과 깨달음
*실시간여행기 타이틀 걷어야 할 시점이네요. 한국에 돌아왔어요.ㅠㅠ 막판에 교민 친구랑 노느라 여행기 올릴 정신이 없었어요.
*한국에 오니 모든 사물이 디지털방송 티비 화면처럼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느낌입니다. 방콕에서 뿌듯했던 여행기들이 어쩜 한국에 오니 참으로 사소해서 얘기거리 조차 안된다 여겨질까요.
*여행에서 일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도 기존의 세계도 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한 허무함인 걸까요. 한국 돌아와서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 여행지에서 못한 존재앓이를 뒷북 치듯 하는 걸까요.
**
토요일 오후, 수쿰빗에서 카오산을 가는 방법?
택시를 타는 건 너무 쉽고 싱겁다. 그리고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다.
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아는가.
택시에서 정지한 상태로 요금이 계속 올라가는 고문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권해주고 싶다.
BTS를 타고 싸얌까지 나가서 시암파라곤 맞은편 정류장에서 15번 버스를 타는 방법?
그나마 수쿰빗 쪽보다 길이 덜 막히지만 역시나,
길바닥에 환금성은 없지만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 시간을 버릴 수 있다.
아마도 방콕 여행 3년차 이상 되면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며 칭찬해주고 싶다.
10년차쯤 되면 이제 좀 달라야 하지 않는가?
내가 있는 곳은 수쿰빗 프롬퐁역. 일단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운하선착장을 찾아간다.
구글맵을 뒤지니 도저히 걸어갈 거리는 아니다. 택시를 타자.
기사가 가깝다고 미터로 가길 거부하며 50밧이라 한다. 나는 40밧이라 했고 그는 45밧이라 했고 나는 오케이했다.
방콕 택시 기사들은 보통 본인의 안전을 위해 총과 칼을 소지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웬만하면 기사들 말은 들어줘야 한다. 혹은 애초에 타지 말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선착장 이름은 이탈타이.
이 얼마나 생소한 지명인가. 10년차니까 방문할 수 있는 곳 아니겠는가.
하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동네 주변 사진 찍는다며 방정 떨다가
운하버스 타는 타이밍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운하는 선착장에 멈춰 서지 않는다.
왼 손은 그냥 거들 뿐, 이런 느낌으로 배는 가볍게 선착장에 미끄러지듯 착지한 후, 천천히 지나치기 때문에,
떠나가는 배를 잡아 타는 느낌으로 잽싸게 올라타야 한다.
누구처럼 사진 찍네 마네 하면서 여유 부리고 방심했다간,
멈춰 서지 않고 지나가는 운하버스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방콕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기필코 배경이 되어야 하는,
이 운하의 똥물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방콕의 운하물을 매일 마시는 곳일 테고,
만약 천국이 있다면,
방콕의 수박주스를 매일 마시는 곳일 테다.
수상 보트의 정식 명칭은 "클롱 쎈셉 익스프레스 보트".
이름 값 제대로 하는 익스프레스 보트이니 그의 스피드를 얕보면 안 된다.
방콕 여행 5년차쯤 되면 편하게 이용할 만 하다.
이탈타이에서 탄 운하버스의 종점은 빠뚜남이다.
싸얌의 중심가로 통하니 시암파라곤 쪽 볼일이 있다면 이곳에서 내리면 된다.
여기서 카오산에 가기 위해선 판파선착장으로 가는 배로 갈아 타야 한다.
갈아탈 때 역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이렇게 날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현지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다.
순식간에 좋은 자리를 다 내주고,
제일 가장자리 의자에 앉게 된다면,
차양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사수해야 한다.
블라인드처럼 고리를 잡아당기면 정차할 때 내려간 차양이 다시 위로 올라간다.
이 차양이 없다면 운하의 똥물을 얼굴에 뒤집어쓰게 되고,
얼굴은 몇 시간 내로 썩어 문드러질 수도 있다.
운하버스를 타면 차장이 배 난간을 곡예 수준으로 왕복 보행 하면서
귀신처럼 뉴페이스를 알아보고 표를 끊어준다.
요금까지 치렀다면 이젠 마음 졸일 필요 없다.
목적지인 판파선착장이 종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운하버스 선착장은 파아팃로드에 있는 수상버스 선착장과는 다른 곳이다.
혹여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정확히 일러둔다.
방콕 여행 1년차에서 3년차 사이에는 파아팃선착장 수상버스 이용만 잘 해도 기특하다.
오렌지색 보트를 타고 주로 사판탁신 역으로 가는 일이 많을 텐데,
사판탁신 역으로 갈려면 사톤 브릿지 선착장에서 내려야 한다.
또 한 가지, 파아팃선착장에서 오렌지색 버스가 온다고 무작정 타면 안된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도 같은 곳에서 타니 반드시 사판탁신 역 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타길 권한다. 이것은 쎈셉 운하 버스도 마찬가지다.
10년차 여행객은 오렌지색 보트 정도는 눈 감고도 타기 때문에,
사판탁신 역 반대 방향으로 탈려다가 방콕 교민에게 제지당하거나,
BTS역 이름이 사판탁신일 뿐 선착장 이름은 사톤브릿지인데,
것도 모르고 못 내려서 결국 종점까지 갔는데,
알고보니 그 종점이 아시아티크여서 소 뒷발로 쥐 잡는 격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고 분명히 말해둔다.
이름부터 전문적인 쎈셉운하에서 내리면 카오산까지는 그냥 걸어가면 된다.
이것은 오만함이 불러일으킨 재앙이다.
운하버스 선착장에서 카오산은 분명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오후 한 시,
방콕에 거주하는 수십 만 마리의 개들을 거리에 넉아웃시키기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고 무자비한 태양이 있다는 것을,
방콕 10년차 여행객인 나와 7년차 교민인 친구는 간과했다.
첫발을 디뎠을 때, 속으로 아차 싶었다.
문제는 시작이 반이기 때문에 무를 수가 없었다.
그 첫걸음이 두 걸음으로 이어지고, 그 두 걸음이 다시 세 걸음으로 이어지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방콕 햇볕에 무차별 난사당했다.
잔인한 태양 만큼이나 독한 인간들은
좌판 위에 미래의 수 백만 달러 훅은 영 바트의 숫자를 펼쳐놓고
여기에는 없는 인생을 담보하여 푼돈을 갉아먹는 복권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길고 긴 복권상들의 거리를 빠져나와,
에어컨이 나오는 건물들과 세븐일레븐을 여러번 집적대고 나서야,
겨우 카오산로드에 도착했고 둘 다 기진맥진했다.
애초 계획은 쿤댕 끈적이 국수를 먹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좋아서 다시 카오산에서 방람푸로 건너가 곱배기를 나란히 시켜 먹었다.
나는 방콕의 햇빛이 무섭다.
나이가 들수록 까맣게 탄 피부가 제 색깔로 돌아오기가, 불어난 체중이 줄어들기가, 이미 엎지른 실수를 감쪽같이 무마하기가 힘들어진다.
살아온 세월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선 당연한 처사이긴 한다.
열대의 태양을 온몸으로 머금은 그 날,
다시는 오후에 나다니는 일은 만들지 말자고 친구와 단단히 약속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참 신기한 게,
호텔이 어제보다 더 시원하고 쾌적해졌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도 어제보다 더 시원하고 상쾌하다.
샤워 후 마시는 싱하도 어제보다 더 시원하고 짜릿하다.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
아무래도 방콕의 햇빛을 다시 한번 맞으러 가야겠다. 교민 친구는 절대 반대하겠지만.ㅋㅋ
*한국에 오니 모든 사물이 디지털방송 티비 화면처럼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느낌입니다. 방콕에서 뿌듯했던 여행기들이 어쩜 한국에 오니 참으로 사소해서 얘기거리 조차 안된다 여겨질까요.
*여행에서 일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나도 기존의 세계도 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한 허무함인 걸까요. 한국 돌아와서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 여행지에서 못한 존재앓이를 뒷북 치듯 하는 걸까요.
**
토요일 오후, 수쿰빗에서 카오산을 가는 방법?
택시를 타는 건 너무 쉽고 싱겁다. 그리고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짓이다.
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아는가.
택시에서 정지한 상태로 요금이 계속 올라가는 고문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권해주고 싶다.
BTS를 타고 싸얌까지 나가서 시암파라곤 맞은편 정류장에서 15번 버스를 타는 방법?
그나마 수쿰빗 쪽보다 길이 덜 막히지만 역시나,
길바닥에 환금성은 없지만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닌 시간을 버릴 수 있다.
아마도 방콕 여행 3년차 이상 되면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며 칭찬해주고 싶다.
10년차쯤 되면 이제 좀 달라야 하지 않는가?
내가 있는 곳은 수쿰빗 프롬퐁역. 일단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운하선착장을 찾아간다.
구글맵을 뒤지니 도저히 걸어갈 거리는 아니다. 택시를 타자.
기사가 가깝다고 미터로 가길 거부하며 50밧이라 한다. 나는 40밧이라 했고 그는 45밧이라 했고 나는 오케이했다.
방콕 택시 기사들은 보통 본인의 안전을 위해 총과 칼을 소지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웬만하면 기사들 말은 들어줘야 한다. 혹은 애초에 타지 말아야 한다.
가장 가까운 선착장 이름은 이탈타이.
이 얼마나 생소한 지명인가. 10년차니까 방문할 수 있는 곳 아니겠는가.
하지만 평범하디 평범한 동네 주변 사진 찍는다며 방정 떨다가
운하버스 타는 타이밍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운하는 선착장에 멈춰 서지 않는다.
왼 손은 그냥 거들 뿐, 이런 느낌으로 배는 가볍게 선착장에 미끄러지듯 착지한 후, 천천히 지나치기 때문에,
떠나가는 배를 잡아 타는 느낌으로 잽싸게 올라타야 한다.
누구처럼 사진 찍네 마네 하면서 여유 부리고 방심했다간,
멈춰 서지 않고 지나가는 운하버스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방콕의 눈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기필코 배경이 되어야 하는,
이 운하의 똥물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방콕의 운하물을 매일 마시는 곳일 테고,
만약 천국이 있다면,
방콕의 수박주스를 매일 마시는 곳일 테다.
수상 보트의 정식 명칭은 "클롱 쎈셉 익스프레스 보트".
이름 값 제대로 하는 익스프레스 보트이니 그의 스피드를 얕보면 안 된다.
방콕 여행 5년차쯤 되면 편하게 이용할 만 하다.
이탈타이에서 탄 운하버스의 종점은 빠뚜남이다.
싸얌의 중심가로 통하니 시암파라곤 쪽 볼일이 있다면 이곳에서 내리면 된다.
여기서 카오산에 가기 위해선 판파선착장으로 가는 배로 갈아 타야 한다.
갈아탈 때 역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이렇게 날렵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현지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하다.
순식간에 좋은 자리를 다 내주고,
제일 가장자리 의자에 앉게 된다면,
차양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사수해야 한다.
블라인드처럼 고리를 잡아당기면 정차할 때 내려간 차양이 다시 위로 올라간다.
이 차양이 없다면 운하의 똥물을 얼굴에 뒤집어쓰게 되고,
얼굴은 몇 시간 내로 썩어 문드러질 수도 있다.
운하버스를 타면 차장이 배 난간을 곡예 수준으로 왕복 보행 하면서
귀신처럼 뉴페이스를 알아보고 표를 끊어준다.
요금까지 치렀다면 이젠 마음 졸일 필요 없다.
목적지인 판파선착장이 종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운하버스 선착장은 파아팃로드에 있는 수상버스 선착장과는 다른 곳이다.
혹여 착각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정확히 일러둔다.
방콕 여행 1년차에서 3년차 사이에는 파아팃선착장 수상버스 이용만 잘 해도 기특하다.
오렌지색 보트를 타고 주로 사판탁신 역으로 가는 일이 많을 텐데,
사판탁신 역으로 갈려면 사톤 브릿지 선착장에서 내려야 한다.
또 한 가지, 파아팃선착장에서 오렌지색 버스가 온다고 무작정 타면 안된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도 같은 곳에서 타니 반드시 사판탁신 역 쪽으로 가는 게 맞는지 확인하고 타길 권한다. 이것은 쎈셉 운하 버스도 마찬가지다.
10년차 여행객은 오렌지색 보트 정도는 눈 감고도 타기 때문에,
사판탁신 역 반대 방향으로 탈려다가 방콕 교민에게 제지당하거나,
BTS역 이름이 사판탁신일 뿐 선착장 이름은 사톤브릿지인데,
것도 모르고 못 내려서 결국 종점까지 갔는데,
알고보니 그 종점이 아시아티크여서 소 뒷발로 쥐 잡는 격으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은,
없었다고 분명히 말해둔다.
이름부터 전문적인 쎈셉운하에서 내리면 카오산까지는 그냥 걸어가면 된다.
이것은 오만함이 불러일으킨 재앙이다.
운하버스 선착장에서 카오산은 분명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오후 한 시,
방콕에 거주하는 수십 만 마리의 개들을 거리에 넉아웃시키기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고 무자비한 태양이 있다는 것을,
방콕 10년차 여행객인 나와 7년차 교민인 친구는 간과했다.
첫발을 디뎠을 때, 속으로 아차 싶었다.
문제는 시작이 반이기 때문에 무를 수가 없었다.
그 첫걸음이 두 걸음으로 이어지고, 그 두 걸음이 다시 세 걸음으로 이어지는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방콕 햇볕에 무차별 난사당했다.
잔인한 태양 만큼이나 독한 인간들은
좌판 위에 미래의 수 백만 달러 훅은 영 바트의 숫자를 펼쳐놓고
여기에는 없는 인생을 담보하여 푼돈을 갉아먹는 복권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길고 긴 복권상들의 거리를 빠져나와,
에어컨이 나오는 건물들과 세븐일레븐을 여러번 집적대고 나서야,
겨우 카오산로드에 도착했고 둘 다 기진맥진했다.
애초 계획은 쿤댕 끈적이 국수를 먹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좋아서 다시 카오산에서 방람푸로 건너가 곱배기를 나란히 시켜 먹었다.
나는 방콕의 햇빛이 무섭다.
나이가 들수록 까맣게 탄 피부가 제 색깔로 돌아오기가, 불어난 체중이 줄어들기가, 이미 엎지른 실수를 감쪽같이 무마하기가 힘들어진다.
살아온 세월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선 당연한 처사이긴 한다.
열대의 태양을 온몸으로 머금은 그 날,
다시는 오후에 나다니는 일은 만들지 말자고 친구와 단단히 약속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참 신기한 게,
호텔이 어제보다 더 시원하고 쾌적해졌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도 어제보다 더 시원하고 상쾌하다.
샤워 후 마시는 싱하도 어제보다 더 시원하고 짜릿하다.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
아무래도 방콕의 햇빛을 다시 한번 맞으러 가야겠다. 교민 친구는 절대 반대하겠지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