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여행기] 미스테리 호텔-_-
*방콕 날씨, 서서히 우기로 접어들려나 봅니다. 후덥한 게 지대로네요. 아직 본격적으로 비가 오지는 않네요.
**
시암에서 옮긴 숙소는 수쿰빗에 위치한 미스테리 호텔이다.
미스테리 호텔이란,
이름 그대로 호텔 이름은 철저히 숨긴 채,
위치와 금액만 제시하여 '모험'을 즐기는 숙박객들을 꾀는 아시아웹에서 제공하는 호텔 프로모션 중 하나이다. .
주최측은 손해보지 않을 거라며,
소비자들을 살살 부추기지만,
사실상 완전한 손해는 아니지만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하지만 요행을 바라는 속마음 역시 떳떳하지 못해,
어디 크게 하소연도 못하는,
덫에 걸린 느낌으로 이제는 미스테리 빗장이 풀린 호텔로 걸어들어갈 확률도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신중해야 한다.
나는 신중했다.
퇴근 후, 밤마다 탐정으로 분하여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미스테리 호텔이 보여주는 약간의 힌트를 집요하게 구글링해댔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중국 사이트와 트립어드바이저 리뷰 게시판에서 미스테리 호텔의 이름을 거의 다 찾아냈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희한하다.-_-
미스테리 호텔의 이름을 찾는 순간, 나는 급속도로 그 호텔에 흥미를 잃어갔다.
마치 열렬히 짝사랑하던 대상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정나미 떨어져 하는 십대 소녀처럼.
나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같은 신비감을 주는 "미스테리"란 말에 현혹되어 "포시즌스" "노보텔" 같은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결국, 수사를 중단하고 구미가 당기는 호텔 두 개를 - 여전히 미스테리인 - 선택했고, 취소도 환불도 불가능한 불공정 거래에 미래의 삼일 밤을 맡겼다.
내가 선택한 첫번째 미스테리 호텔은 수쿰빗 소이 33에 위치한 로터스 수쿰빗 호텔로 지어진지 무려 20년이나 된 오래된 호텔이다.
나는 나보다 띠동갑 이상 젊은 호텔을 두고 늙수레하고 냄새난다며,
온갖 비방을 해댔다.
내 오래되고 낡은 것에 대한 혐오는 체크인할 때,
직원이 가지고 있는 격식 있는 태도에서 조금 누그러졌다.
더욱이 배낭을 메니 벨보이와 불필요한 동행을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산뜻한 기분으로 룸키를 받아들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요청한 대로 "non smoking room, high floor, away from the lift" 방을 찾아갔다.
엘레베이터에서 내가 배정 받은 18층의 버튼을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똑똑한 한국인은 대신 19층을 눌렀다.
17층에서 내리면 계단을 한층 올라가야 하지만,
19층에서 내리면 계단을 한층 내려오면 되니까,
이 얼마나 스마트한 처세란 말인가.
19층에서 내린 나는 주위를 재빨리 스캔한 후에,
비상구 문을 찾아냈다.
한시라도 빨리 메고 있는 10킬로 배낭을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에,
내 몸은 추호의 굼뜸 없이 내 뇌의 지령대로 신속히 움직이고 있었다.
비상구 문은 아주 두텁고 육중한 철문이었지만,
목표가 분명한 나는 간단히 열고 비상구 계단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나왔고,
뒤로 문은 닫혔다.
그때까지도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감하지 못했다.
다만, 비상구 계단이 오래된 철제 계단이어서 발을 디딜때마다 덜컹거렸고,
비상구 공간 자체도 굉장히 좁았고, 무엇보다 무지하게 더웠다.
한층을 무사히 내려왔다. 벽면 한쪽에 18F 라고 크게 써져 있었다.
19층의 비상구 문과 똑같이 생긴 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열리지 않는다.
순간, 머리 속이 뿌얘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태 파악이 순식간에 되면서 잠시나마 현실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내 룸은 1804호였다.
눈 앞에 있는 이 철문 밖 지척에 내 편안한 객실이 있을 터였다.
굳게 닫힌 문을 몇 번이고 다시 열어보려 시도했다.
가망 없는 희망에 기댄 채.
안전을 보장받아 마땅한 투숙객들은 열 수 있지만,
이미 비상을 시도한 일탈자들에게는 굳게 닫힌,
일방적이고 자기 위주의 고약한 심보를 가진 문이었다.
심지어 무려 18층이었다.
그리고 "high floor"를 요청한 건 바로 나였다.
18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것도 고역이지만,
더 최악은 비상구문으로 내가 기어나오는 것을,
조금 전, 짐짓 어리숙함을 숨기기 위해 가장한 내 오만함을 목격한 체크인 담당 직원이 알게 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비상구 문에 갇힐 게 아니라 쥐구멍에 갇혔어야 했다.
미스테리 호텔의 비상구는, 좁고 답답하고 더웠다.
외부로 통하는 어떤 창문도 없었기에 어둠 속 터널 같은 곳이었다.
그러고보니 어둡지는 않았는데, 창문도 없는 그 공간에서 빛은 어디서 온 걸까.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니 없던 힘이 솟아났다.
십킬로 배낭이 무거운 지도 모르고,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문을 확인사살하는 기분으로 하나씩 열어보았다..
오래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비상구 문은 까맣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내 손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17층 16층 15층 14층 13층...
비상구문이 잠긴 것을 확인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리고 12층. 극적으로 문이 열렸다.
아니, 문이 살짝 덜 닫혀 있었다.
18층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12층에서 구원을 받았다.
할렐루야!~
이 일을 통해 나는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때로는 출구를 찾아 나간 비상구에 갇힐 수도 있다란 것을.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객실은 기대 이상 좋았고,
호텔이 내게 준 시련을 몸소 겪으면서 나는 호텔에 묵는 내내 다소 비굴하게 굴면서 호텔의 눈치를 살폈다.
신고식 제대로 한 셈이다. 젠장.
이제 몇 시간 후면 두번째 미스테리 호텔로 향하게 된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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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암에서 옮긴 숙소는 수쿰빗에 위치한 미스테리 호텔이다.
미스테리 호텔이란,
이름 그대로 호텔 이름은 철저히 숨긴 채,
위치와 금액만 제시하여 '모험'을 즐기는 숙박객들을 꾀는 아시아웹에서 제공하는 호텔 프로모션 중 하나이다. .
주최측은 손해보지 않을 거라며,
소비자들을 살살 부추기지만,
사실상 완전한 손해는 아니지만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하지만 요행을 바라는 속마음 역시 떳떳하지 못해,
어디 크게 하소연도 못하는,
덫에 걸린 느낌으로 이제는 미스테리 빗장이 풀린 호텔로 걸어들어갈 확률도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신중해야 한다.
나는 신중했다.
퇴근 후, 밤마다 탐정으로 분하여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미스테리 호텔이 보여주는 약간의 힌트를 집요하게 구글링해댔다.
쉽지 않았지만 결국 중국 사이트와 트립어드바이저 리뷰 게시판에서 미스테리 호텔의 이름을 거의 다 찾아냈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희한하다.-_-
미스테리 호텔의 이름을 찾는 순간, 나는 급속도로 그 호텔에 흥미를 잃어갔다.
마치 열렬히 짝사랑하던 대상이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정나미 떨어져 하는 십대 소녀처럼.
나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같은 신비감을 주는 "미스테리"란 말에 현혹되어 "포시즌스" "노보텔" 같은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결국, 수사를 중단하고 구미가 당기는 호텔 두 개를 - 여전히 미스테리인 - 선택했고, 취소도 환불도 불가능한 불공정 거래에 미래의 삼일 밤을 맡겼다.
내가 선택한 첫번째 미스테리 호텔은 수쿰빗 소이 33에 위치한 로터스 수쿰빗 호텔로 지어진지 무려 20년이나 된 오래된 호텔이다.
나는 나보다 띠동갑 이상 젊은 호텔을 두고 늙수레하고 냄새난다며,
온갖 비방을 해댔다.
내 오래되고 낡은 것에 대한 혐오는 체크인할 때,
직원이 가지고 있는 격식 있는 태도에서 조금 누그러졌다.
더욱이 배낭을 메니 벨보이와 불필요한 동행을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산뜻한 기분으로 룸키를 받아들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요청한 대로 "non smoking room, high floor, away from the lift" 방을 찾아갔다.
엘레베이터에서 내가 배정 받은 18층의 버튼을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똑똑한 한국인은 대신 19층을 눌렀다.
17층에서 내리면 계단을 한층 올라가야 하지만,
19층에서 내리면 계단을 한층 내려오면 되니까,
이 얼마나 스마트한 처세란 말인가.
19층에서 내린 나는 주위를 재빨리 스캔한 후에,
비상구 문을 찾아냈다.
한시라도 빨리 메고 있는 10킬로 배낭을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에,
내 몸은 추호의 굼뜸 없이 내 뇌의 지령대로 신속히 움직이고 있었다.
비상구 문은 아주 두텁고 육중한 철문이었지만,
목표가 분명한 나는 간단히 열고 비상구 계단 밖으로 나왔다.
나는 나왔고,
뒤로 문은 닫혔다.
그때까지도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감하지 못했다.
다만, 비상구 계단이 오래된 철제 계단이어서 발을 디딜때마다 덜컹거렸고,
비상구 공간 자체도 굉장히 좁았고, 무엇보다 무지하게 더웠다.
한층을 무사히 내려왔다. 벽면 한쪽에 18F 라고 크게 써져 있었다.
19층의 비상구 문과 똑같이 생긴 문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열리지 않는다.
순간, 머리 속이 뿌얘졌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태 파악이 순식간에 되면서 잠시나마 현실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내 룸은 1804호였다.
눈 앞에 있는 이 철문 밖 지척에 내 편안한 객실이 있을 터였다.
굳게 닫힌 문을 몇 번이고 다시 열어보려 시도했다.
가망 없는 희망에 기댄 채.
안전을 보장받아 마땅한 투숙객들은 열 수 있지만,
이미 비상을 시도한 일탈자들에게는 굳게 닫힌,
일방적이고 자기 위주의 고약한 심보를 가진 문이었다.
심지어 무려 18층이었다.
그리고 "high floor"를 요청한 건 바로 나였다.
18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것도 고역이지만,
더 최악은 비상구문으로 내가 기어나오는 것을,
조금 전, 짐짓 어리숙함을 숨기기 위해 가장한 내 오만함을 목격한 체크인 담당 직원이 알게 되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비상구 문에 갇힐 게 아니라 쥐구멍에 갇혔어야 했다.
미스테리 호텔의 비상구는, 좁고 답답하고 더웠다.
외부로 통하는 어떤 창문도 없었기에 어둠 속 터널 같은 곳이었다.
그러고보니 어둡지는 않았는데, 창문도 없는 그 공간에서 빛은 어디서 온 걸까.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니 없던 힘이 솟아났다.
십킬로 배낭이 무거운 지도 모르고,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문을 확인사살하는 기분으로 하나씩 열어보았다..
오래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비상구 문은 까맣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내 손은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17층 16층 15층 14층 13층...
비상구문이 잠긴 것을 확인할 때마다,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리고 12층. 극적으로 문이 열렸다.
아니, 문이 살짝 덜 닫혀 있었다.
18층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12층에서 구원을 받았다.
할렐루야!~
이 일을 통해 나는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때로는 출구를 찾아 나간 비상구에 갇힐 수도 있다란 것을.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객실은 기대 이상 좋았고,
호텔이 내게 준 시련을 몸소 겪으면서 나는 호텔에 묵는 내내 다소 비굴하게 굴면서 호텔의 눈치를 살폈다.
신고식 제대로 한 셈이다. 젠장.
이제 몇 시간 후면 두번째 미스테리 호텔로 향하게 된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