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여행기] 방콕의 연인-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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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여행기] 방콕의 연인-_-

피비 17 8365
방콕은 로맨틱한 장소일까?

빨강 노랑 진분홍 등 형형색색의 택시들이,
궁뎅이로 까만 매연을 뿡뿡 내뿜는 방콕이 과연?

숙소를 시암에서 수쿰빗으로 옮겼다.

종전 숙소의 두배 만한 객실 크기에 먼저 반하고,
낡았지만 최선을 다해 기품을 잃지 않은 객실 분위기에 금방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커튼 활짝 걷고 방콕의 가장 번화하다는 시내 마천루를 감상했다.

방콕은 한창 성장 중인 십대 남학생 같아서 날마다 세포분열하며 몸이 팽창하는 거 같다.
많은 건물들이 공사 중에 있고 도시는 성장통을 온 몸으로 겪고 있다.

여드름 퐁퐁 솟아나고,
넘쳐나는 호르몬에 온갖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채,
도시를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 강으로 밤새 오물을 쏟아내는 이 도시가 과연,

사랑하기에 좋은 곳일까?

이곳에서 만나 오랫동안 연애했다.

태사랑에 가입한지 올해로 십년,

내 인생을 이루는 소소한 사건부터 대형 사고까지,
멋진 배경이 되어준 곳,
깊이 관여하여 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은 곳,
이곳, 방콕에서 나는 한 남자를 생각하고 간섭하고 있다.

그는 엄마가 없다.

그는 어른이기 때문에 엄마의 부재가 땟국물 흐르는 옷차림과 얼굴에서 드러나는 시기는 지났다.

평소에는 그에게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산다.
근데 방콕으로 날아오기 하루 전,
그가 심한 몸살 감기에 걸려 목이 잠기고 콧물이 흐르고 이마에서 열이 났었을 때,
아, 그에게는 엄마가 없구나, 싶었다.

그 사실이 어찌나 아프고 불쌍한지,
비행기표 찢고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이런 말은 다 소용없다.

결국 나는 수쿰빗 소이 33에 있고,
그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사무실에 있다.

사랑은 위대한데,
내가 하는 사랑은 쪼잔하다.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하늘과 땅도 질리게 할 만큼.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사랑해?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굴어도 사랑해?
이래도?
이래도 계속 사랑할 거야?

나 역시도,
사랑받고 싶어서, 받아도 받아도 또 받고 싶어서,
그의 마음을 조회하고, 추궁하고, 고문했다.

근데 이제는 내 사랑을 점검하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 쾌락에 등급이 있듯이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 분야에서만은 나는 1등급이고 싶다. 상위 1%이고 싶다.

근데, 나는 아픈 그를 버리고,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

어제는 프롬퐁역 엠포리움 백화점에 가서,
괜히 사지도 않을 물건들 찔러보면서 촌스럽네, 내 스타일이 아니네, 흠집 내는 소리를 해댔고,
백화점 옆 벤짜시리 공원에 가서는 비둘기 똥이 있을 수 있으니 잔디밭에 앉지는 말자는 둥 몸을 사렸다.

오늘은 카오산에 가서 쿤댕국수 피셋(곱배기) 한 그릇 먹고,
스타벅스에서 국수랑 같이 먹은 더위를 토해내느라 오랫 동안 앉아 있었다.
저녁에는 파아팃선착장에서 오렌지색 수상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사판탁신에서 내려서 셔틀보트를 타도 되는데, 그럴 필요 없이 종점까지 가서 300미터만 걸어도 아시아티크에 도착할 수 있어요.)

더운 나라에서 더 더운 국수를 먹으며 이건 조금 변태같애, 라고 말할 때도,
찜질방 같은 거리를 쏘다니다 세븐일레븐 자동문이 열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내 살에 닿을 때, 그 찰나의 천국을 맛볼 때도,
아시아티크 야시장에서 시암의 노을이 너무 예뻐서 이름지어졌다는 시암색 하늘과 행복감에 들뜬 사람들의 표정, 맛있는 냄새가 나는 각종 음식들을 만났을 때도,

나는 그를 생각했다.
그와 함께였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정말 서로 사랑한다면,
부러 떨어져서 그리워만 할 게 아니라,
함께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면 될 텐데 나는 어쩌자고 아픈 그를 내팽개친 걸까.

무서운 진실을 하나 말하자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



실시간으로 여행기를 올리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군요.ㅋ
아무 일정 없이 왔는데도 자꾸 무슨 일이 터지네요.--;
게다가 로터스 수쿰빗 호텔의 인터넷은 최악.ㅜㅜ 

이 여행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모르겠지만,-_-
(띄엄띄엄 쓰다말다 쓰다말다 해서, 나 역시도 어디로 갈지 궁금하네요.ㅋㅋ)

일단은 낼 다음 호텔로 옮긴 후, 마무리를 지어야 겠습니다.
17 Comments
물고기날다 2013.04.22 12:58  
"피비"라는 이름만 보고 바로 클릭했어요!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피비님 여행기를 읽고
빠이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걸 시작으로 매년 태국을 가게 됐거든요.

반가워요. 글 잘 읽을게요.
피비 2013.04.23 02:44  
헉~ 그러셨군요.ㅋㅋㅋ
빠이는 어린 시절에 빨리 다녀오길 잘한 거 같애요. 이제는 그 산골짜기 갈 수도 없어요.ㅋㅋ

저 역시도 정말 반갑고요!! 언제 방콕에서 한번 뵈면 좋겠네요.ㅋㅋ
별구름달 2013.04.22 16:38  
저도 낼이면 사랑하는 남자를 혼자두고 짧은기간이지만떠나네요.왠지모르게 입가에 웃음끼가 사르르 번진듯한 느낌을 받았어요.나 없는 주말 조신히 있길 바라는데 욕심이겠죠?ㅋㅋ 이제 시간도 많이흘러 믿음이란 고리가 조금씩 단단해지긴하네요..9월엔 같이 여행하기로했으니 답사차원에서 열심히 돌아댕기다 오려구요..
피비 2013.04.23 02:50  
아, 혹시 추석 연휴때?
저도 그때쯤이면 함께 나올 거 같아요.ㅋ 비행기표가 구해진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저는 이제 곧 방콕 뜨는데 낼 오신다니 제 대신 방콕 좀 지켜주세요.ㅋㅋ
별구름달 2013.04.23 10:27  
9/6-9/15 바로추석전일정이구 뱅기표도 예약끝냈어요.피비님도 꼭 9 월엔 같이 여행하기 바래요^^
피비 2013.04.23 16:04  
스케줄 보고 잠깐 신선한 충격을.ㅋㅋㅋ
전 명절때 한국을 피하는 주의라서.
포맨 2013.04.23 15:50  
넨장...
난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인데...
피비 2013.04.23 15:52  
헉. 저도 거기 양지마을에 사는데...?
웰리 2013.04.24 14:33  
요즘 골치아픈 사랑중이라 ... 재미있게 읽었어요~
피비 2013.04.26 17:40  
쓰다만 여행기인데...ㅠㅠ
폼락히히 2013.04.24 21:51  
피비 2013.04.26 17:41  
방콕에 현지 애인이 생기는대로 연락드릴게요.^^
아밧 2013.04.27 02:26  
잘 봤습니다. 여러 편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이제는 돌아다니기 싫어 스스로 두평 감옥을 만든 저로서 밖에 나가지 않고도 먼 여행의 여운을 주신것 감사 드립니다. 삶이 거러하더라 그렇군요 잘 봤습니다.
피비 2013.05.03 03:16  
두평 감옥 안에서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게 갑이겠죠.ㅋ 삶이 거러하더라잖아요.
나마스 2013.06.26 13:18  
댓 글을 잘 달지 않는데 ,글이 좋습니다. 본인에 감성을 읽어 내는 ....
피비 2013.09.25 15:40  
이건 정말 대충 쓴 거라서ㅋ 이번에 꼭 제대로 마무리 할려고욤.ㅋㅋ
너만좋아해 2015.09.01 15:51  
제목보고 클릭한 글인데...
소설 읽는 느낌이네요~ 다 읽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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