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도, 10년전의 첫 해외나들이(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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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도, 10년전의 첫 해외나들이(2/3)

강백도 13 821
#3.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거둬가는 시점에서 시계를 노려보니 그제야 2시간이 지나려 한다.
마땅히 비행기 안에서 할 일도 없고...
새마을호 타고 부산가는 심정으로 음주후 취침 모드를 고수하기로 한 나는, 스튜어디스를 귀찮게 한 댓가로 2잔의 위스키 언더락과 1잔의 맥주를 마셨다.
(심심 영어 한가지... 언더락은 얼음 밑에 술을 깔아서라는 의미인 under rocks가 아니라 on the rocks. 접촉을 나타내는 on에 얼음 덩어리들을 의미하는 the rocks로, 얼음에 술을 섞어 달라는 의미. 그렇다면 표기도 언더락이 아니라 온더락스라 해야 하는건지...)

음주 완료, 취침 시작을 개시하려던 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높은 고도에 있으면서 술을 빨리 먹어서인지 취기가 빨리 왔다는 것.
그래서 평소보다 몇배나 더 담배를 피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절실함은 사람의 판단을 좁게 만듬과 동시에 그것에만 몰두하게 만드는지라...
내 머리속에는 온통 해외출장 갔다온 동료, 신혼여행 갔다온 친구들의 흡연 무용담들만 떠오르게 되었다.

처음 떠오른 얘기는 소위 미친척.
그냥 앉아서 심호흡 한번 한 다음 담배꺼내물고 깊게 그리고 빨리 피는 것.
표정은 태연하게.
당연히 놀라서 스튜어디스 2명 이상은 달려온다고 하는데...
이때, 금연이었냐 몰랐다 하며 얌전히 끄는 것.

내 결론은...
미쳤어도 하기 힘든 일...

다음으로 떠오른 얘기는 화장실에서 센서막고 피우기...
비행기 화장실 상단에 설치된 센서는 화기 감지 센서가 아닌 연기 감지 센서.
즉, 들어오는 공기중에 탄소 성분이 많이 들어있으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고 비상을 거는 센서.
이 센서의 흡입구를 물수건으로 막고 담배를 핀다는 행각...

이때 병행해야 하는 것은...
화장실에 가득차는 담배 연기를 없애기 위해 화장실 버튼을 틈틈이 눌러, 담배 연기를 흡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 화장실은 물의 압력으로 내용물을 내려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내용물을 빨아들이는 흡입식이다.
이 내용물들은 압축되어 용기에 저장되었다가, 장거리 비행의 경우, 분해약과 합쳐져 비행기에서 투하된다.
투하된 압축물은 분해약에 의해 공중분해되고 사라진다는...
오래전, 비행기의 분해약 비율이 잘못되서 공중에서 분해되지 않은 내용물이 지상까지 그대로 떨어져 집의 지붕을 뚫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다.

그외에 잡다한 무용담중에 나는 2번째, 센서막고 담배피기가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그대로 실행했다...-_-

화장실 휴지를 뽑아 물에 적셔 천정에 센서를 막았다.
비행기 화장실 천정은 생각보다 높다.
깍지발에 부들거리며 손을 있는대로 뻗어 센서를 막고, 고개는 최대한 변기쪽으로 꺾어내려 담배 연기를 그쪽에 뿜으며, 다른 손은 틈틈이 변기쪽 버튼을 눌러 연기를 빨아들이게 한다...
상상해보라. 그 모습을...

딱 2모금 피우니까 이게 뭐하는 짓거리냐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거의 요가하는 수준의 폼에... 이렇게 살아야 하냐는 생각...
밖에 누가 지나가는 소리는 거의 10배 이상 크게 들리고...
갑자기 스튜어디스가 문을 두드릴 것 같은 생각...
비상벨 울리며 산소마스크 떨어지고 비행기 안이 아수라장이 되는것 아닌가 하는 공포...

그 모습을 캠코더로 담을 수 있었다면 금연 캠패인에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피워야합니까 라는 멘트와 함께...

이쯤되다보니 담배연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입에 물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래서 세 모금만에 치졸한 행위를 모두 접고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흡연 증거를 인멸하기 시작한 나.

행여 담배연기 밖으로 나가거나 다음 사람이 맡을까봐 1시간 정도 화장실에 갇혀있던 나는 잠시 감옥을 생각했다.
죄와 벌... 그리고 감옥... 하늘을 나는 감옥...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고 이를 시도하는 독자는 없으시길. 금연법은 전세계적으로 그 강도가 높아지는 추세로, 비행기 내에서의 흡연은 벌금형은 물론, 탑승자의 신분이 전산에 기록되어 평생 해당 항공사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는 조처가 치뤄질 수 있음.)

1시간만에 공중 감옥을 탈출한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자중하며 시간이 빨리 가기를 빌며 졸고 있어야만 했다.

(기억에 가장 남는 첫 나들이-결코 여행이었다고 볼 수 없었던- 이후 패키지 여행 3번, 그 다음부터 자유 여행을 죽 다니며 실수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게 되는 것이 줄어들었습니다만. 제게 가장 긴 비행 시간은 유럽까지 22시간 30분 비행이었는데요. 희안한 것은 비행시간이 얼마가 되든, 그 시간의 절반이 지나면 지루해진다는 것이더군요. 1시간 비행은 금방 지나갈 것 같지만 30분 지나면 나머지 30분이 아주 지루하구요. 10시간 비행은 5시간 지나면 나머지 시간이 적당히 지루해지고... 결국 몸으로 느껴지는 지루함은 비슷한 듯 하더군요. 아마도 남은 시간에 대해 포기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느껴지는 지루함도 덜해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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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입성

심심한 나머지, 비행기에 비상이 걸려 산소마스크가 떨어지고 난리가 나면 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끔찍한 상상을 하다보니 어느새 기내 방송이 나온다.
태국이란다.

사람들 나갈때 쓸려나가고 걸을 때 같이 걷다보니 입국장.

잘하는 영어는 아니지만 못 할 것도 없다는 굳은 마음이 든다.
입시를 위한 영어공부, 회사에서 창피당할까봐 해둔 영어들이 그래도 나를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
그런데 영어 한마디 할 수 없다.
아무도 안 물어보니까.
영따다.
(영어로 왕따를 당했다...)

기대 반, 긴장 반이었던 입국심사는 서로 아무말없이 끝났다.

아, 여기가 정녕 방콕이란 말인가...
땅을 다지듯 발로 여러번 서있는 자리를 쿡쿡 밟아본다.
내가 지금 방콕에 서있단 말이지...
그제서야 외국온 기분이 든다.

혼자 미소지으며 땅을 계속 다지듯 밟고 있으려니, 여행사 직원인듯한 사람이 내게 다가올려다 슬~ 비켜간다.
싸이코인줄 알았나보다.

몇분이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가 7월 초.
한국은 서서히 더위가 준비중인 시기이다.
태국 날씨는 언제나 덥다고 하니, 이런 복장이면 되겠지해서 평소입던 청바지에 면티 하나 입고 태국에 온건데 긴팔을 입고 올껄 후회된다.
비행기부터 시작해서 공항까지, 추위에 시달린지라 추위가 지긋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공항을 나서니... 긴 바지가 후회된다.
덥다.
공항을 나서는 것이 마치 한증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느낌이다.
덥고 습도높은 공기가 확 불어온다.

그 상황에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들이 한국형이 아니다...
야자수처럼 생겼다.
재미있다.

공항을 빠져나가 도심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나무에서 택시로 눈이 옮겨진다.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아탔다.

"영어할 줄 아나?"

"@^&@!&@%&!@%#^%"

내려서 뒷차를 탄다.
이렇게 3개를 바꿔타자 그제서야 말이 통한다.

"어. 영어할 줄 안다."

그런데...
할말이 없다.
내 자신이 마치 택시기사들 영어할 줄 아나 물으러 온 사람같다.
어제 태국의 수도가 방콕인 줄 알아낸 자가 어찌 방콕시내에 대해 알겠는가.
어디든 가자고 해야 순서일텐데 마땅한 말이 없다.

영어할 줄 아냐고 묻던 내가 갑자기 말을 안 하자 택시기사, 의아해하는 표정이지만 역시 말이 없다.
실제로는 짧지만 아주 길게 느껴지는, 어색한 시간이 이어진다.

결국 더 답답한 택시기사가 말을 연다.

"어디가는데?"

"방콕간다."

"여기도 방콕이다."

"아, 그러냐..."

(이후 약 5분간 좁은 택시안에서 이루어진 두사람의 대화는 읽는이들이 화날 정도로 지루하고 어벙한 대화라 삭제함)

호텔 이름을 말하고자 했는데 마땅히 아는 호텔도 없다.
그래서 유명 체인계 호텔을 떠올리려 했지만 막상 떠오르지도 않는다.

하이야트 호텔이 문득 생각났지만 일본계라 내키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노보텔(Novotel)이 생각났지만 발음이 러브호텔 같이 들려서 역시 내키지 않는다.

결국 '니맘대로 가세요'로 결정되었다.
택시기사는 오케이를 외치며 출발한다.

그래서 간 곳이 위앙따이 호텔.
짐하나 없고 청바지에 면티만 입고, 공항이 방콕내에 있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인간을 승객으로 태운 운전기사는, 나를 카오산에 내려주면 적당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차내부를 살피니 미터기는 있는데 켜지지도 않을 것처럼 생겼다.
그래서 아마 태국은 미터기의 개념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그 당시 미터로 가는 택시가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차는 열심히 달리고 달려... 나를 회색 큰 건물 앞에 내려주었다.
내려서 보니 회색은 아니고 흰색이다...-_-
아무튼 호텔이라니 반갑고 고마워서 얼마냐 물으니 300밧이란다.
엉? 그 긴 거리를 달리고도 만원이 안 된다고?
500밧을 주니, 잔돈이 100밧 뿐이란다.
그래. 수고했는데 그냥 주자 싶어서 400밧을 줬다.
(다른건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고속도로 같은 길을 열심히 달리다가, 시내 중심부 같은 곳에서 파타백화점을 본 기억은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운전기사는 돈무앙 공항에서 나와, 팔람7을 타고, 파타-센탄 삔까오 사이로 나와, 파타를 지나 다리를 건너서 빠수멘 로드를 돌아 카오산 들어가기 직전, 좌회전해서 위앙따이 호텔에 도착한 듯 하다. 지금 물가로도... 170밧 정도면 왔을 것 같다. 혹시 택시로 카오산에 가실 분이 있다면 공항버스 노선이 아닌, 돈무앙-팔람7-삔까오-카오산 루트를 이용해 보시길. 그게 싼지 안 싼지는 저도 모르지만... 테스트하실 분은... 테스트바랍니다. 참고로 그렇게 가면, 파타 앞까지는 117밧 정도 나오는 듯. 제 생각엔 안 막히고 꽤 좋은 길 같은 생각이 들던데요.)

이렇게 해서 나는 첫 해외, 첫 태국을 카오산 근처에서 보내게 된다.
13 Comments
사랑 2004.10.08 08:48  
  비행기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기...^^
10년 전....저도....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지요...
고딩시절 선생님 몰래 화장실에서 피우던 담배맛
하고 똑 같더군요...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만
제외한다면....^^
글 참 재미있게 잘 쓰시네요...
여행기 계속 올려 주세요...
유머와 위트가 대단하십니다.
2004.10.08 08:50  
  카오산을 그렇게 본 감흥이 어떠셨을런지....
자유 2004.10.08 09:40  
  이렇게 피워야 합니까...
압권이네요!! [[유효]]
요술왕자 2004.10.08 09:44  
  제가 그 루트로 와서 149밧 나왔었습니다. ^^
주니애비 2004.10.08 10:34  
  사무실에서 소리죽여 웃느라고 혼났습니다.
크크~
낙화유수 2004.10.08 14:02  
  너무나도 현장감 있는 생생한 표현력에 마치 제가 현장에 있는듯한 착각에 빠져 듭니다.
글솜씨 대단하십니다........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글 기대합니다.
ハŀㄹБع~☆ 2004.10.08 14:17  
  ㅈ ㅐㅁ ㅣㄴ ㅏㅇ ㅕ~☆
ㄲ ㅑ 르르르르~☆
초코땡 2004.10.08 14:52  
  처음바로 카오산으로 가시다니.. 계획없이 간것 치고는 정말 제대로 가셧네요...
아무호텔이나 -->위왕따이...  하하하...  뒤집어집니다
소자 2004.10.08 15:33  
  영따~ 웃겨 죽습니다...ㅋㅋ
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참고로 전 2년동안 태사랑 눈팅후에나 떠났지요...^^
봄길 2004.10.09 12:21  
  두번 읽고 나니 이거 실제가 아닌가 햇갈리네. 어이 미러클! 정말 미러클한 여행기 잘 쓰네여. 매트릭스 이야기가 분명한데...
이건 매트릭스야, 매트릭스! 사실이 아니라고...
근데 자꾸 정말 같애여 ㅋㅋㅋ
croco 2004.10.09 15:58  
  강백도님! 대단한분이 나타나신것 같아요.
봄길 2004.10.09 16:19  
  음, 얼마나 갈지 몰라도 앞으로 쏠림현상이 심화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태사랑... 프로만 글을 쓰는 공간이 될까 좀 걱정이 되구먼요.
우리 편식하지 맙시다. 근디 내가 편식하게 될 것같애 ㅠㅠ
강백도 2004.10.09 23:01  
  리플이 늦었습니다.
여행기 다 올리고 리플을 추가할려고 하다보니까...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는 저도 의문)

먼저 읽어주시고, 리플까지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요왕님은 그 길로 와 보셨군요. 149밧이라...

가끔 태사랑보면 110밧에도 공항에서 카오산까지 왔다는 것이 보이던데...
그럼 더 빠른 길이 있나보죠?
음... 전 그 길이 제일 나은건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낙화유수님, 리플 감사합니다.
글이란 것은 쓰는 사람마다 자기 색깔이 있고 스타일이 있는 것인데,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

말씀들으니 용기가 생기는군요.
용기가 생기면 안 되는데 말이죠...
제 글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용기를 어떻게든 줄여야 합니다...쩝...

제 친구들은 제 성격을 잘 알기에
이런 무모함을 잘 이해하는데...

참으로 평범하지 못한 이런 성격은 고치려해도 스타일인지... 잘 안 되네요.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구요...
원래는 과묵하고, 행동보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언제 필이 딱 오면, 당장 그것을 안 하면 못 견딜 정도로 돌변하는군요.
처음사는 인생이라 서툴다라고 하기엔...
저역시 고치고 싶지만 잘 안 되군요.

전에는 한 디스코텍 같은데서, 맥주를 마시는데,
딱 괜찮은 음악이 들리더군요.
그럼 전 그 음악이 뭔지 알아내서 CD를 사서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DJ 박스로 뛰어 올라갔죠.
거기 5명쯤 있었는데 모두 토끼눈으로 저를...
그때까지 몰랐던 맥주병 들고 있는 것 조용히 내려놓고...

이 음악이 뭐냐 물으니...
DJ 왈, 음악 끝날때까지 제발 기다리라더군요.

음악 끝나니 CD꺼내 보여주더군요.

결국...
타타양의 I believe로 밝혀졌습니다만...

역시나 그 다음날 바로 판팁에서 구해 들으니...
식상해졌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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