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도, 10년전의 첫 해외나들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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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도, 10년전의 첫 해외나들이(1/3)

강백도 9 770
이 글은 대략 10년전... 저의 첫 해외나들이이자 첫 태국 방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 통신사에 '엽기적인 그녀'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서 네트즌 사이에 유명해졌고,

영화로도 선보이면서 더욱 대중화된 "엽기"라는 단어를 보면,

제가 살아온 삶에서 엽기적인 부분들이 상당히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겁게 돌아가는 사회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꺼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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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말에 방콕...

당시 나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업체에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국가의 봉(?)이자, 가장 불쌍한 직업이 직장인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고 사는 직군.

그들에게 유일한 낙은... 휴일이다.

월요일엔 젖은 미역처럼 늘어진 그들... 그러나 수요일이 지나며 눈에 빛이 나기 시작, 금요일 퇴근 시간이 임박하면 그들의 눈에서 나오는 광채는 가히 100럭스(lux)를 넘는다.

"넌 주말에 뭐해?"

"나? 글쎄... 계획없어. 넌?"

"난 와이프랑 서울 근교좀 다녀올려구..."

그래? 잘 났다.  C뱅아...

알아주는 이도 없으면서 혼자 싱글을 고수하던 나는 주말이 되면 오히려 더 고독을 느꼈다. 6개월전부터 토요일 격주휴뮤제가 되면서 그런 고독은 더 증폭되었다.

혼자 영화를 본다?
친구들하고 술 한잔?

돌아오는 주말마다 해오던 레파토리인 만큼 감흥이 전혀 없다.

그냥 방에 콕 쳐박혀 있을까나...

주말에 뭐했어?
어, 방콕...
와, 방콕에 갔었어?
아니,  방에 콕 쳐박혀있었다구...

이런 것도 유머로 쳐주던 시절이 있었다.
난 이런 유머를 떠올리며 그저 방에 박혀있어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때 엽기발랄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주말에 뭐했어?
어, 방콕...
그럼 그렇지. 방에 콕 쳐박혀있었다구?
아니, 진짜 방콕 갔다왔어...

오... 왠지 멋지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바보수준이었다)

난 전공이 아니면 담쌓고 지내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역사, 지리, 경제, 정치등 나이에 비해 아주 뒤떨어지는 지식을 소유했다.
그런 내게 방콕이란 곳은 나라 이름인지 도시명인지도 구분이 안 갔다...

먼저 모니터에 인터넷을 펼치고 방콕이 어딘가를 찾아보았다.
아... 태국의 수도가 방콕이었다...

태국? 많이 듣긴 들어본거 같았다...
주변국가를 살펴본다.

싱가폴? 알지.
말레이지아? 들어는 봤지.
버마? 윽, 아웅산 사태...
베트남? 알지. 베트남 전쟁...
라오스? 몰라.
캄보디아? 모르지...

대충 주변국을 보니 태국은 미개한 나라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이 미개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잠시 갈등하던 나는 이따금 사용하는 의사결정 방식인...
동전 던지기로 판가름을 내기로 했다.

인생을 동전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동전을 던질 것인가의 결정, 동전의 앞뒷면에 따른 결정, 동전을 던지고 잡고 보는 행위 모두 내가 한다. 즉, 나의 의지 99%에, 동전이 1%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괘변이다)

당시 500원 짜리를 주로 애용하던 나는 역시나 500원 동전을 튕겨올리고 다시 손등으로 받았다. 500이 나오면 안 가고, 학이 나오면 학처럼 날아가리라...

학이다.
(만약 500이 나왔다면 이 글을 올렸을리가 없다...)

그럼... 뭐...

가자...

난 그길로 회사를 잠시 나와 여행사로 갔다.
(그 당시 하던 일이, 바쁠때는 밤새기를 밥먹듯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참으로 널널한... 그런 상태였다.
회사가 여의도에 있어서 주변에 여행사도 풍부하던 때...)

여행사 들어서니 여직원이 눈을 들어 날 본다.
앉으라 말하기도 전에 의자를 당겨 앉은 나는,

"방콕 한명이요." 를 당당히 말했다.

"언제 가시는데요?"

"오늘이요."

잠시 언행을 멈춘 -마치 정지한 듯한- 여직원은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말을 다시 이었다.

"오늘은 불가능한데요..."

1년에 한두번은 해외출장 기회가 있을법한 회사에 다녔지만 해외출장은 본의아니게 교묘히 피해다닌 셈이라 해외경험이 전혀없던 나로써는, 여권/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빼면 해외도 지방에 고속버스 타고가듯 갈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럼 내일은요?"

"잠시만요..."

키보드를 두드리던 여직원, 원하는 시간대를 묻는다.

"아무때나요"

"... 오전 괜찮으세요?"

"예. 그거 주세요."

"리턴은요?"

"월요일 출근해야 하니까 그거 늦지 않게 해주세요."

"그럼 월요일 새벽 비행기..."

그 여직원의 눈빛은 지금도 생생하다... 난 당시 그것을 몰랐지만 그녀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이 인간은 대체 뭘까...

미국왕복이 비성수기에 120만원 정도 하는 것으로 알고있던 나는 비행기 값이 싸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예약티켓을 받아든 나는 다시 회사로 갔다가 퇴근시간에 대충 맞춰 나와,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서 동남아 여행책자를 집어든 나는 몇장 뒤지며 태국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뭐 별로 볼것도 없네.'

5분만에 책을 덮은 나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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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국으로. 방콕으로.

다음 날...

청바지에 면티를 입은 나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옷? 뭐 이틀정도 있을건데 필요 있을려나.
치약,칫솔은 사서쓰고 버리면 되고...
세면도구나 뭐 수건은 호텔가면 주겠고...

그래서 나는 정말 100% 몸만 들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나는 회사에 잠시 들렸다가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당시는 김포공항에서 국제선도 출발했다.)

회사가 여의도라서 김포까지 가까운 셈이었다. 도착하니 보딩 1시간 전. 차가 막힐 줄 알았더니 별로 안 막혀서 너무 일찍 왔다고 투덜댔다.

'한 30분전에 도착하면 좋았는데 너무 일찍 왔네. 기다리는 동안 뭐하나...'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내가 탈 비행기나 미리 볼 생각으로 출국장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직원이 나를 잡는다. 보딩 티켓을 받으라는 것.

표를 보여주니 그건 보딩 티켓이 아니란다. 그제서야 나는 극장 예매권을 실제 입장권과 바꿔서 들어가는 것처럼, 비행기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보딩티켓을 받고 들어가다가 다시 한번 제지당한다. 비즈니스 목적이 아니라면 공항 이용권을 사야 한다는 것.
(그 당시는 그랬다)

출입국 신고서까지 도합 3번을 입구에서 제지당한 뒤 그제서야 입장하는데 성공. 이쯤되니 점점 가기가 싫어진다.

'그냥 가지 말까?'

'아냐... 처음이라는 의미는 중요해. 지금 안 하면 언젠가 미래에 다시 처음을 겪게 되자나. 지금 겪자. 그래야 앞으로는 2번째가 되는거야...'

'외국은 원래 없는데 매스컴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척 하는건지도 몰라. 이번에 내 눈으로 직접 외국이 있는건지 확인해봐야 돼.'

등의 말 -때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자신을 위로하며 계속 밀어붙이던 나...

비행기 탑승까지 성공하여 자리에 앉으니, 앉은지 5분도 안 되서 비행기가 슬슬 움직인다.
(아마 상당히 늦게 탑승한 모양이다. 공항내 방송은 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이 나왔어도 인식을 못 했겠지만.)

좀 지나니 스튜어디스들이 음료수를 돌린다. 다시 좀 지나 기내식을...

기내식을 받아들지만 별로 감흥이 없다. 그냥 비행기 안에서 밥주는 거 아냐...

여행준비를 하며 상상만으로 들떠있어야 할 시기, 비행기 출발시의 감흥, 외국에 첫발을 딛는다는 흥분조차 없이...난 그저 그렇게 첫 해외나들이에 몸을 맡겼다.
9 Comments
사랑 2004.10.08 08:53  
  외국은 원래 없는데 매스컴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척 하는 것인지도 몰라. 이번에 내 눈으로 직접 외국이
있는건지 확인해봐야 돼....ㅋㅋㅋㅋ
신기한 발상....^^
자유 2004.10.08 09:36  
  자유보다 더 무대뽀로 다녀오셨네요. [[원츄]]
2004.10.08 11:50  
  대구여자가 이쁘다 안 이쁘다 술먹으면서 싸우다 바로 대구로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낙화유수 2004.10.08 14:00  
  여행기 오래간만에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생생한 표현력에 힘 입은 현장감 있는 진행에 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며 저 역시 처음 해외여행을 방콕으로 정하고 출국하던 일이 어제일 같이 아스라이 스쳐갑니다.
ㅋㅋ.....그래도 강백도님 같이 그렇게 어리숙하게는 출국을 하지 않았는데 하여간 무척 재미있습니다.
ハŀㄹБع~☆ 2004.10.08 14:12  
  이야~ 정말.. 기대되는 여행기입니다..
읽으면서 무진장 웃었구요...^0^
그리고... 맆중에 명님이 말씀하신...
대구여자... 이쁘더이다~ 내참...
세상태어나서 대구땅 한번 밟고나서는...
고개들고 나돌아댕기질 못한다는...

결론 : 대구여자가 엄청 이쁘고~ 강백도님도 멋지다~☆
소자 2004.10.08 14:27  
  넘 웃겨여~ 담편 기대~
초코땡 2004.10.08 14:35  
  오  낙화유수님 글 기다리기  힘들었는데... 또다른...잼난 여행기가...  그런데... 진짜  지방가듯이 외국을 나가셧네요... ㅎㅎ... 
그렇지뭐 2004.10.09 03:59  
  엽기예요.
그냥 어떻게 떠났을까?
너무 무모해요....
봄길 2004.10.09 12:06  
  아니, 아니, 사실은 강백도님은 없는거야. 이 스토리는 매트릭스라고... 님들, 정신차려야해여. 지금 님들 뇌 시상하부에 쏟아 꽂히는 개념들 모두 매트릭스라고... 없는거야. 모두 시온을 바라봐여.
어이 미러클 순진한 사람들에게 환상 까바르지 말고... 어디 있는거야. 애잉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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