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크라비-시밀란 일가족 여행기(11) - 크라비 꼬 끌랑(끌랑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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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크라비-시밀란 일가족 여행기(11) - 크라비 꼬 끌랑(끌랑섬)

jyn0726 0 2659
크라비에서의 네 번째 아침. 오늘은 날이 화창하다. 내릴 비가 어제 다 내린 모양이다.
안 되는데....오늘 많이 걷는 날인데....뭐 이래...빨갛게 익게 생겼어....
 
오늘의 목적지는 꼬 끌랑, 즉 끌랑섬이다. 강변 야시장 있는 곳에서 쭉 바다쪽으로 내려가면 타라공원(타라파크)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섬이다. 타라파크 선착장에 가면 건너편으로 왔다갔다하는 보트가 있다. 마치 방콕 짜오프라야 강에서 배들이 왔다갔다 하며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처럼 말이다. 가격은 인당 10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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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곳을 알게 된 계기는....태사랑 호텔정보코너에 필리핀님이 쓰신 ‘아일랜다 리조트’에 관한 소개글이 있는데 참 맘에 들었다. 이 리조트가 바로 꼬 끌랑에 있는 리조트이다. 그런데 리조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리조트도 리조트지만 꼬 끌랑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작고 조용하고 깨끗한, 관광지 아닌 태국 시골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섬이란다.
 
이미 크라비 숙소 예약은 끝내놓은 상태고, 또 우리가 묵어야 할 시점이 크리스마스가 끼어있는 때라 리조트 가격도 만만치가 않아서 그냥 숙박은 하지 않고 리조트를 방문하여 그곳 식당에서 식사하는 걸로 계획을 잡았다. 가능하면 선착장에 있다는 대여점이나 아일랜다 리조트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도 한바퀴 돌아보고...수영복 가지고 가서 괜찮은 비치가 있으면 해수욕도 하고....뭐, 이런 심플한 계획.
 
일단 결과보고를 하자면...
1. 꼬 끌랑 선착장에는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없다.
2. 리조트가 생각보다 멀다. 걸어서 1시간, 아무리 해도 1시간 반 정도면 리조트에 도착할 걸로 생각했는데 2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선착장과 리조트가 거의 섬의 끝과 끝이다. 중간쯤 있는 것이 아니라...)
덕분에 섬 구경은 제대로 했다.
3. 비치가 있지만 뻘로 된 비치이다. 풍광은 좋다. 하지만 해수욕은 할 수 없다.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리조트 손님들도 해수욕하려면 라일레이나 프라낭으로 나갔다 온단다.
4. 후회막심이냐고?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크라비에서 보낸 날들 중에 가장 괜찮은 하루였다. 남편과 딸은? ...뭐, 그들도 그정도는 해줘야지.... 그들을 위해 나도 산소통 메고 시퍼런 바다속으로 들어가 주었으니까...
 
먼저 타라파크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 꼬 끌랑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택시 타라고 부르는 사람도 어디 가냐고 묻는 사람도.... 그냥 조용하다. 자전거가 있으면 빌리고 싶었는데(우리 숙소 아주머니가 자전거 빌리는 곳이 선착장 앞에 있을 거라고 했다.), 뚝뚝과 오토바이만 몇 대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사람들은 없는 채로.
 
우리 가족이 걷는 것엔 별 거부감이 없는지라 소풍나온 듯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방이 초록색이고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딱 뚝뚝 한 대가 지나갈 만큼의 시골길. 마치 전원일기에 나오는 양촌리 어드메쯤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그렇지...학생은 학교 갔고, 직장인은 직장 갔고, 농부들은 밭에 있고, 아줌마와 애기들은 집에 있겠지.....가끔씩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휘~익 지나간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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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내부로 점점 들어가니 논이 보인다. 동네도 보인다. 동네라야 시골집 몇 채가 나란히 서 있는 정도다. 사방에 고양이들이 돌아다녀 우리 딸아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때부터 계속 고양이만 찍는다. 자는 고양이, 노는 고양이, 똥사는 고양이.....오리가족도 논둑을 줄지어 뒤뚱뒤뚱 걸어가고, 물소가 풀밭 한가운데서 풀을 뜯는다. 집들 마당마다 병아리들을 이끌고 어미닭이 모이를 찾는다. 정말 언제적 풍경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이런 풍경들을 보았는지...기억도 잘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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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당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시다. 가끔 젊은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기도 한다. 눈이 마주치는 대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싸왓디 카~” 눈웃음만 보내주시는 분도 있고, “싸왓디 카~”하면서 답해주시는 분도 있다. 어떤 아저씨는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를 두 번이나 만났다. 볼일보고 돌아가시는 길인가 보다. 우리 남편 한마디 한다.
“오늘 이 동네 사람들 다 만나고 가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나가자 딸이 지치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 힘들게 걸어가야 하느냐고 입이 댓발 나오기 시작하는 딸을 어르고 달래고...
그런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저만치에서 오토바이가 한 대 오는데 우리 가족이 매일 아침식사를 하는 딤섬집 주인아저씨와 그분의 큰딸이다. 활짝 웃으시며 여긴 왠일이냐고 하신다. 그냥 둘러보러 왔다고, 댁이 여기시냐고 하니 아니시란다. 아마 일 때문에 오신 것 같다. 마을 길 걷다가 아는 마을 어른 뵌 느낌이다. 외국의 여행지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다시 걷는다. 학교도 지나고 작은 모스크도 지나고...동네 총각 중 하나가 터벅터벅 걷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어디까지 가냐고 묻더니 태워다 주겠다고도 했다. 그때 난 혼자 걷고 있었고, 남편과 딸아이는 보이지도 않았던 터라 내가 혼자 온 여행자인줄 알았나 보다.
이렇게 걷기를 2시간 반 만에 드디어 목적지인 아일랜다 리조트에 도착했다. 시간당 4킬로 걷는다 치고 천천히 걸은 것을 감안해도 8킬로는 족히 걸은 듯싶다.
 
아일랜다 리조트는 소규모의 방갈로들로 이루어진 작고 아담한 리조트로 친환경리조트를 표방한단다. 수영장도, 리셉션 로비도, 화장실도 작고 소박하지만 세련됐다. 손님들은 모두 투어 나갔는지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마루바닥으로 된 식당에 앉아 우선 시원한 콜라를 들이키고 음식을 시켰다. 음식은 맛있고, 깔끔했다. 좋은 재료를 썼고, 외국손님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특유의 향도 나지 않는다. 가격도 나쁘지 않은 편으로 메뉴당 100-150밧 정도였다고 기억한다. 물론 더 비싼 것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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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는 손님은 우리 가족까지 3팀. 두 팀은 식사 후에 곧 자리를 떴고, 식당 겸 휴게공간으로 만들어진 널찍한 마루공간은 우리 가족 차지가 되었다.
널찍한 마루에 커다란 TV가 있고 푹신하고 커다란 쿠션들이 놓여있다. 지붕이 높고 벽이 없는 원두막 같은 구조여서 바람이 솔솔 불고 하나도 덥지가 않다. 딸은 마침 TV에서 나오는 만화영화(원더우먼)를 보고 남편은 커피를 시켜놓고 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고, 난 누워서 자는 듯, 마는 듯...잘 손질된 아름다운 정원을 내다보다가 한두 시간 조이 졸았다. 바로 이 맛이야....
 
4시가 되어 가려고 일어났는데 4시반부터 6시반까지 해피아워 행사로 바에서 칵테일 1+1을 한다고 써있는 것을 보았다. 바텐더에게 어떻게 안될까요? 눈짓만 했는데도 귀신같이 알아듣고 매니저에게 가서 뭐라뭐라 하더니 해피아워 적용해 준단다. 난 칵테일 거의 처음 마셔보는 건데...이름도 기억 안 난다. 순하고 색깔 빨간 걸로 남편이 시켜줬다. 체리맛 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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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마신 후 직원에게 부탁해 뚝뚝 택시를 불러서 두어 시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던 그 길을 쌩쌩 달려 20여분 만에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전에 그렇게 땀흘려 걷지 않았던들 200밧짜리 뚝뚝택시의 고마움을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주인아주머니께 리조트까지 걸어갔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신다. 괜찮다고, 나는 행복했다고, 그런데 남편과 딸아이는 UNHAPPY했다고 말했더니 박장대소하신다.
이날 고생한 우리 딸아이에게 저녁으로 여행나와서는 생전 안 사주던 피자를 사 주었다.
그럼~ 먹을 만한 자격이 있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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