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 팬룸이 좋은 몇 가지 이유/방콕으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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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9: 팬룸이 좋은 몇 가지 이유/방콕으로 오다

Cal 6 3101
지금 이 일기는 기차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팬룸의 여행은 그 자체가 좋은 삼림욕입니다.

창문을 내내 열어놓고 달리기 때문에, 공기가 굉장히 좋습니다.

팬룸도 그다지 무서워할 것은 아닌 듯합니다.
치앙마이로 올 때의 에어컨룸은 별들과 나무들이 창문을 통해 보였다면
이제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곳에 있습니다.
팬룸은 침대의 폭이 에어컨 룸보다 좁은 대신에 좀 더 길이가 길고 천장이 높은 것 같습니다.

화장실도 태국식 수세식인데, 써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에어컨룸을 타고 올 때에는, 울창한 숲 속을 지날 때에 그 숲의 공기가 정말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팬룸은, 그 삼림을 통과하고 나니 온 몸에 나무의 진이 달라붙은 듯이 정말 상쾌한 기분이 되더군요.
피부도 좋아진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기차를 예약할 상황이 된다면, 애써서 일부러 팬룸을 예약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에어컨룸보다는 여러가지 시설이 좀 열악합니다.  전기 콘센트도 없고, 컵받침도 없고, 시설이 전체적으로 낡았습니다)

만약 팬룸밖에 남아 있지 않아 팬룸을 예약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 또한 그리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신에 먹을 것은, 벌레가 꼬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마른 것, 잘 포장된 것으로 준비하는 것과
벅 스프레이를 잘 뿌리고 탑승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만 신경쓰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팬룸이든 에어컨룸이든 물티슈는 필수품인 것 같습니다.

 

기차 안에서, 솜펫 시장에서 잔뜩 사 온 망고스틴 먹기를 하였는데, 원래 11월말 정도 되면 망고스틴이 있을 것을, 아니 혹시 있더라도 품질이 좋을 것을 전혀 기대를 안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열어 보는 망고스틴마다 새하얀 속살을 자랑하고 정말 맛이 좋습니다.

역마다 특이한 모습을 자랑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는데

어떤 역 근처에는 큰 파키스탄 모스크가,

어떤 역에는 원숭이떼가,

어떤 역 근처의 산에는 큰 부처님의 머리가 있었습니다.

각각 어떤 역이었는지 다 알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차 여행 자체에는 이렇게 만족을 하면서 오고 있었지만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은 잘 만나는 편에 참 감사해야 할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백인들이 태국에 와서 태국을 이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실 제 옆자리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좀 보았습니다.

태국에서 여기저기 많이 가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았지만

[We were the only white people there]라는 말을 걸핏하면 그렇게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이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올 때에는 주변이 모두 다 연세 지긋하고 점잖으신 태국인들뿐이었는데

그 때가 참 좋았던 것이었더군요.

외국인이라면 이렇게 저렴하고 다양하게 여러 가지 경험을 주는 나라에 감사할 것이지

저렇게 자신이 뭐라도 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열차에 한국인은 오직 저였던 것 같습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어디선가 바람같이 나타나서 도와 주었던 친절한 중국 청년이 하나 있기는 했습니다.

(이 청년은 제가 중국인이 아니라고 하니 좀 실망을 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특별히 그 사람들 때문에 여행의 기분을 망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익히 알고 있었던 스페인 남자들의 포용성에는 정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늦게까지 술타령을 하고, 또 근거도 없는 허풍을 떨어대는 사람을 받아 주기는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 스페인 청년 파울은 한 번도 찡그리는 일 없이 그 사람을 다 받아 주더군요.

그리고 저 또한 좀 미안했던 것이, 후알람퐁역에 도착했을 때에 결과적으로 그 호주 사람들의 택시를 제가 빼앗아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의도했던 일이 아니라, 저도 아직까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열차 도착 예정 시간은 8시경이었는데

후알람퐁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이던가 했습니다.

저는 역 앞에서 참 친절한 아저씨의 택시를 타고, 방콕의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 날 저녁의 일인데,

저녁 때에 왕궁과 시내의 야경 사진을 찍고 국방부 옆길로 똑바로 걸어오면

왓 수탓을 만나고, 또 팁사마이가 나오더군요.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길이라서 참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팁사마이에 갈 때마다 궁극의 팟타이를 먹는데, 이번에는 가격이 무려 200바트였습니다.

그래도 역시 포기할 수 없는 맛입니다.

(이 이후의 방콕 일기는 꼭 필요한 부분만 올리겠습니다)

 

첨부한 사진은, 기차 안에서 찍은 태국의 아침 모습입니다.

6 Comments
동쪽마녀 2012.11.29 23:46  
기차 안에서 찍은 아침 정경이로군요.
Cal님께서 이 풍경을 어떤 마음으로 보셨을지 느껴집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좋아하는 바로 그 태국의 아침 모습이네요.

제가 태국에서 참 싫어하는 것이,
그래서 외국인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이유가 Cal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조용한 여행자의 품격이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참 얼굴 찌푸리는 일들이 꽤 많은데,
그것을 다 받아주었다는 스페인 청년은 참으로 대인배로군요.
(저는 스페인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스페인 사람들이 어떤지 모릅니다.^^) 
다음 번엔 꼭 기차를 타고 치앙마이까지 가봐야겠다는 굳을 결심을 하는
동쪽마녀입니다!
Cal 2012.11.29 23:57  
제게는 태국이 너무나 단정하고 품위있고 또 친절한 나라이고
제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랑하고 또 그 나라를 위해서 진심으로 기도하게 되는 나라입니다.
제게 여러가지를 보여 주고 베풀어 준 만큼
나중에 저도 이 나라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 나라이고요.
우리나라 안에서 행패를 부리는 외국인을 보는 느낌이나
태국에서 그러는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나,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스페인 사람들은 굉장히 상냥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기억나는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면
예전에 2002년 월드컵 때, 주장 이에로의 아버지에게 아들 자랑을 좀 해 달라고 기자가 말했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 아버지, 정색하고 하는 말이
[스페인에는 우리 아들 말고도 너무나 훌륭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되었을까 하는 어떤 스페인 꼬마에게 한국과의 대전 결과를 예상해 달랬더니 하는 말이
[한국이 무척 잘 하는 팀이라고 들었어요.  저는 스페인이 이기기를 바라지만요]
온 국민이 좀 이런 식인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 Inquisition같은 것이 있었다니, 참 재미있죠?
동쪽마녀 2012.11.30 00:29  
Cal님은 마음이 참 고우시고 또 다정한 분이십니다.
저는 이 번 여름 치앙마이에 한 달 넘게 있으면서
솔직히 치앙마이가 해가 다르게 자꾸 되바라지는 것 같아 슬퍼하기도 하고
또 실망하기도 하고 그러고 돌아왔거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아닌 곳에서 크게 낯설어하지도 않고
한 달 이상을 살면서도 별 불편 못 느끼고 돌아올 타지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닌데,
저는 그런 감사함을 쉽게 저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반성하고 있어요.
Cal님과 치앙마이에서 만나
센탄 지하 푸드코트에서 까다롭게 주스를 주문하면서
서로 얼굴 보며 즐겁게 웃을 날이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오랜만에 Cal님 여행기를 읽어서 그런지 참 포근하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Cal 2012.12.01 23:08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이야기를 와스디님께서 미리 해 주셔서 감사해요!
훗날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의 태국 방문 일정이 겹치게 된다면
꼭 와스디님과 도로시님을 뵙고 싶습니다.

마음 곱고 다정한 사람이라면 와스디님이 그러한 분이셔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기에는 너무 마음이 매몰찬 사람입니다.
필리핀 2012.12.01 10:52  
팬룸 기차가 안 좋은 결정직인 이유는...

태국 기차의 화장실은...
승객이 볼일 본 오물을 그대로 철로에 토해놓는데...
그게 바람에 날려 객실로 다 들어온다는 거죠...

밤새 그 오물 섞인 바람을 맞다 보면
아침에는 얼굴이 끈적끈적하고 냄새도 오묘하다는... ^^;;;
Cal 2012.12.01 23:09  
어, 정말인가요?  저는 왜 그걸 못 느꼈나 모르겠어요.
가끔 승객이 나가서 피는 담배 냄새는 질색이었기 때문에
그런 냄새가 났다면 몰랐을 리가 없는데.......... 
팬룸을 너무 좋아만 할 것이 아닌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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