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항동의 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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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항동의 베란다

Cal 9 2975
기차에 누워서 밤의 하늘을 보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이 기차가 마치 은하철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침에 동이 틀 무렵에는 기차가 국립공원으로 추정되는 울창한 삼림을 통과했는데,
이 산을 경계로 북부 지방 특유의 멋진 정취가 시작되고 있어서
이 곳을 이렇게 밝을 때에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따름이었습니다.
기차는 가끔 작은 역들에 정차했는데
개와 닭이 철로에서 뛰놀고, 지역 주민이 선로에 아주 가깝게 머물고 있는 그런 곳들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밤에 내내 경치를 보느라 자다 깨다 한 것도 있지만
제게는 침대열차라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저는 침대를 좌석으로 다시 교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 그만 진짜로 침대 위에서 다시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고
드디어 커튼 안으로 손을 넣으셔서 저를 흔들어서 깨운 직원분 덕에 치앙마이 바로 전 정거장인 람푼에서 일어났습니다.
기차 도착 예정 시간은 8 15분이었는데
정작 도착한 시간은 10 17분이던가 그랬습니다.
제게는 차라리 이것이 좋았습니다.
북쪽 산간 지방을 그렇게 밝을 때에 보게 된 것이 기쁠 따름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또 걱정이었습니다.
어제 칠리 호텔에서 미처 우리나라에서 못 하고 온 호텔 예약이라든지 계획을 좀 했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치앙마이에 가자마자 숙박해야 할 [베란다 리조트]
예약 확인이 뜨지 않아서 아직 바우처도 못 받은 상태였습니다.
또 한 번, 이 몸 하나 누일 곳 확실치 않은 도시로 온 셈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들을 이번 여행 때에는 너무나 많이 했군요.
너무 많이 하다 보니 후알람퐁역에서 기차를 탈 때쯤 해서는 저의 무계획성에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고, 치앙마이역에 내렸을 때에는 걱정을 하기보다는 몇 가지 행동 루트만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 여러가지 행동 루트 중 제가 선택한 것은, 평소처럼 인터넷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 호텔을 예약해 준 에이전시 방콕 지사에 직접 전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짧은 통화를 하는데도 방콕과 치앙마이 사이는 동전을 25바트나 먹더군요.
담당자가 저 쪽에서 나왔는데 제가 넣은 10밧짜리 전화가 끊어져서, 도중에 다시 걸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무사히 베란다에 예약이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안도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베란다까지 가야 하는데, 무엇을 타고 가느냐가 문제였습니다.
기차역에서 베란다가 있는 항동까지는 무지하게 먼 거리라서, 택시들은 하나같이 택도 없는 가격을 부르더군요.
미리 알아본 리조트에서 제안한 픽업 가격은 1000바트였고, 역에서 알아본 결과는 600바트가 최저가격이었습니다.
한편, 저는 베란다에서 2시에 님만해민으로 셔틀버스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든 님만해민까지만 가서 2시까지 셔틀을 기다려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평소의 저같지 않게 저는 그 자리에서 택시 가격을 협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450바트에, 도중에 와롤롯 시장에 들러 먹을 것을 사는 것까지 들러 주시겠다는 쿤 분마라는 분을 만나서 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에 이렇게 한 것이 정말 잘 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 베란다에서는 2시에 님만해민으로 셔틀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괜히 그 곳에서 쓸데없이 기다릴 뻔했습니다.
쿤 분마는 저보고 태국어를 잘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말씀을 많이 시키셨는데
이 분 덕에 북부에서는 [] 대신 [짜오]를 쓴다는 것과
제가 모르던 큰 단위 숫자 세는 방법 등을 배웠습니다.
(쿤 분마 덕에 나중에 '컵쿤짜오~'라고 인사할 수 있어서 많은 란나 분들에게 웃음을 드렸습니다)
 
와롤롯에서는 큰 망고 두 개하고 내장, 그리고 밥을 사 가지고
쿤 분마 부탁대로 빨리빨리 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와롤롯은 정차가 금지되어 있어서, 교통 경찰에게 걸릴 수 있다네요.

베란다에 도착해서는 택시비를 지불하느라 천밧을 바꾸고
제가 바우처를 복사해 오지 않아서 그것 때문에 좀 기다리는 등의 일이 있었으나
정말 좋은 방을 받아서 들어오니 행복했습니다.
제가 쿤 분마하고 말하는 것을 입구에서 지켜보았던 직원분이
제 태국어가 정말 좋다고 하면서 또 한국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시더군요.
모든 일이 어쨌든 다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베란다에 올 때부터, 아니, 치앙마이에 와서부터라고 할까요?
왜인지 모르게 사람들이 그렇게 제 태국어를 칭찬해 주고 호감을 갖는 것인지 이상했습니다.
다음 날의 일이지만 식당의 직원분들까지 그러시더군요.
어쨌든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좀 곤란한 일은, 제가 한 마디를 하면 그것을 들은 태국분들이 제가 모르는 말로 빠르게 말을 시작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곳은 깊은 산 속이지만, 이 곳도 낮이 되니 너무나 태양이 뜨거워서 섣불리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서북쪽으로 창문이 난 제 방이 온통 뜨끈뜨끈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밖이 더울 때에는 그냥 방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쉬었습니다.
해가 좀 떨어진 5시에 수영을 하러 가 보니, 이 곳의 수영장은 정말 사진에서 본 대로 아름답더군요.
바다의 리조트에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 산 속의 수영장의 아름다움은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몇 배 더하다고 느꼈습니다.
산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울 터인데
이 곳은 수영장으로 유명한 시암@시암의 수영장과 비슷한 no-edge pool의 느낌으로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었습니다.
수영장에 딸린 샤워장에서 처음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찬물이 나오는 것이 무슨 영문인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었는데
이 샤워장은 돌로 되어 있어서, 태양으로 뜨거워진 돌이 돌 안에 고여 있던 물을 데우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자연 친화적인 더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영을 마치고, 7시에는 호텔의 셔틀버스를 타고 나잇 바자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좋은 리조트에서는 되도록 오랜 시간 있고 싶었지만, 밤에는 리조트에서 그다지 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좀 곤란할 것도 같았고요.
가는 길에, 미처 성함을 묻지 못한 수코타이 대학 졸업생인 기사분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태국의 역사에서부터, [므엉] [치앙]과 [위앙]이라는 말의 뜻, 위에 썼듯이 그 날 님만해민에 셔틀버스가 안 간 이야기, 제게 태국어를 자기가 가르쳐 주고 싶다는 이야기 등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30분도 넘는 시간을 참 심심하지 않게 왔습니다.
 

정작 나잇 바싸에 오니, 유감스럽게도 제가 이 곳을 원래 처음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던 기억이 나더군요.
너무나 상업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사랑하던 도이창 커피샵은 버거킹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재빨리 제가 좋아하는 와롤롯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설상가상으로, 그 날따라 제가 고른 숯불구이집이 좀 맛이 없었습니다.
제 취향에는 지나치게 간이 세었습니다.
게다가, 삼겹살 덩어리가 제가 혼자 먹기에는 너무 커서 가위로 반을 자르니,
아주머니께서 제게서 가위를 빼앗으면서 [하나로만 판다]라고 하신 일도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좀 죄송했습니다.
숯불구이 카트 조금 옆에서 어린 처녀가 하는 수박주스 하나를 사 가지고 삥강을 바라보고 앉아서 사온 것들을 먹었는데, 결국 곱창과 삼겹살은 먹다가 버렸습니다.
그 날은 운동량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어서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었나 봅니다.
문제는 정말 피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안 그러는 제가, 메르디앙과 두앙타완 호텔의 로비에 꽤 오랫동안 앉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셔틀버스를 타기 직전, 요구르트를 좀 먹고 싶어서 세븐일레븐에 들렀는데
어떤 것이 설탕이 덜 들어간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직원에게, 말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마이 싸이 남딴 카?]라고 했더니, [마이 싸이 남딴~]이라고 하면서 골라 주시더군요.
덕분에 좋은 요구르트를 마시게 되어서 고마웠습니다.
파란색 뚜껑의 요구르트인데, 앞으로도 그걸로 마셔야 하겠습니다.
 

리조트로 돌아올 때에는 아까와 다른 기사분이 오셨고
(아까의 그 분이 자기 친구가 대신 올 것 같다고 이야기는 했었습니다)
베란다의 스파에 관심있는 중국인들이 차에 대거 타고 있었습니다.
참 영어를 잘 하는 세련된 젊은 중국인들이더군요.
도착한 후에, 사 온 요구르트를 먹고 싶어서 프론트에 얼음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다이닝 서비스에서 한 청년이 얼음을 가지고 나와서 카트를 타더니 저보다 앞질러 제 방에 도착하더군요.
참으로 신속한 이 곳의 서비스였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피곤해서, 이 날은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져 버렸습니다.
잠이 안 와서 고생하는 것보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베란다의 풍경)
9 Comments
판공초 2012.11.28 21:16  
여행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저도 1월에 치앙마이에 들어가는데 기대가 엄청 되네요^^; 저도 방콕에서 기차로 치앙마이 갈 예정인데, 저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을지 몰라요.
컵쿤짜오 마이싸이 남딴.  꼭 기억할께요~
Cal 2012.11.29 23:35  
분명히 별들을 잔뜩 보게 되실 거여요.  치앙마이는 정말 좋습니다.  마음껏 치앙마이를 누리다 오시길!
동쪽마녀 2012.11.29 23:04  
이 번 치앙마이 체류는 흔히 말하는 중심에서 정말 멀리 떨어져 계셨었구먼요.
항동이라니 정말 외곽이라는 느낌이 확 듭니다.
베란다 리조트는 저도 참 묵어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어요.
Cal님 덕분에 간접체험하게 되었네요.^^
치앙마이 가시면서 막막하셨다는 그 느낌 제가 참 잘 압니다.
이 번 여름에 제가 그랬었거든요.
직접 가서 부딪히겠다는 호기로운 말은 지인들을 안심시키는 용도의 말일 뿐,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내 몸 누일 곳  정해져 있지 않다는 그 막막함이란.ㅠㅠ
Cal님의 감사가 곳곳에 스며있는 여행기가 참으로 좋습니다.
Cal 2012.11.29 23:38  
저도 제가 무슨 배짱으로 그런 여행을 시작했는지 모르겠어요.
스케줄상,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두 주를 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허겁지겁 준비한 여행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한 여행이었음을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와스디님도 베란다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저도 한 3년 전부터 그랬어요.
그리고 이번에 아주 좋은 인상을 받고 왔습니다.
가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여요.
하늘빛나그네 2012.11.30 12:52  
항동.... 치앙마이에 가면 늘 차량을 렌트해서 이곳저곳 다니는데, 지나가는 길에 이정표로만 보았던 곳이네요. 치앙마이 중심부에서 꽤나 멀던데......
그런데, 리조트 사진만 봐도 예쁘네요. 나중에 한번 고려해 봐야 겠습니다.
필리핀 2012.12.01 10:42  
아침 기차에서 맞이하는 치앙마이 풍경... 좋지요~

근데, 씨에엘님도 약간 공주병이 있는듯~ ^^;;;
Cal 2012.12.01 22:58  
나그네님: 저도 정말 차량 렌트해서 치앙마이 교외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필리핀님: 일기를 쓸 때에 별 사소한 것을 다 쓰다 보니, 일기를 카피해서 그대로 올리고 저도 좀 여러 부분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방콕 이야기부터는 꼭 필요한 것만 올리기도 했고요,
제 나이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호감]같은 용어를 아주 마음 편하게 쓸 수 있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자로서] 호감을 느끼게 하는 나이가 절대로 아니랍니다.  그래서요.
쿨소 2012.12.03 14:29  
님이 쓰신 여행기를 보면서 내 머리속에는 상황이 그려지는것이 공감 100배입니다..
치앙마이 어느덧 10여년전이 되가네요..
언젠가 제 처도 올해는 해변말고 치앙마이 한번 가볼까라고 말을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Cal 2012.12.03 23:11  
역시, 나이들수록 해변보다는 산이 좋은가봐요.
저도 제가 이렇게까지 산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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