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정말 만족스러운 침대칸 기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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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정말 만족스러운 침대칸 기차여행

Cal 9 4768
전날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아침에는 행복한 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방은 북향이긴 하지만 한 쪽 벽 전체가 창문입니다.
창문으로는 다른 집들의 지붕과, 인근의 여학교 건물이 보입니다.
 

6 40분에 일어나서, 저는 후알람퐁 역에 가서 표를 살 준비를 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온 시간은 7시 반 정도였는데
전날의 쥐죽은 듯 조용했던 거리와는 달리, 이 곳은 지나다니는 차량의 양도 상당하고
무엇보다도 등교하는 여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는 거리이더군요.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아침에는 그렇게 덥지 않았는데도, 후알람퐁 역까지 걸어가니 매우 더웠습니다.
기차표는 8시부터 판답니다.
제가 지나치게 일찍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정말 길 건너기가 까다로운 후알람퐁역 앞 거리를 다시 건너서
세븐일레븐에서 큰 사이즈 카페라떼를 하나 사고
그 옆의 노점에서는 우리나라에서부터 너무나 먹고 싶던 닭간 꼬치를 샀습니다.
할머니께서 구우시는 꼬치인데, 하나는 차가운 채로 먹었고 다른 하나는 다시 데워 먹었습니다.
닭간 꼬치 두 개로 아침부터 너무나 배가 불렀습니다.
 

역에서는 8시에 표 팔기를 시작하였는데, 정확히 8시에 군인들이 주도하는 국민의례가 있더군요.
저도 함께 태국인들을 따라 일어났다 앉았습니다.
그런 후에 치앙마이행 기차표를 샀는데, 아저씨께서 1등석은 매진이라면서
제가 가고자 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출발하는 2등석 아래 침대칸을 권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이 일기는 바로 그 2등석 아래 침대칸에서 쓰는 것입니다
정말 그 아저씨께 감사하고 싶을 정도로, 저는 이 곳이 좋습니다.
1등석이 얼마나 좋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게는 여러가지로 가격대비 이 곳이 좋을 것 같네요)
 

표 사기도 쉬운 위치이고, 어쨌든 어제 약간 고생은 했지만 숙소도 무사히 찾았으니
여러 모로 후알람퐁역 근처에 숙소를 잡기를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주변 시장에서, 아직도 있어서 신기할 지경인 망고스틴과 망고를 40밧씩, 1킬로 사서 돌아왔습니다.
조금 전 기차에서 그것들을 씻어서 먹었는데
망고스틴들이 하나같이 아직도 속살이 하얗고 맛이 좋아서 감동했습니다.
(이번 기차 여행에서는 올 때와 갈 때 모두 망고스틴을 먹었기에
태국 기차 하면 망고스틴이 연상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기차를 탈 때에는 삶은 계란 대신에 망고스틴을 준비할 것 같고요)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하는데
이 호텔은 있으면 있을수록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이 곳에 오래 있으면서
미처 서울에서 못 하고 왔던 여행에 대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제가 나갈 때에 반갑게 인사해 주었던 직원분께, 2시경 레이트 체크아웃이 가능하느냐고 여쭈어 보니
2시까지 있고 싶으면 100바트만 더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 분은 나중에 체크아웃 때까지도 참 친절하셨습니다)
그러면 3시까지 100바트를 내고 더 있겠다고 그 분과 협상하고 다시 제 방에 돌아와서
인터넷을 이용해서 평소라면 응당 서울에서 하고 왔을 여러 가지 여행에 대한 계획과 작업을 하고
전날부터 빨았지만 채 마르지 않은 빨래를 열심히 말렸습니다.
원피스는 소매 끝이 덜 말라서 [용감한 녀석들]의 포즈로 걸어 놓았습니다.

 
방에서 3시까지 있기로 한 것은 참 잘 한 결정인 것 같았습니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에 짐을 맡기지 않고 그냥 내어 온 것도 잘 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러는 것이 잘못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 한 순간 있었는데
아침에 후알람퐁역에서 그 존재만 보고 이용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짐 보관소의 가격이
실제로 들어가 보니 택도 없이 비싼 것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제 짐을 불과 2시간 맡아 주는 데에 100바트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택시나 뚝뚝이 잡히지 않아서 숙소부터 역까지 땡볕을 그냥 걸어 온 노랭이인,
또는 여행 중의 어려운 일들은 아주 담담히 처리하는 저로서는 참 받아들이기 힘든 가격이었습니다.
결국 아주머니께서 너무 비싸다는 제 애원에 마지못해 20바트 깎아 주셨습니다.
(저는 최후까지 조금 더 깎고 싶었지만요)
그리고 한 가지 이 곳에서 기분좋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있어서
이 짐 보관소에서의 추억이 제게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가장 나이많으신 분께서 저를 보고 [미스 차이나(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라고 물어보셨고,
옆에서 다른 사람은 [재패니즈]라고 하시길래 이 분들이 제 국적이 궁금하시구나 싶어서
(이렇게 돈 쓰기 싫어하는 노랭이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싶으셨나들 봅니다)
[콘 까올리]라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테국어로 짧게 뭐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잘 못 알아들었기에 다시 한 번 물으니 [beautiful]이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처음에 쑤어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반드시 저를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정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 오늘은 방콕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티카드로 여행 경비를 찾아 놓는 일이었습니다.
방콕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 아속사거리에 시티뱅크가 생긴 것이 나름 다행입니다.
이 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들도 하면서 돈도 찾을 수 있어서요.
MRT를 타고 왔다갔다하는데, 그 때에야 저는 제 컨디션이 무척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만 있어서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 다른 때처럼 마냥 돌아다녔더라면 크게 병이 났을 것 같은 컨디션이었습니다.
5 50분쯤 기차를 타러 다시 후알람퐁역에 왔을 때에는 그냥 자리에 딱 눕고만 싶었습니다.
아까 저의 국적을 궁금해하셨던 짐 보관소의 직원은 저를 보자마자 증명서도 요구하지 않고 짐을 내어 주시더군요.
이래저래 아주 순조롭게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열차의 구조는 아랫칸과 윗칸을 쓰는 사람들이 마주보고 앉게 되는 구조인데
웬일인지 제 윗칸 사람은 방콕을 한참 벗어나서 돈무앙역을 지난 후에도 오시지를 않았습니다.
아마 이대로 비어서 가게 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아마 제 원래 자리였다면 정말 그랬을 겁니다.
앞자리의 한 태국분에게 일행이 있어서 양보를 해 드린 곳의 윗자리는, 반도 더 온 지금까지 내내 비어 있거든요,.
 
도중에 어떤 태국 신사분이 한 분 타셨고, 그 분이 오시자마자 침대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시기에
그 때까지 밥도 안 먹는 주제에 아랫쪽에서 식탁을 빼서 일기를 쓰고 있었던 저는 좀 아쉽지만 그러자고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침대칸으로 바뀐 후에는 훨씬 더 편하고 좋네요.
지금 제 위에서 주무시고 계신 저 분은 람빵까지 가신다고 하네요,
오히려 이 분이 오셔서 침대를 제 생각보다 일찍 만들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기차 여행은 정말 딱 제 스타일입니다.
왜 그렇게 기차와 관련된 낭만적인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저는 단지 더 싸고, 또 자면서 갈 수 있으니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차를 선택했지만
저는 제가 가만히 있는데 주변이 변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게으름뱅이 구경군인가 봅니다.
밤이라서 깜깜한 경치는 나름대로 더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불빛이 있는 곳은 더욱 더 선명하게, 그리고 속속들이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방콕 안에서 기차가 주행할 때에는 너무나 인가에 가깝게 기차가 지나가서 제가 다 민망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이런 나라라서 아마 [위험한 시장]과 같은 것이 있나 봅니다.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단점이라지만, 저는 이렇게 여유있는 여행을 정말 즐깁니다.
치앙마이에서 오는 기차여행이 벌써 기대될 정도입니다.
아마 그 때에도 똑같이 2등석 아래칸을 사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저희 바로 옆칸이 식당칸인데
강남스타일부터 시작해서 마카레나까지, 별별 노래와 춤을 다 동원해서 조명까지 켜 놓고 정말 신나게 놀고 있어 한참 구경을 했습니다.

이렇게 일기를 쓰다가 만난 역인 아유타야역은 인상에 깊이 남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제가 좌석에 있는 컵받침에 넷북을 놓고
창문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린 채로 타자를 치고 있었기 때문에
아유타야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었거든요.
앞으로는 글을 쓸 때마다 이 기차여행이 생각나겠네요.
롭부리 역도 참 인상깊고 좋았습니다.
아마도 기차가 들어올 때에 기다리던 승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보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차 안에서 찍은 아유타야역)

9 Comments
동쪽마녀 2012.11.29 17:19  
옆에서 조근조근 들려주시는 것 같은 Cal님의 여행기를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읽습니다.
좋아서 한숨이 다 나올 지경이예요.
'용감한 녀석들' 포즈로 걸려져 마르는 원피스가 참으로 궁급합니다.ㅋㅋ
저는 아시다시피 도로시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데,
저도 기차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만,
2등 침대칸에 바퀴벌레가 출몰한다는 괴담을 들은 바가 있어서,
치앙마이를 여러 번 갔음에도 한 번도 기차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바퀴벌레 없지요?
(없다고 말씀해주세요!)
다음 차례 읽으러 휘리릭 가옵니다.^^
Cal 2012.11.29 23:34  
와스디님을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지만, 팬룸 2등 침대칸에서 바퀴벌레를 본 적이 있기는 해요.
에어컨룸에서는 전혀 못 봤습니다.
저도 바퀴벌레를 좋아할 리는 없지만, 앞으로 치앙마이 갈 일이 있으면 팬룸 2등밖에 없더라도 무조건 침대 기차를 탈 거라고 마음먹고 있답니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했어요.
하늘빛나그네 2012.11.30 12:46  
글이 참 편안하고 푸근합니다.
이렇게 글 잘 쓰시는 분을 보면 참 그 필력이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어떤 분일까 막 궁금해 지기도 하구요.
몇일 후에 출국인데, 저는 치앙마이행 기차표를 구할 수가 없더라구요. 연말 표는 이미 다 매진이래요. ㅠㅠ
아쉽고 부럽고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글 고맙습니다. ^^
뉴욕커 2012.12.01 08:09  
저도 에어콘 침대칸 완전 좋아합니다  물론 일층이 편안하구요 현지인들과 친구가 될수있는 기회였어요 ^^
여행자버스보다 좀 비싸지만 체력적으로 엄청 도움됨니다 운치도 있어요 ㅎ
필리핀 2012.12.01 10:38  
태국에서 꼬치... 주의하세요...
절대로 찬거는 드시지 말고 꼭 제대로 익혀서 드세요...
잘못하면  장염 걸려서 개고생한답니다... ㅠㅠ
Cal 2012.12.01 22:54  
하늘빛나그네님: 아, 충분히 매진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1주일 전에 표를 사는데도 팬룸밖에 없다는 소리를 듣고 할 수 없이 팬룸을 샀던 것이었거든요.
그래도 앞으로 얼마든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뉴욕커님: 그렇죠?  현지인분들을 만나는 것이 참 좋고 운치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필리핀님: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맛이 없어서 다시 데워먹은 것이긴 한데, 결과적으로 잘 한 일같네요.
쿨소 2012.12.03 14:20  
밤기차에서는 잘 주무셨나 봐요..
전 한시간 간격으로 계속 깼는데.. 정말 괴롭더라고요..
아무데나서나 잘 잔다라고 항상 자부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인지 그것도 아닌가봐요..
빨리 달리는 모습이라도 창으로 보이면 기분 전환이라도 될텐데..
이게 가차가 가는건지 사람이 걷는건지 모를정도의 속도로 갈때면 아~~~ 답답함이...
Cal 2012.12.03 23:11  
저도 주변 경치 보느라 그렇게 잘 자지는 못했는데요,
잠 따위는 상관없이 정말 충분히 좋았답니다.
혜은이 2012.12.12 15:19  
용감한 녀석들.. 포즈로 옷을 말리셨다니 어떤 포즈일까 궁금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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