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깐짜나부리 트래킹 2
새벽녘에 늑대들인지 개인지인지 모를 짐승들의 울부짖음에 잠깐 깬 적은
있었지만, 기분 좋은 밤을 보내고 식사를 하러 가니, 서양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그런데, "Good morning!"이 아닌 "Beer eye!" 라고, 그리고 어제 우리를
데리고 온 가이드도 졸졸 따라다니며 "Fifteen, fifteen" 하는데 처음엔 무슨
소리들인가 싶었더니만, 어제 밤에 우리가 맥주 15병을 마신 것에 빗대어 하는
소리들이었다. 5명이서 맥주 15병이면 사실 한국사람들한테는 아무 것도 아닌데,
이방인들 눈에는 특이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다른 팀들은 맥주값으로
250B정도가 최고였는데, 우리는 900B이 나왔으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놀랄만한
일은 일인가보다.
아메리칸식으로 준비된 아침을 먹고 드디어 코끼리 트래킹을 향해 떠났다.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을 하니 코끼리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2인 혹은 3인이
코끼리 가이드와 한 조를 이루어 코끼리를 탔다. 내심 큰 코끼리를 찜했는데,
어제 김치 사건의 발단이었던 사가지(?) 커플이 새치기를 한다.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코끼리위에 한기와 올라탔는데, 코끼리에게 내심 미안했다. 작은 코끼리
여서인지 높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많이 흔들려서 불안했다. 특히 비탈길을 내려갈
때는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주의하지 않으면 밑으로 떨어질 뻔 했다. 여자분들은
여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코끼리를 타고 산으로 난 오솔길도 가고, 철로 위를
걷기도 하고 약 40분간 트래킹을 하고 돌아왔다. 수고한 코끼리를 위해 바나나 한
바구니를 20B에 사서 직접 먹여줄 기회를 가졌다. 코끼리를 직접 만질 수 있고 마냥
신기해서 기념 사진도 찍다 보니 코끼리 조련사에게 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팁을 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코끼리가 작았고 말을 잘 안들어서
조련사가 꽤나 애를 태운 걸 알았던 터이기에 20B을 주었더니 이 아저씨 고맙다며
악수를 하고 바나나를 하나 준다. 미소의 나라 답게 태국 사람들의 미소는 티없이
맑고 아름답다.
코끼리 트래킹을 마치고 열두살쯤 먹은 소년이 안내하는 산에 있는 동굴로 향했다.
큼지막한 동굴은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만 했다. 동굴안에 돌탑 등을
쌓아 두고 제단도 있어서 묘한 분위기가 났다. 동굴은 보여지는 것 말고도 더 보여질
것이 있을 것 같았지만, 불빛이 전혀 없어서 진행은 힘들었다. 동굴을 나와서 그
일대 마을을 하이킹 했는데, 코끼리 탈 때 그 사가지(?) 커플이 자꾸 일행을
이탈하고 늑장을 부려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하이킹을 마치고 오니 아까 코끼리 조련사가 반갑게 뛰어나오더니 바나나 한
묶음을 굳이 건내준다. 다음 진행은 사이욕 너이 폭포를 가기로 했는데, 사가지(?)
커플은 더 이상 움직이기 싫다며 일행에서 빠졌다. 나머지 일행들은 내색은
안했지만 모두 맘속으로 기뻐하는 듯 했다. 싸이욕 너이 폭포에 도달했을 때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일행은 왔던 길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지금이 우기라
비가 자주 오면 어쩌지 걱정이 많았는데, 그 동안은 밤에만 빗방울이 잠깐
떨어졌을 뿐이고 낮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이드들은 지붕이 있는
차를 준비해 주었고, 자신들은 오토바이로 비를 몽땅 맞고 왔지만 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재미있었다. 비 때문에 싸이욕 너이 폭포를 오르지 못한 것에
괜찮다고 해도 현지 가이드 여성은 무척이나 미안해 했다. 비는 한동안 계속되기에
점심을 먹고 있는데 호주인과 일본인을 태운 또 다른 미니버스가 도착했다.
어떻게 마음이 맞아 호주인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여행중에는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되는 것이 여행이 주는 큰 재미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새삼 의사소통으로써의
영어의 중요성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빗길에도 불구하고 일본여성은 혼자 코끼리
트래킹을 떠났다. 가끔 일본 여성들의 적극성을 볼 때가 있다. 비는 1시간 가량
오다 멈추었고 일행은 기차역으로 가서 연합군 포로들이 만들었다는 죽음의 철도를
탔다. 이 기차는 관광객이며 현지인 모두 이용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우리를
인솔하러 온 가이드는 콰이강에서 뗏목을 운전하던 그 고시생(?)이었다. 비록
하루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지만 반갑다. 기차는 콰이강의 다리역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가면서 보는 풍경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이동시간이 있는 만큼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았다. 기차는 콰이강의 다리를 지나 깐짜나부리 역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가이드를 따라 전쟁기념관으로 향했다. 당시 기차가 입구에 서있는데,
커다란 일장기로 치장이 돼있었다. 오늘이 광복절이고 분명 일본은 가해자의
입장인데, 어떻게 저렇게 큰 일장기를 게양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 또한 희생당한
국가들의 국기도 뒷편에 조그맣게 게양이 돼있었는데, 우리의 태극기는 건곤감리가
모두 짝댁대기 세개로 표기되어 있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오늘이 광복절인데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한기와 둘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러 광복절을 기념했다.
전쟁 기념관은 입장료가 30B이었는데, 사실 볼 거리는 많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전쟁기념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깐짜나부리의 모든 일정을 마감하고 방콕으로 돌아오게 됐다. 가는 길에
미니 버스가 주유소 앞에 서더니 새로 4명을 더 태우려 하는 것이었다.
빈 자리는 앞의 불편한 운전 보조석까지 합해서 3명 정도 더 태울 수
있었는데, 억지로 자리까지 옮겨가며 4명을 태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 4명을 더 태우려던 가이드는 맘남의 광장에서 온 한국인
일행들에게도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무서운 가이드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주동이 되어서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못을 박고 버스 안의
일행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니 영국인 처자가 강하게 어필을
한다. 그래서 여자분 2명만 더 태우고 방콕으로 향하게 됐다. 사실, 이
부분에서 찔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4명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
물론 여행사의 횡포에 견제를 해야할 필요성도 있었고, 거기에 있던 한국
사람들도 가이드의 부당함에 화가 나 있던 터라 유쾌하진 않지만 일종의
동조가 있었다. 그 4사람도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기 때문에
쉽게 우리의 의도를 이해해 줬다. 우리 민족이야 콩 한쪽도 나눠먹는
정이 있는 민족아니던가. 만약 사과를 안했더라면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따로 합류한 2명은 방콕에 도착해서도 여러 번 만났고,
함께 미니 버스를 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도 코사멧에서 만났으니 말이다.
참, 세상은 넓고도 좁다.
방콕에 도착해서는 깐짜나부리 투어를 같이했던 동포 여러분들과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태국에서는 태국 음식만을 먹기로 했는데, 여기서
김치찌개를 먹게 됐다. 맛 자체로는 그리 맛있는 김치찌개는 아니지만, 그
음식이 김치찌개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웠다. 외국에 나가면 느끼는
거지만 정말 우리 음식은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그 우수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만남의 광장에서 내일 갈 코사멧 미니버스 보트를 왕복으로 300B에 예약했다.
라차따 호텔로 다시 갈까 하다가 오늘 밤에는 맛사지를 받기로 한 까닭에
근처에서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방콕 오는 길에 합류한 분들이 쑥빠쌋 호텔이
좋다 추천해서 그리로 가기로 했는데,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 네팔에서 수도하다
온 자칭 땡중이라는 분이 근처에 시설도 좋고 밤마다 포르노를 틀어 준다는
호텔을 소개해줘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팀 모두 같은
호텔을 추천해 준 것이었다. 쑥빠삿 호텔은 꽤나 넓었지만 이미 남은 방이
없다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근처에 숙소가 많아서 싸왓디 스마일 인이라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온 베낭족들이 많이 묵고 있었고
여행사 업무도 대행해 주고 있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트윈룸이었는데(410B,
더블 350B), 라차따 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카오산쪽의 숙소 보다는 나아 보였다.
대충 정리를 하고 맛사지를 받기 위해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만남의 광장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되어서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방콕에 와있건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는지 별 메일이 도착한 것이 없다. 한기와 일택, 나는 전신
마사지를 받기로 하고, 지숙, 민정은 피부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카오산 뒤쪽의
짜이띠 맛사지로 갔는데 들어서면서부터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아 주고 차도
내다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맛사지를 받는데, 대부분 여성들이 맛사지를 해주는데
나는 등치가 있는 터라 남자분이 맡아서 해주었다. 원래 맛사지가 몸과 몸이
접촉하는 거라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해주는 것이 음,양의 조화가 맞아서
좋다 하던데... 어쨌든 무좀이 있는 발을 맡긴 것부터 미안했는데, 성심 성의껏
맛사지를 해준다. 옆에 일택을 맛사지하는 아줌마는 한국말을 참 잘해서 아퍼?
사랑해? 간지러? 뽀뽀해줄까? 등등 농담을 던치는 통에 주위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하고 많이 웃었다. 손님의 대부분은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었다. 맛사지의
마지막 코스는 맛사지 받는 사람을 맛사지하는 사람 위에 올려서 활처럼 스트레칭을
하는 것인데, 나는 등치가 있는 터라 1차에서 실패하고 2차에서 주인 아주머니까지
달려 들어 잡아 주는 통에 간신히 성공하였다. 맛사지사에게 무지무지 미안했다.
발맛사지 30분 전신맛사지 60분에 200B으로 비교적 저렴하였다. 수고했다고 팁을
50B씩 더 주고 나왔다. 한결 개운한데, 한기는 조금 아프다 한다. 여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너무 아퍼서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지숙, 민정, 네팔에서 온 땡중 아저씨를 만났다. 카오산
로드를 한 바퀴 돌고가자기에 이미 몇 바퀴 돌은 터였지만, 다시 돌기로 했다.
네팔에서 오신 분은 동남아 생활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터라 장신구며, 문신처럼
하는 헨나 등의 역사적 배경이며 주술적인 의미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런 설명을 듣고 카오산 로드를 둘러보니 참으로 볼 게 많은 거리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카오산에서 사온 닭다리와 꼬치를 먹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치앙마이에서의 트래킹이 여의치 못하다면 깐짜나부리 1박 2일 트래킹 코스를
강력히 추천한다.
한기말에 의하면 싸왓디 스마일 인에서는 포르노를 틀어 주지 않는단다. ^^;
http://my.netian.com/~fromb612
정리가 되는대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있었지만, 기분 좋은 밤을 보내고 식사를 하러 가니, 서양 사람들이 인사를
한다. 그런데, "Good morning!"이 아닌 "Beer eye!" 라고, 그리고 어제 우리를
데리고 온 가이드도 졸졸 따라다니며 "Fifteen, fifteen" 하는데 처음엔 무슨
소리들인가 싶었더니만, 어제 밤에 우리가 맥주 15병을 마신 것에 빗대어 하는
소리들이었다. 5명이서 맥주 15병이면 사실 한국사람들한테는 아무 것도 아닌데,
이방인들 눈에는 특이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다른 팀들은 맥주값으로
250B정도가 최고였는데, 우리는 900B이 나왔으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놀랄만한
일은 일인가보다.
아메리칸식으로 준비된 아침을 먹고 드디어 코끼리 트래킹을 향해 떠났다.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을 하니 코끼리들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2인 혹은 3인이
코끼리 가이드와 한 조를 이루어 코끼리를 탔다. 내심 큰 코끼리를 찜했는데,
어제 김치 사건의 발단이었던 사가지(?) 커플이 새치기를 한다.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코끼리위에 한기와 올라탔는데, 코끼리에게 내심 미안했다. 작은 코끼리
여서인지 높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많이 흔들려서 불안했다. 특히 비탈길을 내려갈
때는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주의하지 않으면 밑으로 떨어질 뻔 했다. 여자분들은
여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코끼리를 타고 산으로 난 오솔길도 가고, 철로 위를
걷기도 하고 약 40분간 트래킹을 하고 돌아왔다. 수고한 코끼리를 위해 바나나 한
바구니를 20B에 사서 직접 먹여줄 기회를 가졌다. 코끼리를 직접 만질 수 있고 마냥
신기해서 기념 사진도 찍다 보니 코끼리 조련사에게 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팁을 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코끼리가 작았고 말을 잘 안들어서
조련사가 꽤나 애를 태운 걸 알았던 터이기에 20B을 주었더니 이 아저씨 고맙다며
악수를 하고 바나나를 하나 준다. 미소의 나라 답게 태국 사람들의 미소는 티없이
맑고 아름답다.
코끼리 트래킹을 마치고 열두살쯤 먹은 소년이 안내하는 산에 있는 동굴로 향했다.
큼지막한 동굴은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만 했다. 동굴안에 돌탑 등을
쌓아 두고 제단도 있어서 묘한 분위기가 났다. 동굴은 보여지는 것 말고도 더 보여질
것이 있을 것 같았지만, 불빛이 전혀 없어서 진행은 힘들었다. 동굴을 나와서 그
일대 마을을 하이킹 했는데, 코끼리 탈 때 그 사가지(?) 커플이 자꾸 일행을
이탈하고 늑장을 부려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하이킹을 마치고 오니 아까 코끼리 조련사가 반갑게 뛰어나오더니 바나나 한
묶음을 굳이 건내준다. 다음 진행은 사이욕 너이 폭포를 가기로 했는데, 사가지(?)
커플은 더 이상 움직이기 싫다며 일행에서 빠졌다. 나머지 일행들은 내색은
안했지만 모두 맘속으로 기뻐하는 듯 했다. 싸이욕 너이 폭포에 도달했을 때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서 일행은 왔던 길로 되돌아 가기로 했다. 지금이 우기라
비가 자주 오면 어쩌지 걱정이 많았는데, 그 동안은 밤에만 빗방울이 잠깐
떨어졌을 뿐이고 낮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이드들은 지붕이 있는
차를 준비해 주었고, 자신들은 오토바이로 비를 몽땅 맞고 왔지만 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재미있었다. 비 때문에 싸이욕 너이 폭포를 오르지 못한 것에
괜찮다고 해도 현지 가이드 여성은 무척이나 미안해 했다. 비는 한동안 계속되기에
점심을 먹고 있는데 호주인과 일본인을 태운 또 다른 미니버스가 도착했다.
어떻게 마음이 맞아 호주인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여행중에는 누구나 쉽게
친구가 되는 것이 여행이 주는 큰 재미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새삼 의사소통으로써의
영어의 중요성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빗길에도 불구하고 일본여성은 혼자 코끼리
트래킹을 떠났다. 가끔 일본 여성들의 적극성을 볼 때가 있다. 비는 1시간 가량
오다 멈추었고 일행은 기차역으로 가서 연합군 포로들이 만들었다는 죽음의 철도를
탔다. 이 기차는 관광객이며 현지인 모두 이용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우리를
인솔하러 온 가이드는 콰이강에서 뗏목을 운전하던 그 고시생(?)이었다. 비록
하루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지만 반갑다. 기차는 콰이강의 다리역까지 약 2시간
정도 걸리는데, 가면서 보는 풍경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이동시간이 있는 만큼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았다. 기차는 콰이강의 다리를 지나 깐짜나부리 역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가이드를 따라 전쟁기념관으로 향했다. 당시 기차가 입구에 서있는데,
커다란 일장기로 치장이 돼있었다. 오늘이 광복절이고 분명 일본은 가해자의
입장인데, 어떻게 저렇게 큰 일장기를 게양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 또한 희생당한
국가들의 국기도 뒷편에 조그맣게 게양이 돼있었는데, 우리의 태극기는 건곤감리가
모두 짝댁대기 세개로 표기되어 있는 한심한 모습이었다. 오늘이 광복절인데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한기와 둘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러 광복절을 기념했다.
전쟁 기념관은 입장료가 30B이었는데, 사실 볼 거리는 많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전쟁기념관에 들어가지 않았다.
깐짜나부리의 모든 일정을 마감하고 방콕으로 돌아오게 됐다. 가는 길에
미니 버스가 주유소 앞에 서더니 새로 4명을 더 태우려 하는 것이었다.
빈 자리는 앞의 불편한 운전 보조석까지 합해서 3명 정도 더 태울 수
있었는데, 억지로 자리까지 옮겨가며 4명을 태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 4명을 더 태우려던 가이드는 맘남의 광장에서 온 한국인
일행들에게도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무서운 가이드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주동이 되어서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못을 박고 버스 안의
일행에게 동의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니 영국인 처자가 강하게 어필을
한다. 그래서 여자분 2명만 더 태우고 방콕으로 향하게 됐다. 사실, 이
부분에서 찔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4명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
물론 여행사의 횡포에 견제를 해야할 필요성도 있었고, 거기에 있던 한국
사람들도 가이드의 부당함에 화가 나 있던 터라 유쾌하진 않지만 일종의
동조가 있었다. 그 4사람도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 화가 난 것이기 때문에
쉽게 우리의 의도를 이해해 줬다. 우리 민족이야 콩 한쪽도 나눠먹는
정이 있는 민족아니던가. 만약 사과를 안했더라면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따로 합류한 2명은 방콕에 도착해서도 여러 번 만났고,
함께 미니 버스를 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도 코사멧에서 만났으니 말이다.
참, 세상은 넓고도 좁다.
방콕에 도착해서는 깐짜나부리 투어를 같이했던 동포 여러분들과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태국에서는 태국 음식만을 먹기로 했는데, 여기서
김치찌개를 먹게 됐다. 맛 자체로는 그리 맛있는 김치찌개는 아니지만, 그
음식이 김치찌개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웠다. 외국에 나가면 느끼는
거지만 정말 우리 음식은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그 우수성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것 같다.
만남의 광장에서 내일 갈 코사멧 미니버스 보트를 왕복으로 300B에 예약했다.
라차따 호텔로 다시 갈까 하다가 오늘 밤에는 맛사지를 받기로 한 까닭에
근처에서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방콕 오는 길에 합류한 분들이 쑥빠쌋 호텔이
좋다 추천해서 그리로 가기로 했는데,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 네팔에서 수도하다
온 자칭 땡중이라는 분이 근처에 시설도 좋고 밤마다 포르노를 틀어 준다는
호텔을 소개해줘서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팀 모두 같은
호텔을 추천해 준 것이었다. 쑥빠삿 호텔은 꽤나 넓었지만 이미 남은 방이
없다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근처에 숙소가 많아서 싸왓디 스마일 인이라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온 베낭족들이 많이 묵고 있었고
여행사 업무도 대행해 주고 있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트윈룸이었는데(410B,
더블 350B), 라차따 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카오산쪽의 숙소 보다는 나아 보였다.
대충 정리를 하고 맛사지를 받기 위해 만남의 광장으로 향했다. 만남의 광장에서는
인터넷 접속이 되어서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방콕에 와있건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는지 별 메일이 도착한 것이 없다. 한기와 일택, 나는 전신
마사지를 받기로 하고, 지숙, 민정은 피부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카오산 뒤쪽의
짜이띠 맛사지로 갔는데 들어서면서부터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아 주고 차도
내다 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맛사지를 받는데, 대부분 여성들이 맛사지를 해주는데
나는 등치가 있는 터라 남자분이 맡아서 해주었다. 원래 맛사지가 몸과 몸이
접촉하는 거라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해주는 것이 음,양의 조화가 맞아서
좋다 하던데... 어쨌든 무좀이 있는 발을 맡긴 것부터 미안했는데, 성심 성의껏
맛사지를 해준다. 옆에 일택을 맛사지하는 아줌마는 한국말을 참 잘해서 아퍼?
사랑해? 간지러? 뽀뽀해줄까? 등등 농담을 던치는 통에 주위 사람들도 의식하지
못하고 많이 웃었다. 손님의 대부분은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었다. 맛사지의
마지막 코스는 맛사지 받는 사람을 맛사지하는 사람 위에 올려서 활처럼 스트레칭을
하는 것인데, 나는 등치가 있는 터라 1차에서 실패하고 2차에서 주인 아주머니까지
달려 들어 잡아 주는 통에 간신히 성공하였다. 맛사지사에게 무지무지 미안했다.
발맛사지 30분 전신맛사지 60분에 200B으로 비교적 저렴하였다. 수고했다고 팁을
50B씩 더 주고 나왔다. 한결 개운한데, 한기는 조금 아프다 한다. 여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너무 아퍼서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지숙, 민정, 네팔에서 온 땡중 아저씨를 만났다. 카오산
로드를 한 바퀴 돌고가자기에 이미 몇 바퀴 돌은 터였지만, 다시 돌기로 했다.
네팔에서 오신 분은 동남아 생활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터라 장신구며, 문신처럼
하는 헨나 등의 역사적 배경이며 주술적인 의미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런 설명을 듣고 카오산 로드를 둘러보니 참으로 볼 게 많은 거리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카오산에서 사온 닭다리와 꼬치를 먹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치앙마이에서의 트래킹이 여의치 못하다면 깐짜나부리 1박 2일 트래킹 코스를
강력히 추천한다.
한기말에 의하면 싸왓디 스마일 인에서는 포르노를 틀어 주지 않는단다. ^^;
http://my.netian.com/~fromb612
정리가 되는대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