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의 동남아 가출일기 #3 - 칸차나부리 투어
#. 3/28(WED) D+3
0600 기상
오늘은 칸차나부리 일일투어를 간다. 어제처럼 재빨리 준비하여
0650경 동대문에 도착.
0700 픽업을 만나 버스에 탑승후 출발.
오늘은 일본인 1명 외에는 모두(9명) 한국인이다.
0930 칸차나부리 유엔묘지 도착. 기억이 거의 남아있진 않지만, 분위기는 어릴적(초등학교시절) 수학여행때 가보았던 부산유엔묘지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먼 이국땅에서 싸우다 전사한 영령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1015 전쟁박물관, 콰이강의 철교 견학. 철교를 걸어서 건너가려는데 신발밑에 뭐가 묻었는지 걸음이 부자연스럽다. 확인해보니 운동화 한짝의 밑창이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방법을 모색하다가 결국 밑창을 뜯어내 버렸다. 느낌은 훨씬 좋았지만 한짝은 멀쩡한 상태이니 두짝의 높이가 서로 맞지않아 한쪽만 키높이 구두를 심은 형국이 되었다. ^^
철교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콰이강의 철교 견학을 뒤뚱거리며 다녀와서 버스로 이동하여, 버스출발을 기다리다 같은 그룹에 있는 JY씨(남, 26)와 얘기를 하게 됨. 그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강남구의 대형병원에 간호사로 합격되어 발령 대기중의 상황에, 짧게 태국 여행을 왔다고. 남자간호사라는 드문 직업과 나와 동향이라는 것에 끌려 남은 일정을 함께 다님.
1120 버스는 시골의 한적한 간이역으로 갔다. 죽음의 계곡을 운행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다.
이 간이역에서 기다렸다가 역사체험용 기차를 탔다.
콰이강의 철교나 죽음의 계곡의 철로는 2차대전때 일본군이 미얀마로 가는 길을 확보하고자, 연합군 포로나 태국인, 미얀마인 등을 강제동원하여 건설한 것으로, 당시 무리한 공사와 연합군의 방해로 인해 수많은 희생이 요구되었던 힘든 공사였음을 "콰이강의 다리"라는 미국영화를 통해 알려져 있다.
마침 그룹에 일본인이 한사람 있어서, 특별히 다른 감정이나 이유가 없는 단순한 질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 일반적인 일본인이 과거 2차대전시의 일본군들의 행적이 남아있는 장소를 대하는 소감이 어떠한지? " 하고 주제넘게 질문을 해 보았다.
그는 본인의 직업이 여행가이드인데 오키나와의 자살바위(2차대전때 많은 일본군이 패전 직전에 자살을 한 곳이라고...)에 견학온 일본인들은 그곳 경치의 아름다움에 사진만 찍어대지 그곳에 얽힌 사연에는 관심이 전혀없다는 등의 설명으로, 역시 일본인답게 즉답보다는 전쟁과 관련된 일본의 교육과정의 미비함이 문제라는 식의 일반적인 얘기를 한다.
12시경 기차에 탑승하였다. 상당수의 여행객들이 포함된 승객들을 위하여 죽음의 계곡에 가까이 와서는 서행하면서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요즘 시기에서도 난코스로 보여지는 이 철길을, 당시 맨몸으로 건설했던 사람들의 암담했던 기분이 짐작될 것도 같다.
어렸을때 탔었던 비둘기호와 닮은 기차를 탔다.
죽음의 철로 운행시에는 동영상촬영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만, 미리 견학한 전쟁박물관에서의 설명으로 상황이해는 가능할 듯..
1245 기차에서 내려 뗏목투어를 하기전 점심식사를 했다.
1330 뗏목투어. 보트를 타고 강의 중간으로 가서 뗏목으로 옮겨탐. 거기서 부터 하류를 향하여 강의 물살에 맞춰 떠내려가는 뗏목에 몸을 맡겼다. 지붕이 있는 뗏목 의자에 앉아 느린 물살보다는 좀 더 세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즐기고 있자니 무척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여름날 시골 원두막에서 산들바람에 취해 스르르 낮잠이 들때 느껴지는 편안함이다.
사진찍느라 다소 경직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편안했었다.^^
하지만 약 30분 정도만에 아쉽게 뗏목에서 내려야했으며, 곧바로 코끼리투어가 시작되었다.
즐겁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끝까지 라이딩은 했었던 이중적인 나.......
결론적으로 코끼리라이딩에 참가했고 코끼리를 몰아준 소년에게 팁도 1불을 쥐어주긴 했지만, 기분은 영 시원치 않았다. 내가 특별히 동물애호가는 아니지만, 이 더운날 무거운 사람들을 태우고 똑같은 길을 반복적으로 돌아야 하는 코끼리팔자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탄 코끼리는 제법 덩치도 큰 편이었지만, 중간중간 한숨을 크게 내 쉬면서 제자리에 멈추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코끼리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찔러댔고, 말 못하는 코끼리는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코끼리의 지능이 다른 동물보다 많이 뛰어나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지금 자기 등에 타고있는 무거운 인간들에 대하여 얼마나 원망을 할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1430경 Waterfall 도착. 폭포자체는 물이 말라서인지 웅장한 느낌은 없었지만 많은 서양인들이 수영을 하고 있어서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타는 듯한 무더위 속에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시원한 구경거리를 제공한 폭포.
1500 버스출발.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다보니 어느새 방콕 시내까지 왔다.
1740 카오산 도착
1800 숙소(에라완하우스)에 들어오면서 로비에 기다리고 있는 KH를 만남.
오늘 종일 혼자 다녔더니 따분했던지, 내일 나와 캄보디아로 동행하고 싶단다. 그래서 날 만나려고 숙소도 에라완으로 옮겼다고.
1900 베트남 누들집에서 저녁식사.
2000 HH도 참석한 가운데 캄보디아 이동방법에 대하여 상의함. 결론은 내일 새벽에 나와 KH가 먼저 이동하고, 그 다음날 HH가 뒤따라와서 씨엠립에서 만나기로 함.
2030 셋이서 함께 맥주 한잔하러 나감. 가는 길에 우연히 JY를 다시 만나게 되어 4명이서 건배함.
2200 숙소복귀